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꽤 길게 다녀왔습니다. 북부와 중부 여행을 하면서 음식과 와인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파스타와 피자만 먹은 건 아니고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가볼까 싶었던 미술관도 두루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 북부는 르네상스 미술의 발상지이고, 종교 예술 컬렉션도 방대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금광 같은 곳일 수 있겠죠. 놓치면 아쉬울 작품을 조금이나마 소개해볼까합니다.
11회 (2024.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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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대성당을 찾은 날은 모처럼 날이 화창했다. 인파에 깜짝 놀람.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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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40대 아저씨의 '그랜드 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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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라 미술관에는 나폴레옹의 동상이 중정에 서 있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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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 소설 추천해봅니다. 다만 품절된 소설이라 구하긴 쉽지 않습니다. ⓒ김슬기 |
전시장 최고의 명당 자리에도 나폴레옹 동상이 있다. 아무리 봐도 단신의 나폴레옹에는 과한 프로포션이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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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베니스-피렌체-로마 순서로 이동하면서 저는 감개무량한 상념에 젖었습니다. 출장으로만 유럽을 오갔던지라, 대학시절의 배낭여행 같은 추억이 없는 저에게는 이탈리아 미술관 여행이 꽤나 낯설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가족단위로 혹은 수학여행으로 이탈리아에 온 학생들이 정말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갭이어를 갖거나 혹은 학기 중의 여행을 통해 세기의 명작을 만나고 있는 소년소녀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40대가 되어서야 피렌체와 로마의 미술관을 처음 찾게 된 아저씨의 회한이랄까요.
저의 인생 소설이 있습니다. 중년의 '그랜드 투어'를 소재로 한 데이비드 니콜스의 <어스(Us)>입니다. 결혼 20년차에 난데 없이 이혼 통보를 받고 깨진 사랑을 접착시켜보려 안간힘을 쓰는 생화학자 아저씨의 눈물나는 사연을 다뤘는데요.
예술가 아내를 평생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했던 이 아저씨는 아들의 대학입학을 앞두고 가족과의 마지막 그랜드 투어를 떠납니다. 파리의 루브르와 오르세, 암스테르담의 라익스뮤제움과 렘브란트 하우스, 반 고흐 박물관, 피렌체의 우피치, 마드리드의 프라도와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을 모두 돌아보는 여행입니다.
완벽한 여행은 사랑을 지켜줄거라 믿었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쉬울리가 없죠. 예술 작품 이야기와 이 가족의 사연이 얽히고 섥히는 기가 막힌 이야기 솜씨는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 가장 재미있는 결혼 이야기였습니다.
여하튼 저 또한 저 리스트를 다 둘러볼 계획입니다. 이 1년 동안의 편지는 40대 아저씨의 그랜드 투어에 관한 기록이 되겠지요. 기억력이 가물가물해 예전에 본 작품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요즘이지만, 뭔가 남는 것이 있을거라 믿어봅니다.
밀라노는 잠시 지나가는 일정이었지만, 의외로 음식이 맛있었고 보석 같은 미술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입니다. 흔히 이탈리아 3대 미술관으로 우피치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 브레라 미술관을 꼽습니다. 유명세가 가장 떨어지지만 브레라 미술관은 '이탈리아의 루브르'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1층은 아카데미로 쓰고 2층의 입구를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도서관과 함께 방대한 컬렉션이 펼쳐집니다. 13~20세기 이탈리아 미술을 중심으로 38개의 갤러리에서는 1000여점의 소장품 중 엄선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밀라노로 개선한 뒤 1809년 이탈리아의 루브르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미술관을 개관했습니다. 제시와 비탈리 가문의 기부품이 중심이 되어 지금까지 컬렉션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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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밀라노에는 거장 셋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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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5~1497. ⓒSanta Maria delle Graz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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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네세의 <최후의 만찬>, 1580. ⓒPinacoteca di Brera |
루벤스의 <최후의 만찬>, 1631~1632. ⓒPinacoteca di Br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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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심판>(1495~1497)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입니다. 극악의 예약 난이도를 뚫고서라도 최후의 만찬을 영접하려는 전세계의 순례자들이 이 도시를 찾습니다. 명작에 어울리는 소박한 성당과 이 공간이 주는 특별한 경험이 있다지만, 빛이 바랜 템페라화를 실물로 보면 오히려 실망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그럼에도 구상만으로도 위대한 작품입니다. 생동감 있는 인물 표현, 완벽한 비례, 원근법이 주는 착시효과까지. 말그대로 르네상스 회화의 교과서입니다. 손이 느리기로 유명한 다빈치는 당대의 유행이었던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보존력을 얻는 프레스코화 대신 계란 노른자를 섞어 그리는 템페라화를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바티칸에 헌사한 불멸의 벽화와는 달리, 세월의 마모를 온 몸으로 맞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22년에 걸친 복원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럼에도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이 도시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만큼이나 흥미로운 <최후의 만찬>이 또 있습니다. 먼저 최후의 만찬은 프라 안젤리코부터 셀 수 없이 많은 화가들이 그린 소재였습니다. 이 미술관에서는 보르게세, 루벤스의 최후의 만찬도 만날 수 있습니다.
