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귀국을 한지 1달이 넘서야 런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겨울은 런던입니다!(응?) 춥고 어두운 도시를 화려한 성탄 장식이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유럽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블랙 프라이데이 연휴에는 소호에서 인파에 갇혀 오도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11월 말부터 올해 마지막 전시들이 차례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미술관 투어에 앞서 기간이 길지 않은 런던 갤러리 전시 중 톱3를 가려 뽑아봤습니다.
16회 (2024.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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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런던 최고의 핫플은 피카디리 서커스 근처의 찻집(?) 포트넘&메이슨이었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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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미로 <Motion in Stillness> 전시 전경. 낮에 방문에면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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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미로에서 전시된 카일리 매닝 <Staccato>, 2024. ⓒ김슬기 |
페이스 갤러리 Hank Willis Thomas <Icarus in the Moonlight II>, 2024.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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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프리드먼에서 만난 Hulda Guzmán <Let yourself be rescued>, 2024. ⓒStephen Friedman |
스프루스 마거스의 살보가 그린 눈오는 풍경.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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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이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따뜻한 남쪽 나라로 휴가를 떠나는 런던에서도 연말 전시는 어김없이 열립니다. 런던의 갤러리 10여개를 돌며 올해의 마지막 전시들을 둘러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몇가지 겹쳐보이는 주제들이 있었습니다. '겨울'과 '춤'이었습니다.
기획전을 여는 갤러리로는 빅토리아 미로와 스티븐 프리드먼이 있습니다. 빅토리아 미로는 마리아 베리오(María Berrío)의 개인전과 함께 <Motion in Stillness>(1월 18일까지)를 열고 있습니다. 마리아 베리오를 비롯해 플로렌스 피크, 메간 루니 등 9명의 작가가 초대됐습니다. 서울 스페이스K에서 올해 개인전을 열었던 카일리 매닝도 함께합니다.
춤은 인간의 몸이 소재가 되는 예술입니다. 훈련 받는 어린 발레리나의 경직된 표정, 추상적인 붓질 속에 표현된 춤의 리듬을 표현한 그림들을 만났습니다. 매닝은 방한했을 때 인터뷰에서 "뉴욕시티발레의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그림으로 그린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바닷마을 출신 작가에게 잘 어울리는 주제더군요.
페이스갤러리의 행크 윌리스 토마스(Hank Willis Thomas, 12월 21일까지)도 춤추는 이미지로 가득한 전시를 열었습니다. 전세계 역사적 시위의 현장을 콜라주해 그 역동성을 상징하듯 춤을 추는 인물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거리로 뛰어나와 변혁을 외치는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힘을 뜻하는 단어가 아마도 제목에 쓰인 <영혼의 친족 관계(Kinship of the Soul)>일 겁니다. 12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할겁니다.
스티븐 프리드먼의 <Reverb>(12월 18일까지)는 카리브해 디아스포라 출신의 8명의 작가의 신작을 소개합니다. 줄리앙 크로이제, 덴질 포레스터, 훌다 구즈만 등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물결처럼 반향이 가득한 설치 미술과 회화를 통해 정체성, 자연, 식민지 등의 소재를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훌다 구즈만의 그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토피아처럼 묘사된 노을로 물든 바다위에 고요하게 떠 있는 여인의 모습과 웃고 있는 멍멍이가 보입니다.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가 없는 정경입니다.
지난주에 소개했던 알민 레쉬 갤러리의 정영주 전시에서도 눈이 소복히 쌓인 달동네 정경을 만났었죠. 스프루스 마거스는 살보(Salvo)와 안드레아스 슐체(Andreas Schulze)의 2인전(12월 20일까지)을 열고 있습니다. 살보의 기하학적인 풍경화는 계절감이 두드러지는 그림이 많았습니다. 눈이 쌓인 마을의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런던은 눈이 내리지 않는 도시라고 들었는데, 올 겨울은 눈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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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80대에 전성기를 맞은 할머니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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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핑크한 안젤름 키퍼를 보는 것 같았다. ⓒThaddaeus Ropa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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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픽'은 눈오는 과수원을 그린 이 작품. ⓒ김슬기 |
2005년의 조안 스나이더. ⓒThaddaeus Ropa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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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올 겨울 런던 최고의 갤러리 전시 3개를 소개해봅니다.
