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여행자에겐 가장 흥미로운 모험은 에케베르크 언덕에서 펼쳐집니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10분 남짓 달리면 언덕 위 공원이 나타납니다. 에케베르크 공원(Ekebergparken)은 뭉크의 '절규' 영감을 받은 장소이자 현대 미술 조각이 자연 속에 펼쳐져 있는 곳이죠. 저녁이면 <절규>처럼 빗빛 붉은 노을로 물드는 곳입니다. 하지만 낮에 찾은 공원은 입구부터 그림 같은 오슬로와 피오르드의 전망이 펼쳐졌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보며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운동화 끈을 묶고 천천히 오르면 곧 조각들이 인사를 건넵니다. 입구의 안내판에는 48점의 작품 지도가 그려져 있었죠. 3km가 넘는 산책로를 따라 현대 미술 작가들의 '올스타전'이 펼쳐지는 숲속 미술관이었습니다. 여러 트래킹 코스가 지도에 그려져있는데요. 주요 작품을 고루 만날 수 있는 주황색 길을 따라가는 코스는 1.6km에 달합니다.
모두가 관람의 시작점으로 삼는 전망대에는 하우메 플렌사의 <클로에>가 서있습니다. 반짝이는 금속 재질의 조각은 거대한의 얼굴의 모습이지만, 가까이가면 착시 효과였음을 알게 됩니다. 납작하게 눌린 얼굴은 측면에서 바라볼 때만 눈을 감은 여인의 옆모습을 온전히 보여줍니다.
입구 근처에는 오귀스트 로댕, 살바도르 달리,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의 거장의 조각이 먼저 보였습니다. 선선한 날씨여서 용기를 내고 저도 주황색 길을 따라 걸어봤습니다. 니키 드 생팔, 댄 그레이엄, 제니 홀저, 루이즈 부르주아, 로니 혼, 폴 매카시 등은 조각 공원이라면 꼭 있어야할 익숩한 이름이죠.
이 곳에는 J들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제임스 터렐은 <에케베르그 스카이 스페이스&간츠펠트>에 환상적인 색채와 빛의 예술을 숨겨 놓았습니다. 오래된 저수지에 위치한 지하 벙커처럼 지어진 공간은 일요일에만 열립니다. 저도 아쉽게 이 곳은 놓치고 말았죠. 특히 천장에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스카이 스페이스는 특별히 설계된 공간으로 일출과 일몰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백야의 나라에서 이 시간에 만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겠지만요.
언덕을 오르다 갈림길에서 숲 속으로 들어가면 음악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피필로티 리스트의 비디오-사운드 설치 작업 <노르딕 픽셀 포레스트>는 최고의 인기를 자랑합니다. 2022년 공개된 피필로티 예술가의 두번째 설치 작품이죠.
나무 사이로 24,000개의 LED 조명이 400개의 강철 와이어에 걸려 있더군요. 음악 소리에 맞춰 빛이 춤을 춥니다. 피필로티 리스트는 관람객이 단순히 보고 듣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과 물리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감각적인 예술을 고안한 겁니다. 사람들은 색, 빛, 소리의 숲 사이를 걸어가보기도 하고, 주위의 나무에 걸터 앉아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고된 등산을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는 인상적인 작품이 몇 개 더 기다립니다. 언덕 정상까지 숨을 헉헉대며 오르면 피요르드가 한 눈에 들어오는 탁트인 평원이 나타납니다. 이 곳에 있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조각 <천사의 해부>는 인체의 절반이 해부되어 뼈와 장기를 드러낸 채 서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은 한 몸임을 보여주는 백색의 날개 달린 천사는 그의 죽음을 예술로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맞은 편에는 매트 존슨의 <공중에 떠 있는 여자>가 있습니다. 주름이 어찌나 사실적인지 천을 덮은 여인이 천 아래 살아 숨쉬는 것처럼 보이는 조각이죠. 작가는 무겁고 단단한 대리석이라는 소재를 나체의 여성을 무중력적이고 관능적이며 부드러운 무언가로 변모시킵니다.
숲 속에 숨어있어 보물찾기를 하듯 찾아야하는 제니 홀저의 <사포의 절벽>은 무척 반가운 작품입니다. 등산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주거든요. 해안을 향해 놓인 바위에 새겨진 글귀는 사포의 시의 한 구절이죠. 고전학자이자 시인인 앤 카슨이 번역한 사포의 시는 세월의 풍화 작용을 온 몸으로 맞아 글귀가 꽤 흐릿해져 있었습니다.
"내 피부 밑에는 얇은 불꽃이 흐르고,
눈은 아무것도 못하고, 귀는 포효하며,
땀이 흘러내리고, 몸이 떨린다,
나는 풀보다 더 푸르고, 나 자신에게 그렇게 보인다
죽음에 가까운 곳이었다."
하산길에 마지막으로 만나면 좋을 작품은 엘름그린&드라그셋의 <딜레마>입니다. 이들은 평범한 사물을 낯선 환경에 배치해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입니다. 다이빙대 위에선 여섯살 소년의 청동 조각이 보입니다. '딜레마'는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을 은유하고 있죠. 다이빙 보드의 끝이라는 아슬아슬한 위치는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선 인간을 상징하며, '뛰어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