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해피 뉴 이어!🐍 올해 마지막 날, 뉴스 레터를 씁니다. 한국은 새해 첫 날이겠죠. 2024년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타국에서 적응하는 어려움도 있었고, 백수생활의 홀가분함도 만끽했구요.
의미 있는 일도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마감' 인간이었습니다. 올해까지였던 마감을 가까스로 지키고, 동시대 미술을 다룬 책 원고를 넘겼습니다. 책 원고 600매, 뉴스레터는 19회 동안 평균 30~40매를 쓴 것 같네요. 놀려고 왔는데 왜 회사 다닐때보다 더 일을 많이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
새해를 앞두고 비행기 티켓을 잔뜩 끊었습니다. 여행 준비도 할 겸, 새해 첫 레터는 2025년의 전시 라인업을 정리해봤습니다. 마음이 급합니다. 얼른 마무리하고, 불꽃놀이를 보러가야 하거든요. 🎊
19회 (202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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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엔 오르세 미술관에 있었는데, 시간이 왜 이리 빠른지. 아디오스! 2024년!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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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2024년은 끝나지 않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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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의 <Birkenau> ⓒNeue Nationalgaler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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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호흡은 깁니다. 클래식 공연처럼 특별한 단 하루를 놓친다고 아쉬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개막한 전시 중에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아 제가 여정표에 적어 놓은 것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는 무려 2026년까지 3년에 걸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고전 <Gerhard Richter: 100 Works for Berlin>이 열리고 있습니다. 90세를 기념해 개막한 이 전시는 기간이 길다보니, 여유를 부려보고 있는데 3월 베를린 아트 위크에 찾아가볼 생각입니다. 베를린을 위해 엄선한 100점을 보여주는 전시죠. 간판 작품은 사진에 나란히 걸린 4점의 추상 연작 <Birkenau>(2014)입니다.
2월 23일까지 열리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카라바조의 <Ecce Homo>는 당장 다음주에 만나러 갑니다. 카라바조편에서 알려드린 그 작품입니다. 2021년 새롭게 발굴된 예수를 그린 그림이죠. 2021년 단돈 1,500 유로에 경매에 출품될 뻔 했지만 프라도 미술관과 마술사가들이 검증과 복원을 거쳐 공개했습니다.
3월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는 아드리안 게니가 에곤 실레의 잃어버린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옛 걸작들을 부활시키는 야심만만한 전시 <Shadow Paintings>를 열고 있습니다. 이 초현대미술의 슈퍼스타는 12월부터 3월 16일까지 < Battleground Studio: Adrian Ghenie – Works on Paper>도 드레스덴의 Staatliche Kunstsammlungen에서 나란히 엽니다. 2006년부터 2024년까지 제작된 50여 점의 종이 작품으로 여는 회고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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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게니 <Shadow Paintings> 전시 전경. ⓒ알베르티나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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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2025년, 유럽 미술관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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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유럽 미술관 전시 딱 정리해드림!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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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par David Friedrich, <Das Große Gehege bei Dresden>, 1832 ⓒalbertin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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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을 가야할 이유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2024년은 독일의 낭만주의 거장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250주년이었습니다. 함부르크, 베를린, 드레스덴 등 독일 전역에서 성대한 전시를 열었죠. 베를린의 전시를 놓쳐 아쉬웠는데 드레스덴 알베르티눔 미술관에서 전시 <Caspar David Friedrich — Der Maler>가 열립니다. 드레스덴은 그가 40년을 살며 자신의 세계를 완성한 곳입니다. 고요하고 숭고한 풍경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시의 제목도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라 붙여졌죠.
베를린 아트 위크 기간인 2월 말부터 7월까지 베를린의 대표적인 동시대 미술관인 함부르크반호프에서는 김아영 작가의 <Many Worlds Over>가 열립니다. 올 봄 런던과 베를린에서 이 작가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는 또 하나의 초현실주의 전시 <From Max Ernst to Dorothea Tanning: Networks of Surrealism>가 열립니다. 막스 에른스트부터 도로시아 태닝까지 작가를 아우르며 발상지인 파리에서 브뤼셀과 다른 유럽 도시들, 남미로, 그리고 미국으로의 망명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 그림들의 다사다난한 여정을 추적합니다.
5월 아트바젤 바젤 기간에는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에서도 <꿈의 열쇠>를 주제로 초현실주의 100년 기념전이 열립니다. 초현실주의는 파리에서 시작해서 독일과 스위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까지 그 열기를 이어갈 모양입니다.
파리 오르세미술관은 3월부터 북구의 화가를 만납니다. 크리스티안 크로흐(1852-1925)는 '노르웨이의 에밀 졸라'로 불리는 작가입니다. 보헤미안이자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대의를 열렬한 옹호자였던 크로흐는 작가이자 언론인으로서 스칸디나비아 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묘사했습니다. 노동의 세계, 빈곤, 여성들이 겪는 부당함 등을 그림 속에 녹여냈습니다. 이 작가를 접하면서 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의 욘 포세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파리 아트 위크의 간판 작가는 존 싱어 사전트입니다. 9월 23일부터 이듬해까지 <사전트 : 파리 시대(1874-1884)>를 개최합니다. 그는 제임스 맥닐 휘슬러와 함께 19세기말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입니다. 미국의 모나리자라고 할만큼 유명한 마담X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죠. 1874년 파리에 도착해 10여년동안 그는 파리의 예술계에서 자신의 스타일과 개성을 형성했다고 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인 5월, 구겐하임 베니스에서는 포루투갈 작가 마리아 헬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의 태피스트리를 비롯한 작품을 전시합니다. 구겐하임 빌바오에서는 4월부터 추상표현주의 작가 헬렌 프랑켄텔러를 제조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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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Singer Sargent <In The Luxembourg Gardens>, 1879 ©Philadelphia Museum of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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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돌아와봅니다. 당장 2월부터 코톨드갤러리에서는 <Goya to Impressionism> 전시를 엽니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끼친 영향을 막대합니다. 고야, 제리코, 쿠르베의 그림이 인상파 걸작들과 나란히 전시될 예정입니다. 스위스의 유명 컬렉션인 오스카 라인하트의 작품이 런던으로 건너옵니다.
