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마드리드에는 대형 미술관이 많습니다. 마드리드 왕궁 옆에 숨어 있는 미술관도 있습니다. 스페인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립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있죠. 이 두 곳을 먼저 소개합니다. 티센 보르미네사는 다음주에 만나보겠습니다.
24회 (202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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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는 마드리드 왕궁, 중앙에는 알무데나 성당이 보인다. 언덕 아래와 왕궁을 연결하는 오른쪽 신축 건물이 미술관이다. ⓒLa Galería de las Colecciones Rea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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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왕궁 옆 절벽에 세워진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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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소장품 미술관 전시장의 쾌적한 모습. ⓒLa Galería de las Colecciones Rea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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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왕궁의 루이사 파르마 왕비>, 1799 ⓒLa Galería de las Colecciones Reales |
스케치와 완성된 유화가 공존하는 희귀한 미완성작. 안톤 라파엘 멩스의 <트라야누스의 무신론자>, 1768-1775 ⓒLa Galería de las Colecciones Rea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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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미술관을 남깁니다. 황제의 권력이 거대했던 나라일수록 더욱 그렇죠. 그 덕분인지 이 뜨거운 태양의 나라는 정말 뛰어난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궁정 화가에게 부와 명예를 허락했던 황제들의 수집욕과 명예욕이 비결이었을까요. 이번에 처음 방문한 왕립 박물관에서 소위 '제국의 미술관'에 관한 힌트를 좀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드리드의 관광 1번지는 2,800개의 방을 가진 마드리드 왕궁과 나란히 자리한 알무데나 성당, 알무데나 광장일겁니다. 언덕 위의 광장에서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마드리드 일대를 내려다보는 탁트인 전경이 볼만합니다.
광장 옆에 왕실 소장품 미술관(La Galería de las Colecciones Reales)이 숨어있습니다. 영어로 옮기자면 로열 컬렉션 갤러리입니다. 성당과 왕궁에서는 보이지 않는 건물이라는게 특징입니다.
스페인 유명 건축가 에밀리오 투뇨 알바레즈와 루이스 모레노 만실라가 광장 아래의 절벽에 공원과 광장을 잇는 독특한 구조의 미술관을 건축했습니다. 거대한 옹벽으로 마드리드의 협곡을 지탱하는 형태죠.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에 걸쳐 건축한 이 미술관은 광장의 입구를 통해 들어서면, 왕실 정원인 캄포 델 모로가 미술관 통창을 통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고색창연한 국립 미술관들과 달리 신축 미술관은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합니다. 세 개의 층으로 나눠진 전시장은 길이 120미터, 폭 16미터의 개방형 전시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입장해 두 개 층의 소장품 전시장을 만나며 아래로 내려오면 -3층의 로비 한 편에서 기획전시가 열립니다.
소장품 전시는 여느 왕립 박물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페인 제국 황금기의 화려했던 유산을 만날 수 있죠. 보석과 가구,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을 장식했던 많은 종교화와 왕실의 많은 소장품들이 전시됩니다. 귀족의 의뢰로 그려졌을 손바닥만한 벨라스케스의 초상화 같은 보기 드문 작품도 있죠.
궁정 화가와 왕실의 관계를 짐작하게 해주는 많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카를로스 4세의 초상>를 그리기 직전 고야가 그린 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대표적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장식적인 꾸새와는 달리, 미화되지 않은 사실적인 왕가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다뤘던 카라바조의 <세례 요한의 머리를 든 살로메>도 만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황제가 탔던 황금 마차까지 전시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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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빛과 바다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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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바다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모든 특징이 담긴 대표작. <Boys on the Beach>, 1909 ©Museo Nacional del Pra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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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사실주의 화풍이 잘 드러난 작품. 호아킨 소로야 <And They Still Say Fish is Expensive!>, 1894 ©Museo Nacional del Prado |
창문 너머에 모습을 보이는 화가의 모습이 재미있다. 호아킨 소로야의 가족 초상화 <The Family>, 1901 ©Museo de la Ciud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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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는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드리드의 숨겨진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호아킨 소로야 미술관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가장 인기있는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 1863~1923)의 사후에 그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곳입니다. 저는 소로야 미술관 대신 이 곳을 찾았습니다. 대표작이 모두 이 전시에 모여 있어서입니다.
사후 100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시 '소로야, 100년의 모더니티'는 소로야의 대표작 77점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필수 관람 작품으로 꼽히는 <해변의 아이들>(1903)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명성대로 반짝이는 피부와 부드럽게 소용돌이치는 파도, 소년들의 천진난만함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작품이었습니다.
18세부터 프라도 미술관의 걸작들을 모사하며 그림을 그렸던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인기 작가가 됩니다. 소로야의 재능은 마드리드 국립전시회(1892)와 시카고 국제전시회(1893)에서의 금메달 수상 등 수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초기에는 사실주의적 화풍을 선보였습니다. 당시의 어둡고 슬픈 사회상을 담아냈죠. 초기작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생선이 비싸다고 말한다!>(1894)는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갓잡은 생선들이 보이는 배 위에 소년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습니다. 깡마른 앳된 소년을 치료하는 노인들의 표정은 어둡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수확만으론 치료를 하기위해 뱃머리를 돌릴 수 없을 겁니다. 소년은 목걸이 속 가족, 혹은 신에게 기도를 하며 버티겠죠. 생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화가의 붓끝입니다.
이 놀라운 재능의 화가는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온 뒤 프랑스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받아 화풍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변화를 통해 그는 물 위에 반사되는 찬란한 스페인 햇빛을 포착하는 탁월한 화가로 기억됩니다. 빛의 순간적인 특성을 능숙하게 표현하는 빠르고 능숙한 붓놀림을 통해서 가능했죠.
