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앞서 비엔날레를 다룬 많은 기사와 후기를 접했습니다. 올해 한국 작가는 비엔날레 본전시에만 장우성, 이쾌대, 김윤신, 이강승 등 4명이 초대됐고, 국가관은 30주년을 맞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도 기념 전시를 열었습니다. 유영국, 이배, 이성자, 신성희 등이 베니스에서 병행 전시를 열기도 했죠. 덕분에 베니스를 오지 않았는데도 다녀온 것처럼 익숙했습니다. 시시콜콜 비엔날레를 리뷰하는 건 의미가 없을 듯해서, 간략한 인상만 기록해봅니다.
이 기념비적인 해에 한국관을 대표한 작가는 구정아입니다. <오도라마 시티>를 주제로 서베이를 통해 수집한 한국의 향기를 향수 회사 논픽션과 함께 만들어 텅빈 전시장에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번 한국관이 준 실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솔길 옆에 있는 자그마한 국가관의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이토록 텅텅 비어있는 전시를 선보일 이유가 있었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향기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옷장 속 나프탈렌 냄새, 밥 짓는 냄새는커녕 여행지를 부유하는 냄새들 속에서 인공적인 향을 느끼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압도적인 경험을 하게해 준 황금사자상의 주인공 호주관을 만났습니다. 비엔날레의 막바지라 관람객이 상대적으로 적었음에도 1시간 가까이 기다려 입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어두운 전시장 안에는 호주 원주민 작가 아치 무어가 분필로 빽빽하게 적어넣은 씨족의 족보가 벽을 매우고 있습니다. 6만5000년에 걸친 무려 2400여세대의 족보. 작가는 2명의 조수와 함께 직접 2달 동안 이들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개막식 당시에는 2시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는 독일관은 여전한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입구는 흙으로 덮혀 잡초만 무성합니다. 건물 뒤를 통해 입장하면, 멸망한 지구의 폐허와 같은 모습이 가득합니다. 누워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 속에서는 우주선을 통해 별로 향하는 인류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이번 비엔날레는 독일관, 스위스관 등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듯한 SF 영화 세트장 같은 부스가 많았던 것이 특징입니다. 궁극의 이방인은 만날 수 없는 미래의 인류인가 봅니다.
한국에서도 전시했던 모리 유코의 일본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썩어가는 과일, 순환하는 물 등을 통해 기후 위기에 관한 상상력을 정교하게 보여줍니다. 미국관은 가장 화려한 전시장을 자랑했습니다. 케로키족 인디언 출신 작가는 원주민-퀴어 정체성을 표현하는 퍼포먼스와 영상, 전통 의상을 전시합니다. 체코관에서는 1950년대에 프라하 동물원에 체코의 첫 기린 렌카의 이야기를 포획 과정부터 죽음 뒤의 전시까지의 모습을 재현했습니다.
어떤 국가관은 흥미롭고, 어떤 국가관은 난해하기도 했습니다. 비엔날레에서 금-은-동메달을 주듯 등수 매기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각 국가의 대표작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한편 자르디니 공원의 중앙관은 정말 밀도 높은 주제 전시가 펼쳐졌습니다.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된 초상화 섹션에는 꽤나 낯설게 보이는 장우성의 <화실>과 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 100여명의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다른 공간에서는 김윤신의 전기톱으로 자른 나무 조각들이 이방인처럼 서 있었죠. 이 곳은 비서구를 중심으로 다시 쓴 미술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주제 전시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아르세날레 입구부터 처음 만날 수 있는 작품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4인으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였습니다. 이들의 <타카파우(Takapau)>는 여성의 자궁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손으로 짜고 엮은 전물 직물의 차양입니다. 8개의 손이 함께 짠 이 작품은 관람객의 머리 위를 덮으며 공동체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맥시멀리즘'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밀도가 높고 빽빽했던 주제 전시였습니다. 이방인은 정말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129년 만에 처음 목소리를 갖게 된 이방인들이 한풀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발음하기도 외기도 어려운 낯선 작가들의 향연. 흥미있는 작가를 찾기 어려웠지만 동시에 내가 얼마나 서구 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었나하는 반성도 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는 너무 많은 작품을 한 곳에 모아놓아 산만하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이색적이었던 올해와 2년 뒤의 비엔날레는 무척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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