올해는 리버풀 비엔날레가 열리는 홀수해입니다. 마리앤 맥키가 기획한 제13회 리버풀 비엔날레(6월 7일~9월 14일)의 주제는 'BEDROCK'인데요. 리버풀 지역의 사암의 이름입니다. 이 지역의 독특한 건축 양식에서 발견되고 있죠. 이 말은 리버풀의 사회적 기반과 장소, 가치를 은유하는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의 첫 비엔날레를 만날 기대가 큽니다.
내셔널갤러리부터 가봅니다. 프리즈 위크의 간판 전시는 <급진적 조화 : 헬레네 크롤러-뮐러의 신인상주의자들>이란 주제로 찾아옵니다. 조르주 쇠라, 폴 쉬냑과 같은 신인상주의자들은 순수한 색의 작은 점들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빛나는 풍경, 초상화, 내부 장면을 통해 19세기 후반 유럽 사회를 포착했죠. 이 그림들을 후원하고 수집한 20세기 최초의 위대한 여성 미술 후원자 중 한 명인 헬레네 크롤러-뮐러를 만납니다.
테이트 모던은 오는 5월 25주년을 맞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을 다시 설치하고, 주요한 컬렉션을 따라가는 순례의 길을 만들 예정입니다. 기획전시 ‘A Year in Art: 2050’도 열죠. 움베르토 보치오니, 김아영 등의 예술가들이 상상하는 미래를 탐구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궁금할 전시는 5월 찾아오는 서도호의 서베이 전시 <Walk the House>입니다. 현대인에게 집이란 무엇일까요? 영국인들에게도 남다른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서도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집을 모두 만나게 됩니다. 실물 크기로 재현한 그의 집들을 통해 서울, 뉴욕, 런던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영국 미술사에서 J.M.W. 터너와 존 컨스터블은 가장 위대한 라이벌이었습니다. 1775년 터너, 1776년 콘스터블이 태어났으니 연말이면 두 거장의 250주년을 나란히 맞게 됩니다. 테이트 브리튼은 겨울의 시작을 이 전시로 알릴 예정입니다. 터너와 컨스터블의 얽히고설킨 삶과 유산을 탐구하며 두 예술가의 예상치 못한 면모를 발견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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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Ho Suh, <Rubbing/Loving Project: Seoul Home 2013-2022> ⓒDo Ho Suh |
John Constable, <The White Horse>, 1819 ⓒThe Frick Colle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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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Art History à la Takashi Murakami> 전시 전경.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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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kuchū-Rakugai-zu Byōbu: Iwasa Matabei RIP>, 2023–24.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
<백호와 가족>, 2024.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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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런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갤러리 전시는 가고시안 그로스베너힐에서 열리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 같습니다. 전시 제목은 무려 <무라카미 다카시의 일본 미술사 Japanese Art History à la Takashi Murakami>(3월 8일까지)입니다.
교토 교세라 미술관 전시를 위해 의뢰된 대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와사 마타베이의 17세기 교토의 풍경을 그린 정밀한 6폭의 병풍 그림 <Rakuchū-Rakugai-zu Byōbu>를 모티브로 삼아 그는 화려한 금박과 도상으로 가득한 초대형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일본의 '만인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갖 인간군상들이 등장하는 이 풍속화 속에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아이콘들이 점점이 숨어있습니다. 해골과 웃는 꽃과, 미스터 DOB 캐릭터, 그리고 고양이들도 등장하죠.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고, 어지러울 정도로 큰 그림 속 비슷비슷한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윌리를 찾아라'를 보는 것 같습니다. 도상학적 실험이자, 일본 미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슈퍼 플랫'의 창시자다운 자신만만한 전시였습니다.
백호와 청룡, 벚꽃까지 가득한 갤러리에는 흥미롭게 그림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유럽인들이 보기에 이 전시는 무척이나 매끄럽고, 이국적인 그림들일겁니다. 벌링턴 아케이드의 아트숍에서도 다양한 굿즈를 팔고 있는데 이 공간에는 무라카미 다카시만큼 어울리는 작가도 없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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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0시가 됐습니다. 자정의 런던은 섭씨 10도의 포근한 날씨. 통제를 한 대로 위도 좁은 골목길도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몰려온 것 같았습니다. 빅벤의 타종과 함께 런던아이가 쏘아대는 불꽃쇼는 대단했습니다. 빛으로 만든 유니언잭이 런던아이에 걸리며 화려하고 짧은 이벤트는 끝이 나더군요. 2024년은 많은 이들에게 암울하고 슬픈 한해였을겁니다. 끝나지 않는 전쟁의 답답함과 암울한 경제, 끊이지 않는 사고까지. 영국이나, 유럽도 한국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부디 달력을 한 장 넘기는 것에 그치지않고 의미있고 좋은 일이 많은 한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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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복된 새해가 되기를!
다음주부터는 여행 준비로 저도 바빠질 예정입니다. 곧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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