전시를 통해 초기의 사실주의적인 그림부터, 점차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밝아지기 시작하는 변화의 과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바다의 화가'였죠. 고향 발렌시아 바닷가에서 완성한 태양 아래 소년들을 통해 인상주의 화풍이 만개합니다. 또 자베아의 투명한 바다는 구도와 색채 실험실이었음을 알려줍니다.
2세에 부모를 잃고 이모와 살았던 그는 '가정적인 사랑꾼'이었습니다. 얼마나 애처가였는지 아내가 사망한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을 정도입니다. 소로야는 평생 아내 클리틸드와 세 자녀를 반복해 그렸습니다. 초상화는 무언의 대화입니다. 그의 가족 초상화에는 가족을 향한 그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의 전매특허인 섬세한 빛의 표현과 부드러운 색채, 낭만적인 주제들은 현대인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세계대전 직전, 스페인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를 증언하는 기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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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 30년만에 피사체가 된 게르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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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Guernica>, 1937 ©The Museo Reina Sofí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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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은 뭘까요. <시녀들>은 먼저 만나봤죠. 하나 더 남았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입니다. 이 걸작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입니다. 20세기와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은 1992년 개관했습니다. 당시 스페인의 소피아 왕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죠.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등 스페인의 세계적인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합니다.
원래 18세기 병원이었던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을 개조하고, 1989년에는 세 개의 유리 타워 건물을 추가해 지금의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게 됐습니다. 0층의 리처드 세라의 작품의 전시장도 볼만합니다. 넓직한 공간에서는 동시대 미술 전시를 다양하게 열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상인 벨라스케스상의 수상 전시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게르니카>는 349.3x776.6cm의 압도적인 크기의 대작입니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바스크 지역의 마을 게르니카는 독일-이탈리아군에 폭격을 당합니다. 이 참상이 피카소에게 영감을 주면서, 그는 전시를 불과 2달 남긴 시점에 파리 만국 박람회 스페인관에 걸 작품으로 <게르니카>를 그리게 됩니다.
불과 1달반의 시간만에 그는 홀린듯이 50여 점의 드로잉과 스케치를 그렸고, 거대한 캔버스에 다양한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이 그림이 위대한 이유는 20세기 평화와 반전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전 시위가 있을때면 어김없이 <게르니카>의 이미지는 깃발에 새겨지고 있죠. 이 모든 소란과 환호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생전에 이 그림에 대해 공식적으로 그 상징과 의미를 해석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유명세 만큼이나 이사도 많이 다녔습니다. 1937년 파리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스페인이 보유하던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피카소의 요청으로 1939년부터 뉴욕 현대미술관이 장기 대여되어, 숱하게 많은 전시를 통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했습니다. 1981년 스페인으로 반환된 뒤 1992년까지 프라도 미술관에 걸려있다가 1992년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전된 후 영구적으로 사진 촬영이 금지됐습니다.
저는 세 번째 만남이었지만, 이번 만남이 유난히 낯설었습니다. 그동안 눈으로만 오랫동안 담아두고,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했던 작품이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2023년 9월 1일부터 무려 30년간이나 금지됐던 사진 촬영이 허용되어, <모나리자> 앞을 연상시키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고요 속의 <게르니카>는 이제 옛 추억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군중의 환호 속의 <게르니카>도 이 그림의 운명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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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isa Roldán <El arcángel san Miguel venciendo al demonio> ⓒLa Galería de las Colecciones Rea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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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소장품 미술관에서 인기 만점인 대표작으로 루이사 롤단(Luisa Roldán·1652-1706)의 조각 <대천사 미카엘 악마를 물리치다(El arcángel san Miguel venciendo al demonio)>가 있습니다. 롤단은 스페인 미술사에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여성 조각가입니다.
조각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세비야에서 남편과 함께 화려한 채색이 특징인 성상(聖像)을 제작하는 공방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롤단이 조각을, 남편은 채색과 도금을 도맡았죠. 당대에 인기가 폭발하면서 1688년부터는 마드리드로 옮겨 왕실의 조각도 하게 됩니다.
'왕의 조각가'가 된 롤단은 1692년 카를로스 2세를 위해 대천사 성 미카엘의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회백색의 대리석 조각으로만 가득한 미술관에서 만난 보기 드문 채색 조각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삼나무를 섬세하게 세공했고 피부의 주름, 천사의 날개까지도 생생하게 표현된 채색이 정말 화려했습니다. 대천사의 평온함과 상대의 절망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둘의 치열한 대결과 그 결과가 한 눈에 이야기로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롤단은 이런 뛰어난 실력에도 자녀들이 모두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날 만큼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예술가의 삶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힘들고 척박한 길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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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코크 스트리트 <Karma II>
- 1월 31일~2월 15일
제이슨 함 갤러리가 런던에서 젊은 작가들의 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프리즈 런던이 운영하는 공간의 1층을 점령했습니다. 한지형, 김정욱, 마이크 리, 이목하 4인의 작가가 참여해 개성있는 구상 회화를 선보였는데, 활발하게 그림에 관해 문의를 하는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프닝에 이렇게 많은 런던 미술인들이 모인 소규모 전시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
- Carlos/Ishikawa <Moka Lee : FACE ID>
- 1월 18일~2월 15일
카를로스/이시카와는 영아티스트들의 등용문인 이스트 런던에 있습니다. 이 지역 작은 화랑이 주목한 작가가 수년내로 스타가 되는 일은 흔합니다. 이목하는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SNS의 이미지를 특유의 색감으로 표현한 초상화만 선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물과 풍경도 선보입니다. 프리다 칼로의 오마주인 수박 정물은 감탄이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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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는 스페인 미술여행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곧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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