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놀랍게도 <모나리자>입니다. 북유럽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원화가 있을리는 만무한데,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채색이 선명해서 한눈에 봐도 복제작임이 분명한 이 작품이 걸려 있어 신기했습니다.
다빈치의 작품은 후대의 습작과 복제가 빈번하게 있었던 작품입니다. 1837년 국립 미술관 수장고에서 발견된 이 복제작은 노르웨이 시민들의 미술적 취향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당당히 전시되고 있었죠. 17세기의 무명화가가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전 컬렉션에서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존재감이 두드러집니다. 이 미술관은 이탈리아 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아르테미시아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결이 있습니다. DNB 저축은행이 2022년 경매에 나온 아르테미시아의 희귀한 서명작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와 하녀>(1639-1640)>를 구매해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 장기 대여를 결정합니다.
이미 미술관은 아르테미시아의 또 다른 걸작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소장하고 있었죠. 여기에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공방에서 10대 시절 아르테미시아가 제작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작까지 더해지며, 그녀의 초기부터 후기 화풍을 모두 볼 수 있는 독보적인 컬렉션을 완성하게 된겁니다. 오슬로에 그녀의 작품이 많은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여성 작가의 작품을 확보하려는 미술관의 의지에 후원이 더해지면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그녀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보통 서명을 하거나 날짜를 적지 않은 작품이 많아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번 방문에서는 보존 작업에 들어간 1640년경에 그린 아르테미시아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이번 방문에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가장 유명한 소재인 유디트의 또 다른 버전을 만났습니다.
이 곳에서 만난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가진 그녀의 시녀>는 1639년 또는 1640년에 그려졌습니다. 희귀하게도 아르테미시아의 서명이 유디트가 든 칼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죠. 시기상으로 아르테미시아가 런던에서 찰스 1세 왕의 궁정에 있을 때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와의 협업으로 여겨지는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비교해볼 수 있었는데요. 1608년에서 1612년 사이에 그려진 같은 주제의 그림 <유디트와 시녀>는 처음에는 오라치오의 그림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조수 역할을 아르테미시아가 맡았음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그녀의 컬렉션으로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두 작품 중 어느 쪽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지는 지금도 논쟁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유디트는 하녀 아브라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습니다. 이 용감한 행동을 공모한 두 여성을 연결하는 다정한 제스처이자, 침착함의 표현입니다. 홀로페르네스의 호화로운 텐트의 에메랄드빛 커튼 아래에서 두 사람은 단호한 결의를 보여줍니다. 하녀 아브라는 그림에서 눈에 띄게 젊은 모습인데요. 다른 많은 화가들은 하녀를 주름진 노파로 묘사한 것과는 다른 표현이었죠.
<방해받은 밀회>도 작가가 여전히 논란 중에 있는 작품입니다. 한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으로 오인된 적이 있으나, 현재는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루틸리오 디 로렌초 마네티의 작품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젠틸레스키의 참여가 있었을 가능성도 여전히 재기되고 있죠.
미술사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이 미술관이 전략적으로 이 여성 작가를 간판 작가로 옹호하고 있는 것은 무척 대담한 전략으로 보였습니다. 분노부터 우울함까지 그녀의 그림에 담긴 격렬한 감정은 오늘날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연구자 니나 그람-비쇼프는 이 다채로운 감정 표현에서 그녀는 아버지 오라지오와 동시대 대부분의 작가들을 능가한다고 평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