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국민 작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을 조명하는 소박한 전시가 내셔널 갤러리 중앙에 위치한 선리의 방에서 2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2월 2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그의 탄생 250주년으로 테이트 브리튼에서 대형 전시가 연말에 예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전시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The Hay Wain>이 탄생하기까지 그가 집 주변의 곳곳을 그린 그림과 그의 대표작들, 스케치를 함께 전시합니다. 그의 손바닥만한 스케치북과 팔레트,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후대의 조지 모랜드, 윌리엄 멀레디의 그림까지 모았습니다.
존 컨스터블은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가입니다. 영국 남동부에 위치한 서퍽주의 시골에서 부유한 방앗간 주인이자 옥수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연을 깊이 사랑했고, 특히 고향의 풍경을 자주 그렸습니다. 컨스터블의 작품은 처음에는 영국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출세작은 1821년 그린 <The Hay Wain>입니다. 세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강을 건너는 시골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소작농인 윌리 로트의 집이 보이고 풍경은 컨스터블의 아버지 소유였던 플랫포드 밀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풍경화를 매우 급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그림은 영국 시골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여겨집니다.
개미처럼 작지만, 이 그림 속에는 일하는 농부, 마차를 끄는 사람도 등장하죠. 마치 풍경의 일부처럼요. 구름의 형태도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묘사됩니다. 화폭을 지배하는 나뭇잎을 표현하기 위한 밝은 녹색은 이전의 전통적인 어두운 갈색조의 풍경화와는 달랐죠. 컨스터블이 '자연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혁신적 접근 방식입니다.
눈에 띄는 붓질로 물감을 느슨하게 다루는 표현, 나뭇잎에 물감을 아낌없이 바르는 표현을 시도했습니다. 반짝이는 햇빛의 반사를 표현하기 위한 흰색 물감 조각은 '컨스타블의 눈'이라고 불렸습니다. 당시에는 그림이 미완성이라는 오해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풍경화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감정과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합니다.
심지어 수십장을 스케치를 통해 그는 완벽한 구도와 내러티브를 완성합니다. 빈 마차는 평화롭게 강을 건너고, 낚시를 하는 이와 일하는 농부들이 보입니다. 강변에는 개가 짓고 있고, 강 속에 빠진 드럼통이 등장합니다. 최근 엑스레이를 통해 그의 스케치에는 보트와 드럼통이 없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서사를 완성한 겁니다. 이 그림의 이야기를 관람객들은 사랑합니다.
영국에 이 그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왕립예술원에서 공부하던 시기, 영국 미술에는 계급이 있었습니다. 역사화와 초상화는 최상급, 풍경화와 정물화는 최하급에 위치했죠. 그런데 컨스터블은 풍경화를 위대한 미술로 인정받게 만듭니다.
낭만주의 작가 찰스 노디어와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왕립예술원에서 이 그림을 보고 프랑스에서 돌아가면서 반전의 계기를 맞습니다. 프랑스에서 찬사를 받고 루브르미술관에서 전시가 되면서 유럽 전역의 풍경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의 자연주의적 접근과 감성적 표현은 현대 풍경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J.M.W. 터너와 자주 비교되는 컨스터블은, 터너와는 대조적인 화풍을 보였습니다. 터너가 빛과 색채의 효과를 강조했다면, 컨스터블은 자연의 세부적인 묘사에 집중했습니다. 둘의 극심한 경쟁은 1830년대 미술계의 핫이슈였다고 합니다.
영국은 정원 가꾸기가 국민들의 가장 큰 취미이고, 공원과 자연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올드 패션으로 보이는 존 컨스터블이 21세기 영국에서는 더 큰 사랑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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