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출국을 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기사를 쓴 전시가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서도호의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였습니다. 21년 전 아트선재센터에서 첫 미술관 전시를 열고 스타가 된 작가의 감개무량한 귀향이랄까요.
이 전시는 3개의 층에서 각각 다른 주제를 선보입니다. 1층은 서울-런던-뉴욕의 등거리에 집을 짓는 상상을 하는 <완벽한 집:다리 프로젝트>, 2층은 별똥별처럼 세계 곳곳에 불시착시킨 자신의 고향집(<연결하는 집, 런던>, <별똥별>)과 삼국유사 시대에 관한 상상력을 펼친 <사천왕사를 위한 제안>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실화되지 못한 기상천외한 제안, 혹은 구현된 프로젝트의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살았던 60여년의 집들을 모두 만날 수 있기도 하구요.
3층은 7년의 시간동안 그가 천착한 공동주택의 생애에 관한 사유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철거된 대구 동인아파트(2022)와 런던 로빈 후드 가든(2018)의 마지막 순간을 영상으로 박제한 겁니다.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서 그는 로빈 후드 가든을 실제로 통째로 절단해 베니스에 설치했습니다. 그때 작가를 인터뷰를 한 적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나는 미술이란 것을 우리 삶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작품이 늘 옮겨 다니는 것도 인생이라는 것이 끊임없는 이주의 과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상은 이런 면을 표현하기가 참 좋다. 다만 영상에서는 냄새와 온도, 소리를 느낄 수 없어 늘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철거되는 아파트를 통해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의식을 심층적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삶의 흔적,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은 누군가가 '기억'을 해주는 것 뿐이겠죠. 미술관에서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일겁니다. 서울 전시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 꼼꼼히 볼수록 더 재미가 있는 전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도호는 내년 5월 자신의 이력에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테이트 모던에서의 서베이 전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전시를 앞두고 선보인 서울 전시는 작가가 2020년대 자신의 머리 속을 지배하는 중추적인 아이디어들을 펼쳐 보이는 자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습니다. 상호보완적인 전시가 바로 모던1의 <Tracing Time> 입니다. 제목을 굳이 옮기자면 시간의 흔적이랄까요. 저는 9월 5일 막을 내리는 이 전시만을 보기위해서 에딘버러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충분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전시는 '서도호 월드'를 담아낸 시계열이 조금 더 깁니다. 2000년대를 두루 여행합니다. 동시에 이 전시 또한 주력은 아마도 작가의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듯한 평면 작업입니다.
처음 만나는 작업은 <My Home>(2010)입니다. 작가는 "나는 언제나 내 집을 들고 다니고 싶다. 달팽이처럼"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욕의 서울의 런던의 발이 달려서 '달리는 집'을 그는 자유롭게 구상해 드로잉을 합니다.
그렇게 달리는 집과 실타래 끝에 매달린 집들이 전시장을 가득 매웁니다. 2010년 그는 뉴욕의 3층 아파트먼트를 푸른색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한 반투명한 조각으로 재현해냈습니다. 이 천으로 지은 집의 청사진을 그는 2014년 드로잉으로 다시 그립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집에서 구불구불 흘러나온 실타래은 무지개색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 위엔 작가가 홀로 서 있죠. 그에게 집이란 단단한 육체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유년기를 보낸 성북동 한옥집이 무수하게 많은 실로 작가에게 묶여 있습니다. 이 평면 작업은 <자화상>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집으로 구축되었음을 고백하는 듯합니다. 아파트 키즈가 넘쳐나던 시대에 그가 살았던 이 한옥집은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뉴욕에서 그에게는 아서라는 집주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작업을 응원해준 조력자였죠. <아서와 나>에는 두 사람이 긴 살타래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마치 마리오네트처럼요.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기념하는 그림입니다. 그의 건물에서 작가는 많은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2016년 치매로 투병한 끝에 세상을 떠난 그의 머리속을 엉크러진 실타래로 그는 표현했습니다.
서울에서 전시된 세 도시를 잇는 <완벽한 집>을 구상하기 전, 뉴욕과 서울을 이으려했던 이전 버전의 <완벽한 집>의 드로잉과 영상, 서울에서 키네틱아트로 구현된 <군중들>의 미니어처도 만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인공지능 로봇이 그린 드로잉도 함께 전시됩니다. 모던1의 전시는 서울 전시의 완벽한 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