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한국 귀국이 2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리할 것들이 많아서 바빠지는 중입니다. 일단 이탈리아 이야기로 영국에서의 편지는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지만, 영국에서의 1년 동안만 뉴스레터를 쓰려던 계획은 좀 수정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못다한 이야기들은 한국에서 시즌2를 통해 계속 해볼 생각입니다. 일단 로마로 떠나 보겠습니다.
49회 (2025. 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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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17세기 궁전에서 만나는 로마의 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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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팔라조 바르베리니의 입구. 입구 앞에는 작은 분수와 정원이 꾸며져 있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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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짐을 싸고 풀고 지도를 보고 낯선 골목을 찾아다니는 건 생각보다 꽤 체력을 소모시키는 일입니다. 유럽 낡은 집의 집열쇠와 씨름하는 것도 쉽지 않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말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로마에 도착했을 때, 저는 마음이 두근두근거리는 상태였습니다.
불과 2주전까지도 계획에 없던 즉흥적 여행이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지를 찾을 때와는 다른 전투적인 마음가짐으로 이 곳에 왔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두번이나 왔던 이탈리아에 다시 온 건, 단지 카라바조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나폴리에서 그의 제단화가 걸린 성당을 가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고, 로마는 경유지로 딱이었죠.
팔라조 바르베리니(Palazzo Barberini)는 로마에 위치한 17세기에 건축된 옛 궁전으로, 지금은 국립 고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테베레 강변의 팔라조 코르시니와 함께 운영되어 통합권으로 입장이 가능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공간이죠. 그럼에도 바티칸 박물관의 명성에 가려진 이 곳을 일부러 찾는 이는 많지 않을 겁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앤 공주가 기자들을 만나는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해 유명한 곳이기도 하죠. 저는 정문 앞의 분수와 작은 정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고대 조각과 도자기 등 다양한 컬렉션을 전시하는 이곳에는 라파엘로, 피에로 디 코시모, 브론지노, 한스 홀바인, 로렌조 로또, 틴토레토 등의 작품이 다채롭게 걸려있습니다.
이 미술관에서 세기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카라바조 2025>(3월 7일부터 7월 6일까지)는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그의 작품 24점을 모아 한자리에 걸었습니다. 팔라조 바르베리니는 <나르키소스>와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명상하는 성 프란시스>가 있는 미술관으로 유명합니다. 자매 미술관인 팔라조 코르시니에는 <세례 요한>이 있죠. 4점을 보유한 로마 국립 고대 미술관만큼 카라바조 특별전을 열기 적합한 공간은 없을 겁니다.
이 전시와 함께 보르게세 미술관을 비롯한 로마 곳곳의 성당과 미술관에 14점의 작품이 걸려 있으니 한 번의 여행으로 카라바조의 작품 절반 이상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소식이 유럽 전역으로 알려지기는 쉽지 않았던건지, 관람객은 이탈리아인이 절대적으로 많아 보였습니다.
전시장은 무척 어둡고 좁았습니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온통 이탈리아어만 들리는 것도 무척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흰머리가 성성한 관람객이 특히 많았습니다. 홀린듯이 자국의 국민 화가를 관람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진지한 표정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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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로마에서 재회한 카라바조의 걸작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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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avaggio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599 ©Palazzo Barberi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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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와 마리아 막달레나>, 1598. 세 그림을 차례로 보자. 모두가 한 모델을 사용해 그린 그림들이다. ©Palazzo Barberini |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1598 ©Palazzo Barbe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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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cissus>, 1597-1599 ©Palazzo Barberi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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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는 4개의 공간에 걸쳐 펼쳐집니다. 각 전시실의 주제는 로마 데뷔, 어두운 음영에 활력을 불어넣기, 로마와 나폴리 사이의 신성하고 비극적인 것, 엔드게임이라는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한 비평가는 이 과장된 카피가 거장을 통속극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카라바조의 극적인 인생은 지금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를 부활시킨 인물은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 로베르토 롱기(1890~1970)입니다. 평생 카라바조를 연구한 롱기는 1951년 밀라노 왕궁에서 전설적인 카라바조 전시를 열었고, 이 전시는 카라바조를 20세기에 부활시킨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죠. 이번 전시는 롱기의 전시를 부활시킨 것처럼, 방마다 롱기의 글을 벽에 새겨넣어 카라바조의 삶을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어두움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아주는 작품은 카라바조의 존재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한 번은 봤을 법한 유명한 초기작 <나르키소스>입니다. 그림 속 검은 호수는 빛을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거울처럼요. 무릎을 꿇은 이 아름다운 청년은 금방 물속에 빠질 것만 같았죠. 카르바조의 진품이 맞는지 논쟁이 여전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여는 작품으로는 잘 어울렸습니다.
어두운 전시실에 조도가 높지 않게 세팅된 조명은 키아로스큐로 기법(명암대비법)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더군요. 사진에는 담기지 않지만 검은색에 담긴 미묘한 빛과 어둠은 그림 앞에 다가갈때만 보였습니다. 인파를 뚫고 한점 한점 그림에 집중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도장깨기'를 하는 저에게는 반가운 작품이 많았습니다. 20점의 그림을 세계에서 대여해온 이 전시 중 <카드 샤프>를 비롯한 5점이 미국에서 귀환했고, 총 9점이 이탈리아 밖에서 왔습니다. 제 여행비용을 줄여준 고마운 전시인 이유입니다.
반가운 재회도 있었습니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까지 가서 만났던 가장 최근 새로 발견된 진품 <에체 호모>도 로마로 여행을 와서, 만년작인 <그리스도의 고문> 옆에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거대한 크기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참혹한 묘사만큼 배경이 극도로 어두운 검은색이어서, 정말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에체 호모>의 옆에서 나란히 걸려 진품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죠.
