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저의 길고 길었던 미술 여행 이야기는 이번 주가 마지막입니다. 82주 동안이나 쓰게 될 줄 몰랐는데요.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뉴욕의 MoMA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만났던 짧은 후기를 마지막으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긴 여행은 끝이 났지만, 몇몇 분들의 요청과는 달리 여행의 후반전도 책으로 묶을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대대적 각색을 하지 않는 한 현대 미술관을 위주로 다룬 점과 여행 이야기라는 두 공통점이 출판을 하기에 제약이 많아 장담할 수가 없네요. 저에게 행운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주부터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미술시장에 관한 글을 쓸 될 예정입니다. 제가 이메일 주소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이 뉴스레터를 통해서는 미술계에서 재미있는 이벤트가 벌어지면 종종 써볼까 생각하고 있으니(아직 아이디어가 없는 상태;;) 잊지는 말아주시길!
82회 (2026.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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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8년 만의 뉴욕 미술관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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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겨울의 MoMA 조각 정원. 공사로 출입이 막혀 있었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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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욕 여행에서는 각각 하루씩 시간을 할애해 MoMA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MoMA는 모든 전시실이 새롭게 꾸며진 것처럼 낯설었습니다. 이 곳 식당에는 아주 좋은 기억이 있고, 위치와 아트숍도 좋아합니다. MoMA에서는 루스 아사와(Ruth Asawa, 1926-2013)의 회고전을 꼭대기층에서 열고 있었습니다. 식물의 뿌리를 닮은 기하학적이고 프렉탈 구조를 연상시키는 조각들이 전시실을 가득 채운 모습은 식물원에 들어온 것처럼 보여 신선했습니다.
제가 뉴욕에 온 게 8년만이니 이 미술관도 8년만이었지요. MoMA는 20세기 모더니즘의 사조를 직접 써내려간 미술관입니다. 이 곳을 둘러보기만해도 교과서를 보는 것처럼 각 사조의 대표작을 모두 만날 수 있을 정도니까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앙리 마티스의 베네치안 레드로 가득 칠해진 <붉은 아틀리에>,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정도 밖에는 기억나는 작품이 없더군요.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축>은 생각보다 굉장히 작은 크기여서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대표작을 다시 만나는 것보다도 각층을 거닐면서 새롭게 이 곳을 채우게 된 '신상' 작가들의 면면을 보는 것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미국의 간판 작가로 거듭나고 있는 마이크 켈리의 방과 양혜규의 방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4층 뷰가 좋은 안뜰을 향한 통창 옆에 설치된 포스트 미니멀리즘 조각가 조엘 샤피로의 대형 조각 작품 <ARK>의 존재감도 돋보였습니다. 형형색색의 나무 블록과 빔을 사용한 구조물은 차세대 알렉산더 칼더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브루클린쪽으로 기차를 타고 강을 건너 MoMA PS1도 처음 찾았습니다. 해가 진 이후에 힘들게 미술관을 찾아와 저는 다시 한 번 김아영 작가의 개인전을 만났는데요. 돌아보니 약 1년여동안 해외에서만 런던, 코펜하겐, 뉴욕에서 김아영 작가의 전시를 네 번이나 봤네요. 특히 2022년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이 네 번의 전시에 모두 전시가 됐으니 지겨울만도 했죠.
그럼에도 해외에서 만나는 한국 작가들은 언제나 반갑고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PS1은 옛 학교 건물이라 층고가 낮고 공간이 크지 않다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설치의 묘를 잘 발휘해 영상 작업을 만나기 좋은 3개의 방을 만들어 놓은 듯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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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메트 뮤지엄에서 만난 핀란드 국민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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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사드에 4점의 귀여운 동물 사총사 사슴, 코요테, 다람쥐, 매를 형상화한 제프리 깁슨의 조각이 설치된 모습.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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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터스 생 고든의 '미니 버전' 다이애나 황금 조각이 있는 아메리칸윙의 조각 코트. ©김슬기 |
리만 컬렉션에서는 과거 그의 저택을 재현해 놓았다. 리모델링 중이라, 일부 작품이 한국으로 갈 수 있었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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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뮤지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요하네스 베르메르 <잠든 하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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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크만이 뉴욕에 머물던 시기에 완성한 삼면화 <시작>이 중세 삼면화와 나란히 설치됐다. 이런 조화로운 전시 구성이 메트의 매력이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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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반을 돌아보니, 저도 참 많은 미술관을 다녀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크고 유명한 미술관에 관해서는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런던에서는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이 그랬었죠. 미국에서도 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에 대해서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서점에만 가도 이 미술관을 다룬 책만 여러권이거든요.
