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25번째 뉴스레터입니다. 런던에서 50주 동안 편지를 쓴다고 예상한다면 벌써 반환점을 도는 시기가 됐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올해 상반기에 여행을 더 많이 떠날텐데, 미술관과 전시의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고민이 됩니다. 남은 25번의 뉴스레터만으로 여행 이야기를 끝내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타협점을 찾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티센 보르미네사 미술관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스페인 여행은 끝이납니다.
25회 (2025.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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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철강왕의 유산, 미술관이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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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센 보르미네사 미술관. 정문 앞으로는 잘 조경된 정원이 꾸며져있다. ⓒMuseo Thyssen-Bornemisz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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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센 보르미네사 미술관은 스페인 최고의 근대 미술 컬렉션을 보유한 곳입니다. 뒤러, 티치아노, 카라바조, 루벤스, 렘브란트, 모네, 세잔, 반 고흐, 피카소, 키르히너, 칸딘스키, 호퍼, 폴록 등 이 곳이 보유한 컬렉션은 1000점이 못 미치는 규모이지만, 한 점 한 점이 모두 걸작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과 시대적으로도 완벽한 3분할을 이루는 이 미술관은 '수집왕'이었던 한 가문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기업을 일군 독일의 '철강왕' 아우구스트 티센(1842-1926)은 티센 기업의 창업자입니다. 1999년 크루프와 합병해 티센크루프라는 독일 최대의 철강 회사가 된 곳이죠. 지금은 매각되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볼 수 있는 티센크루프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그는 1905년부터 1911년까지 오귀스트 로댕에게 7개의 조각을 의뢰하며 컬렉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셋째 아들 하인리히가 헝가리 남작 가보르 보르네미샤 데 카손의 딸 마기트와 결혼하면서, 이 부부는 체계적인 컬렉팅을 하게 됩니다. 모델은 뮌헨의 대표 미술관인 알테 피나코텍(Alte Pinakothek)이었습니다. 스위스 루가노의 호수변에 지은 아름다운 빌라 파보리타(Villa Favorita)에 만든 개인 미술관을 만들어 대중에게 전시했습니다.
하인리히 남작 사후에도 막내 아들 한스 하인리히는 현대미술까지 컬렉션을 확장하며, 가문의 컬렉션을 광범위하게 넓혀갑니다. 1980년대 한스 하인리히는 스위스에 빌라 파보리타 확장을 의뢰하지만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아내의 나라인 스페인으로 컬렉션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구관과 신관의 조화가 이상적인 미술관 건축물에도 역사가 깊습니다. 건물은 프라도 미술관을 마주보던 빌라에르모사 궁전을 로페스 케사다 은행이 구입해 개조한 곳이었습니다. 1983년 이 은행이 파산하면서 스페인 은행 소유가 됩니다. 프라도 박물관은 확장 계획이 있었고, 마침 한스 하인리히 티센-보르네미사 남작의 소장품 보관 제안을 받으면서, 스페인은 이 궁전을 미술관으로 증축하기로 계획합니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거장 라파엘 모네오가 1989~1993년까지 미술관으로의 리모델링을 맡았습니다. 미술을 사랑한 한 가문의 위대한 컬렉션은 그렇게 1992년 대중에게 개방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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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컬렉터의 취향이 만든 최고의 인물-풍경화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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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 <Jesus Among the Doctors>, 1506 ©Museo Thyssen-Bornemisz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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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nico Ghirlandaio <Portrait of Giovanna degli Albizzi Tornabuoni>, 1489-1490 ©Museo Thyssen-Bornemisza |
영국의 문제적 왕의 초상화. Hans Holbein the Younger <Portrait of Henry VIII of England>, 1537 ©Museo Thyssen-Bornemisz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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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센 보르미네사 미술관은 컬렉터의 취향이 만들어낸 독특한 미술관입니다. 시대적으로는 14세기부터 티센 보르미네사 가문의 2대가 활동했던 20세기 미술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런데 장르적으로는 인물화와 풍경화를 집요할 정도로 성실하게 모았습니다.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아마도 두 장르만으로는 세계 어떤 미술관보다 훌륭한 컬렉션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그 어떤 근대 미술관에서도 볼 수 없는 개성이 넘치는 컬렉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층에서 14세기부터 시작되는 명작들의 길을 따라가다보면 발걸음을 빠른 속도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작품이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지오반나 델리 알비지 토르나부오니 초상화>(1489-1490)는 이 미술관의 가장 매혹적인 초상화입니다. 얼굴과 몸은 완벽한 비현실적일 만큼 이상적인 비율을 자랑하고 무표정한 여인의 표정과 함께, 호화로운 옷과 장식이 특징입니다.