역시나 미술관의 간판인 유디트의 인기는 뜨거웠습니다. 유디트의 방에는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온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와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마르다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함께 걸려있었죠. 유디트와 마리아, 그리고 성 카타리나의 얼굴은 한 눈에도 같은 여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에나의 유명한 고급 매춘부 필리데 멜란드로니가 모델인 세 그림이 한 공간에 모아놓은 겁니다.
성 카타리나는 카라바조의 인물화의 특징인 검은색 배경이 처음 전면으로 나온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설명되고 있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는 유디트의 역동적인 동작과 피가 흥건한 폭력성이 극도로 강조된 그의 작품입니다. 파리에서 카라바조의 추종자였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을 본 지 1주일만에 카라바조의 원작을 보게된 것도 반가웠습니다.
프랑스 작가 야닉 에넬의 <고독한 카라바조>를 통해 다시 보게 된 그림이기도 합니다. 고등학생 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이 그림 속 여인에 매혹되어 평생을 카라바조를 쫓게된 경험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여성의 얼굴, 귀에 걸린 진주와 나비 리본, 어깨선과 눈빛은 작가를 평생에 걸쳐 사로잡았습니다. 소년은 15년이 지나서야 이 그림을 보게 됩니다. 이 고백을 읽은 뒤 만난 그림은 전혀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이 작가의 낭만적이고도 철학적인 고백입니다.
"위대한 화가란, 삶의 어느 순간, 즉 단어와 사물이 낡아서 투명성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을 때, 텅 빈 빛, 꺼진 불꽃의 둥지, 색이 없는 작은 벽에 도달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더블린에서 온 <체포되는 예수>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수를 체포하려는 병사와 뒤엉킨 유다와 사도들의 모습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극적입니다. 아일랜드에 가기 전에 이 곳에서 먼저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음 전시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훗날 교황 우르반 8세가 되는 카라바조의 열렬한 후원자 마페오 바르베리니(Maffeo Barberini)의 초상화입니다. 최근에야 카라바조의 작품으로 확인된 이 그림이 바르베리니의 궁전에서 공개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죠.
전시의 마지막 그림은 잊혀지지 않는 카라바조의 유작 <성 우르술라의 순교>(1610)입니다. 작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7월까지 방문했던 걸 놓친지라 더 반가웠죠. 발견 당시에 훼손이 심한 상태였기에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대대적 복원이 이뤄졌는데, 재창조에 가까운 복원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원본보다도 더 선명하게 복원됐다고하지만 그림의 보존 상태는 여전히 안타까워보였습니다.
이 그림은 그 어떤 카라바조의 그림과도 달리 보이더군요. 유령처럼 하얀 우르술라는 훈족 왕의 화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음을 직감한 듯 보입니다. 혼란과 공포가 아닌 담담한 표정으로 화살을 바라보죠. 그녀의 뒤에 우르술라 만큼이나 빛의 조명을 받는 병사가 보입니다. 숱한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던 카라바조의 마지막 초상입니다. 어둠 속에서 이 남자는 그림 너머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죠. 카라바조의 마지막 비명을 우리는 들을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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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체>(왼쪽)와 <그리스도의 고문> ©김슬기 |
<마페오 바르베리니의 초상> ©Palazzo Barbe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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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술라의 순교>, 1610 ©Palazzo Barberi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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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evra Cantofoli <Woman wearing a turban (supposed portrait of Beatrice Cenci)>, 1650 ©Palazzo Barberi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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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조 바르베리니를 상징하는 그림은 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 미술관의 대표적 이미지로 사용되는 지네브라 칸토폴리의 <터번을 쓴 여성>(1650)입니다.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의 초상화로 알려진 터번을 쓴 여성은 화가가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 귀도 레니로 잘못 알려졌던 작품입니다. 지네브라 칸토폴리(Ginevra Cantofoli)는 뒤늦게 명예를 되찾았죠.
이 작품은 교황 클레멘트 8세 알도브란디니에 의해 처형된 여성 베아트리체 첸치를 다룬 논란의 작품입니다. 자신을 강간한 귀족 아버지를 망치로 살해한 죄로 처형당한 첸치는 훗날 전설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 주체적인 행위는 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인물로 호명되기도 하구요.
그림 속 여인의 표정은 무척 묘하게 보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여인은 표정을 읽기가 어렵고, 우울한 감정이 슬쩍 드러납니다. 동시에 한없이 순수해 보이는 모습은 그녀의 죄를 화가가 변호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소녀의 그림은 18세기까지도 르네상스 거장의 그림으로 알려지면서 스탕달, 퍼시 셸리, 뒤마 등 많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오랫동안 로마를 찾는 예술가들의 순례의 대상이 되었죠. 심지어 괴테는 1777년 친구 G. 짐머만에게 "이 얼굴에는 내가 다른 어떤 인간의 얼굴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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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고시안 로마 <Richard Avedon : Italian Days>
- 3월 12일–6월 27일
촉박한 일정으로 미술관을 뛰어다닐 시간도 부족했던 제가 유일하게 로마에서 찾은 갤러리는 팔라조 바르베르니에서 가까운 가고시안 로마였습니다. 오벌 구조의 생각보다 넓은 실내에서는 리처드 아베돈의 사진전을 열고 있었습니다. 로마, 시칠리아, 베니스의 거리에서 촬영한 20여 장의 사진은 활기가 넘치는 인물들이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잘 보여주더군요. 동시에 재키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 등 스타들의 초상화도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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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기행은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곧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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