1. 타데우스 로팍 - 조안 스나이더 <Body & Soul>
"저는 그림에 시작과 중간, 끝, 기쁨과 슬픔, 결심까지, 이 모든 것을 한 장의 그림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런던 메이페어에서 가장 고풍스럽고 우아한 갤러리 중 하나가 타데우스 로팍입니다. 이 곳에서 만난 조안 스나이더(Joan Snyder)는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최근 전속 계약을 맺고 런던 갤러리 1, 2층을 60년대부터 근작까지 모두 선보이는 첫 전시 <Body & Soul>(2월 8일까지)을 열었습니다.
조안 스나이더는 뉴욕주 브루클린과 우드스탁에서 활동하는 84세의 화가입니다. 1960~70년대 남성 중심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이 미국을 휩쓸고 있을 때도 조용히 자신만의 길을 걸었죠. 작가는 평생 개인적이고 내밀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예술적 자서전'이라 불립니다.
격자로 캔버스를 구분하고 차례로 스트로크(stroke)를 채워넣어 '스트로크 회화'라 불렸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무척 서사적인 구조입니다. 근래에는 격자가 사라지고 회화적 요소들이 통합됩니다.
비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는게 특징입니다. 1970년대부터 그녀는 천과 지푸라기, 젤과 글리터, 렌틸콩과 꽃으로 작품을 층층이 쌓아왔습니다. 덕분에 사각의 캔버스에 그림이 갇히지 않습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소재는 해바라기, 호박, 벚나무, 포도 장미덩굴이죠. 평생 구상과 추상 사이의 줄다리기를 벌여왔고, 언제나 여성주의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전시 제목처럼 몸과 영혼이 모두 담긴 그림에 도달합니다. 80대에 그린 근작들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전시에서 만난 80년대 작품은 달과 어둠이 그려진 잿빛입니다. 그런데 2024년작에는 캔버스가 온통 핑크색이고, 환희와 희망이 넘실거립니다. 온갖 재료가 사용된 입체적인 캔버스는 핑크핑크한 안젤름 키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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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베리오 <Anseris Mons>, 2024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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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빅토리아 미로 - 마리아 베리오 <The End of Ritual>
빅토리아 미로가 쿠사먀 야요이 다음으로 선보이는 작가는 마리아 베리오입니다. <The End of Ritual>(1월 18일까지)는 초대형 그림 9점을 걸었습니다.
마리아 베리오는 1982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에서 거주하는 작가입니다. 11월 하우저&워스와의 계약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빅토리아 미로는 최근 작가를 발굴하는 선구안에 있어 가공할 만한 타율을 보여주는 중입니다. 플로라 유크노비치에 이어 마리오 베리오도 빅토리아 미로 -> 하우저&워스의 테크트리를 탔습니다.
콜라주 기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로 늘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려왔습니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 이민자의 이야기에 집중했죠. 섬세한 기법 만큼이나, 대륙과 인종을 넘나들고 신화와 민속을 아우르는 풍부한 레퍼런스도 특징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마리아 베리요는 일본 전통 종이위에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는 섬세한 콜라주 작업을 선보입니다. 윤곽선이 고스란히 보이는 평면적인 표현은 수묵화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보면 수십겹의 종이가 덧붙여진 입체적인 텍스처로 채워져 있습니다.
표현법만 다층적인게 아닙니다. 파편화된 기억, 정체성, 역사적 의미 또한 콜라주됩니다. 고양이 탈을 쓴 여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 이 곳이 어디일지 궁금해집니다. 작가는 무대 뒤를 급습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뉴욕의 갈림(GALLIM) 댄스 컬렉티브 무용수들과 협업했습니다.