금세공사로서 경력을 시작한 이 예술가는 손재주가 탁월해 화가로 전업을 했습니다. 그는 생전에는 인기가 많았지만, 남긴 명작의 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이 미술사에 새겨진 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제자 덕분에 부당한 비교를 당하지만, 이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보면 그의 실력도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능을 보는 안목도 뛰어났었던 것 같습니다.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고 14세의 미켈란젤로를 추천한 것도 기를란다요였으니까요.
초상화의 장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Jesus Among the Doctors>(1506)는 독일에 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귀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예수가 12세에 사흘밤낮을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한 성경 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왼쪽 하단에 랍비가 든 책의 사이로 튀어나온 종이에 뒤러만의 애너그램으로 작품을 그린 날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 속에 많은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이 독일 예술가는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노년은 놀랍고 독특한 방식으로 병치합니다. 오른쪽에 흰 모자를 쓴 랍비의 얼굴을 풍자적으로 왜곡되어 있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히에로니무스 보쉬를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이를 통해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두 르네상스 세계를 능숙하게 혼합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2층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은 몇 주전 이야기했던 카라바조의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입니다. 놓치지 말고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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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Honoré Fragonard <The See-Saw>, 1750-1752 ©Museo Thyssen-Bornemisza |
Édouard Manet <Horsewoman, Full-Face (L'Amazone)>, 1882 ©Museo Thyssen-Bornemisz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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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는 20세기 미술, 0층에는 프랑스 인상주의가 주를 이루는 19세기 미술을 중심으로 전시가 이어집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시소>(1750-1752)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프라고나르는 나뭇잎과 가지가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숲에 네 명의 인물을 그렸습니다. 자연을 생동감 있고 풍성하게 묘사하기로는 그를 따라갈 작가가 없습니다. 18세기 중반 로마에서 3년을 보내고 돌아온 뒤, 그의 그림은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붓질은 리듬감이 풍부해지고, 색상은 밝게 변화합니다. 이 그림은 프라고나르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런던의 월리스 컬렉션의 <그네>의 선례가 되는 작품입니다. 런던에 온 첫 주에 만난 작품이었죠. 미술관을 찾아 떠나는 사치스러운 여행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발견을 하게 해줍니다.
에두아르 마네는 구스타브 쿠르베의 충실한 후계자였습니다. 쿠르베는 도시의 다양한 사회 계층과 일상을 그리며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의 길을 열었죠. 마네의 인물화는 쿠르베의 주제를 계승합니다. 1882년작인 <Horsewoman, Full-Face (L'Amazone)>은 시기적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883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다음해의 전시 출품을 위해 그렸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마네 최후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와 같은 해에 그려진 작품이지만, 이 걸작 이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완성으로 남은 몇 안되는 작품입니다. 이 여성 마부의 인물화는 평생에 걸쳐 혁신을 이끌었던 그의 가장 진화된 버전인 셈입니다.