공교롭게도 1890년 4월 13일 문을 연 미술관의 생일에 저는 이 글을 쓰고 있네요. 저는 지난주에 트레바리 북클럽으로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를 다루며 이 책을 2회독하게 됐습니다. 마침 미술관을 다녀와 다시 책을 읽으니 최근 만났던 작품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전혀 다른 책을 읽는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 책의 존재가 메트에 관한 글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
저는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 이야기에 더욱 흥미를 느낀 반면, 토론을 한 이들 중 메트를 방문한 경험이 없는 분들은 "이 책이 어렵게 느껴졌다"면서도 일터로서의 메트에 관한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는 감상이 많아 신기했습니다. 저는 '업세이'란 말도 배웠습니다. 일에 관한 에세이라는 출판 용어라고 하는군요. 서점의 블루오션은 언제나 업세이라는 해석과 함께 말이죠.
브링리의 유쾌하고 사려깊은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전시실 구석구석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푸른 제복의 경비원'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10년의 시간을 들여서 이 공간을 채운 모든 작품과 대화를 나눈 사려깊은 작가의 자기고백적인 애도의 글은 다시 읽어도 정말 감동적이더군요. 책의 귀퉁이를 너무 많이 접어놓아서 너덜너덜해질 정도였습니다. 언젠가는 이런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쓸 수 없는 소재의 책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게 만들었죠.
저에게 브링리의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가 고른 단 한 점을 가져가고 싶은 작품이었던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아닌, 피터 브뤼헐의 <곡물 수확>이었습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의 맨 앞자리를 이 성스러운 오합지졸들에게 내주었다"(164쪽)는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책에서 몇번이나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이번 방문에서 저 또한 이번 여행은 추수를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만났던 반가운 예술가의 또 다른 작품들이 어딜가나 반갑게 맞아줬거든요.
미술관 정문에 새롭게 꾸며진 파사드 전시에서 제프리 깁슨을 만났지요. 2024년 가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을 장식했던 존재감 넘치는 작가를 다시 만난거죠. 스위스 취리히 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는 어느새 고국으로 돌아와 메트에 귀여운 동물 조각 4점을 설치해 놓았더군요.
내셔널갤러리 <시에나> 전에서 만났던 두초의 걸작 <성모자>, 로마에서 봤던 카라바조의 <뮤지션>은 반년 만에 이 곳에 돌아와 있었죠.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내셔널 갤러리의 그의 독방이 떠오르게 했고요. 엘 그레코와 피카소의 초상화를 나란히 걸고, 막스 베크만이 뉴욕에 머물던 시기에 완성한 삼면화와 중세 재단화 삼면화를 나란히 거는 메트 특유의 친절한 구성이 다른 미술관과 차별화되는 이유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브링리의 책에서 주인공 중 하나로 등장하는 베르메르의 작품은 5점이 나란히 걸려 맞아줬습니다. <잠든 하녀>의 사연이 궁금했지요. 왜 하녀는 졸고 있을까, 문간의 남성의 흔적은 지워졌을까하고요. "가끔 친숙한 환경 그 자체에 장대함과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가 바로 그 느낌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라고 브링리는 썼습니다. 저는 비록 베르메르의 걸작이 걸린 이 방이 이토록 고요하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말이죠.