베로네세의 <최후의 만찬>(1580)은 압도되는 대작입니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예수의 위치는 항상 중심에 위치해 좌우대칭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하지만 이 16세기말 회화에서는 예수가 왼쪽에 치우쳐있는데다 그림의 중앙에는 기둥이 가로지릅니다. 어두운 색조와 리듬감이 넘치는 표현은 마치 관람객을 현장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역동적입니다. 우측에서 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개의 시선도 재미있습니다.
미술관에서 1점 뿐인 피터 폴 루벤스의 작품도 <최후의 만찬>(1631~1632)입니다. 나폴레옹이 밀라노에서 가져온 여러 작품을 교환하는 대가로 1813년 브레라에게 보낸 다섯 점의 플랑드르 회화 중 하나입니다. 예수를 배신하는 가롯 유다를 완전히 주인공으로 삼은 독특한 구도를 보여줍니다.
정중앙에 후광이 비치는 예수를 둘러싸고 제자들이 역동적인 구도로 앉아 있지만, 정면을 보며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는 유다만큼 시선을 강탈하는 인물은 없습니다. 이 그림에도 식탁 밑에는 개가 숨어 있습니다. 왜 두 그림에 이런 공통점이 있을까요. 유다의 배신을 강조하기 위해 두 작가는 충성심의 상징인 개를 그린 것입니다.
이밖에도 브레라 미술관을 채우는 이탈리아 거장들의 면면은 화려합니다. 거대한 도시와 군중을 그린 대작인 조반니 벨리니의 <알렉산드리아에 들어선 성 마르코>는 정중앙의 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티치아노, 라파엘로, 티에폴로 등이 인기가 많습니다. 이탈리아의 국민 화가들입니다.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만찬>(1606)도 있습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후 도피를 하던 시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시기 그려진 걸작으로 빛과 어둠의 대비가 극도로 강조된 작품이죠. 예수의 식탁에는 어떤 음식들이 놓여있을까요. 최후의 만찬을 만나고 돌아가는 여정에 만나기에 무척 반가운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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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벨리니의 <알렉산드리아에 들어선 성 마르코>, 1504~1507. ⓒPinacoteca di Bre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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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엠마오의 만찬>, 1606. ⓒPinacoteca di Brera |
현대 미술 컬렉션은 수장고형 데크에 걸려 전시되고 있었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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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 이탈리아 명작들은 '개점 휴업'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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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가을 날씨에 인파가 북적이는 스포르체스카성. ⓒ김슬기 |
미켈란젤로 <론다니니 피에타>, 1552~1564.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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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작이 있습니다. 필수 관광 코스 중 하나인 스포르체스카성의 미술관에 숨어 있는 작품입니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의 가장 유명한 조각 작품은 그가 24세의 젊은 나이에 발표한 <피에타>입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의 마지막 걸작 <론다니니 피에타>가 이 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89세 때 죽음을 며칠 앞두고 이 조각품을 만들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조각해낸 듯한 경이로운 젊은 날의 작품과 달리, 뭉툭하고 투박한 표정의 예수와 성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둘의 몸은 뒤틀려 있습니다. 하반신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지만, 상반신은 거칠게 다듬다만 끌의 흔적만 남아 있죠. 미완성 작품이 주는 감동도 젊은 날의 피에타에 못지 않습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예상 못한 상황도 많았습니다. 성수기가 끝나가면서, 하나둘 기약없는 개점휴업에 들어간 장소가 많았습니다. 10월말의 로마 여행에서는 트레비 분수가 운영 중단 중이었고, 성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도 기약없이 보수 중이었습니다. 꽁꽁 숨겨져있어 모조품만 볼 수 있습니다.