작가가 직접 만든 무대 의상과 고양이 가면을 쓰고 벌이는 즉흥적 움직임을 담아낸겁니다. 대기실의 어수선한 분위기, 탈을 쓰고 몰입한 무용수들의 표정이 포착됩니다. 종종 그림 속 인물을 정면을 응시합니다. 제4의 벽 너머를 응시하는 배우 같습니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관계를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의식의 종말이라는 제목처럼, 막이 내린 뒤 배우들의 심리를 우리는 조심스럽게 엿봅니다. 비밀스러운 공모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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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 테이트 모던의 루이스 부르주아와 김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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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브루주아 <마망> ⓒTate Modern |
김아영의 <딜러버리 댄서의 구> ⓒTate Mod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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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런던에서 열릴 전시 소식들이 하나둘 공개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 소식들을 전해드릴 생각입니다.
2025년 5월이면 테이트 모던은 25주년을 맞습니다. 미술관을 상징하는 소장품을 미술관 곳곳에서 전시하며 25주년을 기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먼저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청동 거미 '마망'이 귀환합니다. 높이 10미터에 달하는 이 기념비적인 조각품은 2000년 테이트 모던 개관 당시 관람객을 맞이한 첫 작품으로, 25년 만에 터바인 홀에 다시 돌아옵니다.
마망은 테이트 모던 주변에 설치된 25개의 주요 작품으로 구성된 새로운 트레일을 탐험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여기에는 현재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전시 중인 마크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 도로시아 태닝의 <Eine Kleine Nachtmusik> 등이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
기념일에는 두 개의 새 전시가 개막합니다. <A Year in Art: 2050>에서는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미래주의 조각부터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한 김아영의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예술가들이 어떻게 미래를 상상하는지를 엿봅니다. 김아영 작가는 내년 2월 베를린의 미술관, 함부르크 반호프에서 개인전도 앞두고 있습니다. 작가의 커리어에 의미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Gathering Ground>에서는 생태 위기와 사회적 불의를 주제로 아우티 피에스키, 캐롤리나 카이세도, 에드가 칼렐 등 테이트 컬렉션에 최근 입성한 작가의 작품과 압바스 자헤디의 커미션 신작이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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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데이비드 즈워너 - Zeinab Saleh <The space {between}>
위에서 3번이 어디로 갔지, 하고 찾으셨나요. 여기 있습니다. 한 작품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지라 이 코너에서 소개해봅니다.
런더너들은 고양이를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즈워너에 온 카와라(On Kawara)를 보러갔다가 예상치 못한 신선한 전시를 봤습니다. Zeinab Saleh의 <The space {between}>(1월 11일까지)이라는 독특한 제목이었습니다. 1996년생 케냐 나이로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신예 작가입니다. 올해 1월 테이트 브리튼 <Art Now> 전시를 통해 테이트 데뷔를 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아크릴 물감을 물에 씻어 그리고 그 위에 구겨진 천과 식물 조각을 눌러 반추상적인 형태를 만듭니다. 채도가 낮은 세필로 그린 화법 덕분에 린넨에 자수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잠자는 애완동물, 집의 이곳저곳에 놓인 사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내부 풍경의 목격자가 됩니다. 그림 속 이야기는 넌지시 암시될 뿐,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몇몇 그림에서는 천진난만게 그려진 고양이들을 만났습니다. 고양이 털의 부드러움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집사의 손길을 즐기고 있는 보송보송한 친구를 보면서 서울 집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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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심포니-손열음 협연
- 12월 6일 바비칸 센터
BBC심포니와 손열음이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협연을 했습니다. BBC 프롬스에서도 느꼈지만 한국 아티스트의 공연이 열리는 날은 런던의 한국인들을 다 만나는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모입니다. 캥거루처럼 껑충껑충 뛰면서 연주하는 손열음의 파워에 깜짝 놀랐습니다. 관객들의 호응도 뜨거웠구요. BBC심포니는 연간 레퍼토리를 보면 현대음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이날도 전반부에는 제임스 리 3세라 1975년생 젊은 작곡가의 초연이 연주됐죠. 런던의 클래식 공연횟수가 많은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관대하고 수준 높은 음악팬들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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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런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곧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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