MoMA와 경쟁하듯 21세기 작가들의 그림을 꾸준히 수집해 정전을 쓰고 있는 메트의 모습도 확인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워진 현대미술 전시실의 면면을 보면서 피터 도이그, 해롤드 엔카트, 니콜 아이젠만를 비롯해 1985년생인 도론 랭버그까지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 젊은 작가의 <밤의 연인들>이 참 좋았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시에나>를 공동 기획해 먼저 선보인 곳도 메트였고, 이번에 만난 많은 기획 전시도 그 면면이 놀라웠죠. 지금은 세기의 전시인 라파엘로 특별전 <숭고한 시>를 열고 있습니다. 무려 8년 동안 준비해서 60개 미술관의 작품을 공수해서 걸었죠. 영국 생활 1년 덕분에 부유하기만한 신대륙보다도 구대륙을 더 선호하게 됐지만, 여전히 뉴욕은 세계 미술의 중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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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린듯 북구의 작가를 보고 있는 뉴요커들 ©김슬기 |
1883년작 <빨래 말리기>의 색감이 참 좋았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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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이자 아테네움 미술관에서 온 <검은 배경의 자화상>, 1915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타계 2년전에 그린 만년의 작품. 극도로 어두운 자화상이 충격적이다. <붉은 점이 있는 자화상>, 194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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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전시가 있었습니다. 핀란드의 국민 화가 헬레네 셰르프벡입니다.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회고전을 할거라곤 예상 못했거든요. 헬싱키 아테네움에서 저는 처음 이 화가의 그림을 봤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끝없이 우울하고 고독한 '블랙 페인팅'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셰르프벡은 20세기 초 독보적인 리얼리즘·표현주의 화풍으로 노화와 심리적 내면을 다룬 자화상으로 유명합니다. 이번 전시 <침묵을 보다(Seeing Silence)>는 제목으로, 셰르프벡이 일생에 걸쳐 그린 자화상과 초상화, 정물화를 통해 그녀의 심리적 내면과 노화의 과정을 담담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핀란드를 비롯해 세계에서 대여해온 작품 60여점 중 40여 점이 자화상일 정도로 그녀는 자화상이 유명합니다.
그녀는 고국에서 너무나 사랑받는 화가여서 그녀의 생일인 7월 10일은 핀란드의 '국립 회화의 날'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라는데요. 그런데도 북유럽 외 지역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습니다. 엄청난 개인적 고난을 극복하고 수십 년 동안 외딴 곳에서 작업하며, 그녀는 강한 의지로 인상적인 작품을 남겼죠. 이번 전시는 현대 미술사에서 그녀가 마땅히 차지해야 할 자리를 재조명합니다.
1862년생인 셰르프베크는 십 대 시절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서 유학했으며, 자연주의적인 야외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그는 특히 병든 아이를 그린 <회복 중인 아이>(1888)를 비롯한 전통적인 사실주의 회화로 유명해졌는데, 이 작품은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했습니다.
병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핀란드로 돌아온 후에야 그녀의 화풍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죠. 숙련된 사실주의는 유령처럼 몽환적이고 절제된 자화상으로 대체되었는데, 비평가 로버타 스미스가 언급했듯이 "가면을 벗어 던지면 위엄 있으면서도 수줍은 얼굴이 드러나고, 작가는 그 얼굴을 해골에 가까운 형태로 축소"시킵니다.
전시는 파리의 미술학교 시절부터 스웨덴에서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셰르프백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1900년대 초, 그녀는 어머니와 이웃들을 모델로 삼아 추상화를 그렸고, 형태와 색채를 단순화하여 대담하고 새로운 화풍을 발전시켰는데요. 제가 놀랐던 건 말년의 추상적이고 절제된 화풍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처연하고 고독한 그녀의 '내면'이었습니다.
천천히 그림을 하나씩 보는 와중에 드물게 동양인인 저에게 한 백발 할머니가 말을 걸더군요.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네, 그래요. 그런데 이름을 어떻게 읽을지 전혀 모르겠어요."
핀란드에서 수십년전 이민을 온 그 할머니께서는 친절하게 몇번에 걸쳐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셨죠. 저는 결국 완벽하게 이름을 발음하는데 실패했지만 말이죠. 감격에 겨워 눈물을 닦던 그 분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반세기 넘게 뉴욕에 산 이민자가 셰르프벡의 고독한 그림에 공감을 한 걸까요. 아니면 그저 예술의 아름다움이 주는 힘이었을까요. 저는 최근에 본 영화 <햄넷>의 잊을 수 없는 엔딩과 같은 장면을 눈 앞에서 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 이후, 여행을 마치고 뭘 배웠는지? 뭐가 달라졌는지? 묻는 진지한 질문을 몇번 들었습니다. 이제는 준비된 답변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높아졌다"는 겁니다. 유럽의 골목길을 걸어도, 미국의 미술관을 구석에 걸린 작은 작품을 보더라도, 심지어 서울의 건축물을 보더라도 저는 과거의 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낯선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됐거든요.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가치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게다가 책의 프롤로그에 썼던 것처럼 "파산"하지도 않았고요. 저는 다음에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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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전시를 보기 위해 저는 전시 마지막날인 1월 6일 이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성스러운 트리에 맞춰 연주되는 성가를 듣진 못했지만 보람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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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기 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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