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르네상스 작품 컬렉션을 자랑하는 우피치 미술관은 1560년에서 1580년 사이에 메디치 가문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우피치(Uffizi)는 이탈리아어로 사무실을 뜻하는 '오피초'의 복수형을 뜻하는 단어죠. 당시 코시모 1세 데 메디치가 사법 및 행정기관으로 쓰기 위해 지은 이 공간은 아들인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가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을 이 곳에 모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현재 미술관의 컬렉션은 1737년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녀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토스카나 정부에 기증한 작품들이 핵심입니다. 그녀가 "어떠한 경우에도 기증품을 수도와 공국의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단 덕분에, 우치피 컬렉션은 반드시 피렌체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성수기에는 몇시간 씩 입장줄이 늘어서는 인기의 비결입니다.
약 2500점의 작품을 소장한 이 미술관은 ㄷ자 형태의 긴 복도형 건물이 아르노 강 건너 피티 궁전과 800미터 길이의 바사리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건물 자체가 피렌체의 랜드 마크이기도 합니다. 복도를 따라 일직선으로 방과 방이 이어지는 구조는 유럽의 미술관의 미로 찾기에 지친 분들에게는 친절하게 느껴질겁니다.
이 곳에서는 라파엘로의 그림 11점을 비롯해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카라바조, 루벤스, 렘브란트의 걸작 등 셀 수 없이 많은 걸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미술관의 대표작은 너무나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봄)>과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의 <톤도 도니>입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모나리자>급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인파에 밀려 작품 앞에 서기도 힘들 정도였죠. 엄혹했던 중세의 끝자락, 이 그림은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며 최초로 여인의 누드를 등장시켰습니다. 실물로 본 보티첼리의 작품은 눈을 비비게 만들정도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극사실적 표현과 원근법 같은 르네상스 화법이 자리잡기 전, 신화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여성의 미를 표현해내며 불멸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디테일에 놀라게 됩니다. 결혼 선물로 그려진 <프리마베라(봄)>에는 무려 200여종의 꽃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이 그림이 걸린 메디치 별장 근처에 자생하던 꽃이었다는 사실이 식물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다빈치의 <수태고지>는 1472년 스무살에 그린 화가로서의 데뷔작입니다. 동물도감, 식물도감을 방불케하는 정교한 천사의 날개와 식물의 잎사귀에 감탄을 하셨나요. 이 초기작엔 이미 공기 원근법, 스푸마토 기법 등 그의 화법이 이미 발휘되고 있습니다. 놀라긴 아직 이릅니다. 독서대 위의 우아한 성모의 팔이 인체의 비례에 비해 길게 느껴지는데요. 비례가 어긋나보이는 이 어색함은 의도된 겁니다. 당시 그림이 걸려있었던 위치인 오른쪽 하단에서 올려다보면 멀쩡한 비례로 보입니다. 고객 맞춤형 작품을 그린 다빈치의 센스가 엿보이는 그림이죠.
다빈치의 스승이었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도 놓치면 안됩니다. 기림의 좌측 하단에 자리잡은 섬세하게 그려진 뒷모습의 천사는 제자인 다빈치가 완성했습니다.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스승은 다빈치의 월등함에 붓을 꺾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렌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라는 르네상스 3대 거장을 모두 배출한 도시입니다. 1500년대 초반 세사람은 피렌체에서 함께 활동했고 스승과 제자같은 직접적 인연을 맺은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1506년 로마에서 고향 피렌체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톤도 도니>를 그립니다. 이 그림은 피렌체에 남아있는 유일한 미켈란젤로의 회화죠. 아내의 출산을 기념해 주문한 원형 쟁반(톤도)에는 성 가족이 그려져있습니다. 남성을 모델로 그린 덕분에 근육이 울퉁불퉁한 독특한 성모가 등장합니다.
그림의 주문자인 상인 아뇰로 도니와 아내 막달레나는 그림 바로 왼쪽에서 그 얼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뇰로 도니와 막달레나 스트로치 부부의 초상>입니다. 1504년 그려진 이 작품은 도니가 아내에게 선물한 결혼 선물이었습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당시 피렌체 베키오 궁전에서 함께 지금은 사라진 벽화를 그리며 경쟁을 했습니다. <모나리자>도 이 시기 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라파엘로가 그린 아내의 초상은 눈썹이나 포즈까지도 <모나리자>와 꽤 닮아보입니다. 이 작품 덕분에 젊고 재능이 넘쳤던 라파엘로는 다빈치의 후계자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이후의 컬렉션도 압도적입니다. 카라바조의 <이삭의 희생>, <바쿠스>, <메두사>를 비롯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방박사의 경배> 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나긴 회화 컬렉션은 렘브란트의 초상 <랍비>를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넵니다.복도에서는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기원전 2세기 로마의 <라오콘 군상>을 16세기 조각가 바초 반디넬리가 다시 만든 복제품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라오콘은 팔꿈치의 모습이 다릅니다. 이 작품을 기억해둔다면 바티칸에서의 만남이 더 반가울겁니다.
도시 곳곳에 스며있는 수백년의 역사와 이야기를 만나면서 이번 피렌체행은 특별한 수확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회화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저의 선입견을 산산히 깨뜨려준 여행이었습니다. 미술은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