많은 그림과 영화에까지 영감을 준 에드워드 호퍼의 <Hotel Room>(1931)도 이 곳에 있습니다. 현대인의 고독을 은유하는 대표작이죠. 밤의 호텔방에서 기차표의 시각을 보고 있는 여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베르메르의 빛과 그림자의 사용이 극적인 그림과 흡사한 구도를 보여줍니다. 아내인 조세핀 니비슨을 모델로 호퍼는 이 대작을 그렸습니다. 마치 낭만주의 문학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숨어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호퍼의 첫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휘트니 미술관이 그의 그림 중 최초로 소장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풍부한 인상파 컬렉션의 다채로운 풍경화들도 정말 볼만하지만, 이 미술관의 인물화들은 정말 탁월합니다. 에드바르 뭉크의 인상주의 화풍의 인물화, 칸딘스키의 낭만적인 풍경화, 자코메티의 성마른 남자로 묘사된 자화상 등 작가의 대표작과는 다른 생소한 작품도 만날 수 있습니다. 취향의 미술관을 만나는 것은 이렇게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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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 <Hotel Room>, 1931 ©Museo Thyssen-Bornemisz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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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e Münter <Lady in an Armchair, writing (Stenography: Swiss Woman in Pyjamas)>, 1929 ©Museo Thyssen-Bornemisz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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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쓴 자신과 칸딘스키를 그린 작품. Gabriele Münter <Boating>, 1910 ©Gabriele Münter, VEGAP, Madrid |
만년의 풍경화. Gabriele Münter <The Blue Lake>, 1954 ©Gabriele Münter, VEGAP, Madr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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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센 보르미네사 미술관의 기획전시를 통해 만난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ünter, 1905~1962)는 정말 올해의 발견 중 하나입니다. 뮌터는 칸딘스키의 제자로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완전하게 묻혀 있었던 여성 화가입니다. 전시를 통해 처음 만난 그의 그림은 평생에 걸쳐 변화를 거듭한 인물화와 함께 북구의 서늘한 풍광을 생동감 넘치는 색채로 담아낸 풍경화가 매혹적이었습니다.
이 독일 표현주의 화가는 스승이었 바실리 칸딘스키와의 12년간의 로맨스의 대상으로만 오랫동안 소비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화가가 작년부터 티센 보르미네사 미술관의 성대한 회고전(2월 9일 폐막)과 함께 작년 11월부터 열린 구겐하임 뉴욕 미술관(4월 26일까지)에서의 회고전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겁니다.
칸딘스키는 뮌터와 여행을 함께하고 함께 창작을 하며, 뮌터의 작업을 후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을 떠나 1908년 뮌헨으로 돌아온 뮌터와 칸딘스키는 바이에른 알프스 산기슭에 있는 무르나우 마을에서 목가적인 환경과 사랑에 빠져 함께 생활합니다.
하지만 낭만적인 삶은 전쟁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머물지 못한 칸딘스키는 스위스로 도망쳤고, 뮌터도 그 뒤를 따랐지만 칸딘스키는 혼자서 모스크바로 떠났습니다. 1916년 스톡홀름에서의 잠시 동안의 재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뮌터는 위험을 감수하고 칸딘스키의 그림을 지하실에 숨겨두었는데, 집을 습격하는 동안에도 발견되지 않았죠. 뮌터는 80세의 나이에 칸딘스키의 작품을 뮌헨 시립 미술관에 기증했고 성대한 전시가 열렸습니다. 이 전시는 미술사의 위대한 회고전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멜로 드라마처럼 극적인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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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프리드만 <Jim Hodges>
- 1월 24일~3월 1일
짐 호지스는 사랑, 상실, 아름다움을 주제로 친밀한 기록 속에서 예술을 발견해왔습니다. 사진은 '크레이그의 옷장'이라는 작품입니다. 대리석, 청동으로 만든 흰색 옷장에는 떠난 이의 소지품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과거와 추억을 소재로 만든 조각이죠. '아버지와 아들의 2인 초상화'라 제목이 붙은 작품은 텅빈 창고였습니다. 이처럼 기억은 물질적인 것입니다. 공사 현장처럼 낯선 전시 공간이었지만, 저에게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를 연상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
- 화이트큐브 메이슨야드 <Virginia Overton>
- 1월 17일~2월 22일
강철의 연금술사가 등장했습니다. 버지니아 오버턴은 건축 현장에서 버려졌을 법한 강철 조각을 절단하고, 쌓고, 매달고, 구부려서 벽에 걸어놓았습니다. 찌그러지고, 구멍이 나고, 녹이 슨 재료는 캔버스의 형태로 정사각형의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재미있게도 전시의 제목은 '페인팅'입니다. 회화라는 언어를 재구성하는 작업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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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는 잠시 런던으로 돌아갑니다. 신상 전시가 있습니다. 곧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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