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갤러리 3층으로 올라가는 푸른색 철제로 장식된 나선형 계단이 주는 첫 인상은 정말 아름답고 인상적입니다. 전시장 내부의 천장화와 벽난로가 그대로 남아있는 건축물 자체로도 우아한 모습을 뽐내고 있어 많은 이들이 영국의 작은 미술관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기도 합니다. 

지난 주의 티센 보르미네사 미술관과도 컬렉터의 취향으로 만들어진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곳의 컬렉션은 특히 인상주의 작품이 유명합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최후의 걸작 <폴리 베르제르의 바>,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이 간판 작품입니다.

이밖에도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세잔의 작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고,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 조르주 쇠라의 작품도 많이 있습니다. 3층의 가장 크고 화려한 방(LVMH Great Room)에서 드가, 고갱, 모네, 르누아르 등의 작품과 함께 전시됩니다. 2층의 천장화가 그려진 옛 영국 귀족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방에서는 르네상스부터 18세기까지의 작품을 전시합니다. 미술관의 대표작은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인 바네사 벨의 <대화>, 피터 폴 루벤스의 <얀 브뤼헐 더 엘더의 가족> 등이 있습니다. 

칼바람을 뚫고 겨울의 코톨드 갤러리에 온 건 특별전시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림에 얽힌 사연을 듣고 싶어 기자간담회에 일부러 참석해봤습니다. 영국의 기자들을 대상으로하는 행사는 처음이었는데, 2시간이 넘게 각 작품을 하나하나씩 꼼꼼하게 설명하고 질문을 주고 받는 학구적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첩에 연필로 메모를 하는 나이가 지긋한 비평가들의 모습도 근사했습니다. 

특별 전시실은 3층의 인상파 작품이 있는 메인 전시 공간에서 이어지는 두 개의 방을 사용합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전시의 수준이나 밀도 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이 미술관은 작년 큰 인기를 얻었는 모네 전시를 마치고, 이번에는 한 컬렉터의 소장품 25점을 통해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고야에서 인상주의로 : 오스카 라인하트 컬렉션의 걸작들>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2월 14일부터 5월 26일까지 이어집니다.

스위스 취리히 외곽의 빈터투어에 위치한 오스카 라인하트 컬렉션을 소장한 미술관 '암 뢰머홀츠(Am Römerholz)'의 작품들이 친구를 만나러 런던에 왔습니다. 200여 점의 걸작이 전시된 이 미술관은 20세기 초반에 오스카 라인하트(1885~1965)가 컬렉션과 집을 스위스에 기증하면서 탄생했습니다. 

오스카 라인하트는 사무엘 코톨드와 동시대 인물로 예술에 관한 비슷한 취향을 공유했고, 만나서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스위스의 귀한 작품들이 런던에 처음 소개되는 전시가 성사됐습니다. 

전시의 전체 요리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세 마리 연어 스테이크 정물>(1808-12)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거장의 이 작품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 덩이 연어를 사실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스페인과 연합군이 나폴레옹 군과 싸운 반도 전쟁 당시 그린 정물 12점 중의 하나입니다.

정치적 격변과 검열이 있었던 시기 그는 피가 뚝뚝 떨어질 것같은 생선의 살점을 통해 전쟁의 잔인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인상주의에 영향을 준 작가들인 제리코의 <군 계급의 망상에 시달리는 남자>(1819-22), 쿠르베의 <해먹>(1844)도 함께 전시됩니다. 

전시의 메인 코스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회화들입니다. 툴루즈-로트렉의 무대 위를 그린 <The Clown Cha-U-Kao>(1895)을 비롯해 르누아르와 세잔의 감각적인 작품들이 포함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카미유 코로의 <책 읽는 소녀>(1850-1855)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유명 컬렉터인 피터 쇼케 등을 그린 르누아르의 초상화 3부작도 소개됩니다. 세잔은 정물화와 풍경화를 비롯해 6점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어, 미술관의 유명한 세잔 컬렉션과 좋은 대비를 만들어냅니다.

마네의 모던 라이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카페에서(Au café)>(1878)에도 숨겨진 사연이 있습니다. 파리의 라이히쇼펜 카페를 대형 회화로 그리던 그는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 캔버스를 둘로 쪼개고 각각 다른 두 점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왼쪽 부분은 <카페에서>가 되었고, 오른쪽 부분은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카페 콩세르의 코너>가 되었죠. 사무엘 코톨드의 기부금으로 이 작품은 구입될 수 있었습니다. 등장 인물들의 정체나 관계는 모호하지만, 카페 창문에 붙은 포스터는 폴리 베르제르 바에서 공연되는 공중그네가 그려져 있습니다. 최후의 걸작의 탄생을 암시하는 작품인 셈입니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반 고흐의 유명한 그림 두 점입니다. 반 고흐는 <아를 병원의 병동>과 <아를 병원의 안뜰>(1889)에서 정신 질환 초기와 귀를 자른 뒤 환자로 입원했던 병원을 묘사했습니다. 코톨드 갤러리의 얼굴과 같은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과 함께 두 그림이 전시되는 것은 처음입니다. 미술관에서는 이 두 점은 반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보내지지 않은 그림으로 라인하트 재단 외부에서의 첫 전시라고 설명했습니다. 

코톨드 갤러리의 간판 작품인 <폴리 베르제르의 바>는 이 한 점의 그림만으로 정말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걸작입니다. 마네가 매독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1년 전인 1882년 완성된 이 그림을 저는 LA 게티 센터에서 처음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그림이 상징하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근대성(Modernity)'일 겁니다. 

이 거울의 존재가 그림을 자유롭게 해방시킵니다. 알버트 보이메는 저서에서 이 거울을 상상의 공간으로 해석합니다. 좁은 바에 갇힌 지친 표정의 노동자가 아닌 로맨스를 상상하기도 하고, 탈출을 꿈꾸기도 하는 여인의 상상 속 공간이라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미술사가 루스 E. 이스킨은 마네가 예술 시장을 소비문화로 은유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당대의 예술품이 백화점 상품처럼 거래되던 살롱의 상업화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지옥에서 온 개 세마리 같았습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크기로 개를 표현한 극사실주의 조각이 타데오스 로팍에 등장했습니다. 다른 방에는 거꾸로 매달린 닭이 있었습니다. 생생한 인체 조각으로 심리적 초상화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던 론 뮤익이 동물원을 전시장으로 옮겨온 듯한 조각을 선보였습니다. 나란히 개인전을 연 폴란드의 작고 작가 테레사 팡고스카의 푸른 색조의 해체된 여성의 신체를 그린 그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유럽의 온화한 날씨가 그리운 요즘입니다. 곧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