카라바조를 좋아한다면 꼭 가야하는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도 보수 공사에 들어가 카라바조의 작품 3점이 모두 공개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드라마 <리플리>에서 등장하는 작품들입니다. 불꺼진 성당이 2유로를 넣고 불이 켜질 때, 그 빛을 반사하는 카라바조의 어둠은 정말로 감동적입니다. 5월에 로마를 방문하지 미리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소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미술여행은 여러모로 복불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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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하예즈 <키스>, 1859. ⓒPinacoteca di Bre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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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라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미술관의 마지막 배웅을 담당하는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 Il bacio)>(1859)입니다. 이 그림은 빅토르 에마누엘 2세와 나폴레옹 3세가 밀라노에 입성한 지 몇 달 후에 열린 1859년 브레라 전시회에서 전시되었습니다.
브레라 미술관의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이며, 아마도 19세기 전체에 걸쳐 가장 널리 재현된 이탈리아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탈리아 낭만주의를 이끈 하예즈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예즈는 당대에 웅장한 역사화, 정치화, 초상화 등을 주로 그린 화가입니다. 1823년에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 키스 장면을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만년에 그린 키스는 훨씬 더 성숙한 표현력을 보여줍니다.
독립 전쟁에 참가한 이탈리아 병사와 프랑스인 여성이 나눈 키스를 그린 작품입니다. 군인의 빨간색 스타킹, 망토의 녹색 옷깃은 이탈리아를 상징하고, 여인이 입고 있는 파란색과 흰색 드레스는 프랑스를 상징합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거듭된 독립전쟁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간의 외교 교섭으로 독립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림 속 키스는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 간 동맹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됩니다.
이 작품 앞에 서면 사진처럼 사실적인 묘사가 감탄을 자아냅니다. 실크 드레스는 주름이 손에 잡힐 듯 하고, 한쪽 다리를 계단에 올린채 키스를 하는 두 연인의 자세도 꽤나 역동적입니다. 애국적 가치와 낭만주의적 취향을 담은 이 대담한 작품이 공개된 직후 대중들은 열광했습니다. 관람객들은 그림 속 메타포보다는 단지 이 그림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을 겁니다. 하예즈는 다양한 유럽 컬렉션에 다른 버전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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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트 브리튼 <터너 프라이즈>
- 내년 2월 16일까지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술상이 있습니다. 터너 프라이즈입니다. 프리즈 위크부터 Pio Abad, Claudette Johnson, Jasleen Kaur and Delaine Le Bas 등 4인의 수상 후보 작가가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 40회를 맞은 이 상은 아니쉬 카푸어, 데미언 허스트, 스티븐 맥퀸 등 쟁쟁한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상의 권위가 예전같지 않아보입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젊은 작가를 미술관이 발굴해 키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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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사진 한 장 투척해봅니다. 부러우시라구요.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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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동안 리뷰를 남겨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몇 개만 소개하자면, 현장으로 가고 싶었다는 고마운 후기가 많았습니다. 무플보단 악플! 어떤 후기도 환영입니다.
"이렇게 지적이면서도 경쾌한 미술 이야기라니, 읽으면서 흥분했어요. 서도호 작가의 생생한 이야기들, 스코틀랜드의 미술관에 대한 정보, 그리고 기사 링크까지.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완벽한 <슬기로운 미술 여행>입니다. 고맙습니다."
"마감 문제를 겪은 다빈치나 15명 자녀를 가진 베르메르 이야기, 그리고 <버지널 옆에 선 젊은 여인> 그림을 보게 되어 즐거워요. 이렇게 유익하고 흥미로운 미술 이야기라니. 차경이 멋진 스코틀랜드의 국립미술관을 가보고 싶게 만드는 레터였습니다."
"글래스고 꼭 가고 싶어요. 달리 그림을 보러."
"당장 프리즈 런던과 내셔널 갤러리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주제와 장소를 추천해주신 내용도 있어 답변을 해봅니다.
"내년 5월 런던의 테이트 모던의 '서도호 전시회'도 리뷰해주실까요? 기대됩니다."
-> 당연히 리뷰를 합니다. 서도호 작가님의 스튜디오를 방문해보는게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하구요. 프리즈 런던에서 뵌 작가님께서 몇가지 비밀을 넌지시 알려주시기도 했는데요. 이전과는 다른 전시가 될거라는 말씀에 저도 기대가 커졌습니다.
"가능하다면 기자님이 작가나 큐레이터 등 개인 인터뷰하는 거 읽고 싶어요."
-> 기자라는 직책을 벗어나, 방구석에서 사부작사부작하는 취미인지라 지면에 공개되지 않는 인터뷰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런던은 꽤 추워졌습니다. 초겨울 날씨는 꽤 우울하지만, 다행히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주는 이탈리아 베니스 이야기입니다. 곧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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