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2월 동유럽 여행의 첫 도시는 오스트리아 빈이었습니다. 날씨는 무척 추웠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마라톤을 하듯 미술관과 미술관을 뛰어다녀야했습니다. 그럼에도 10여년만에 찾은 이 도시는 근사한 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다.
오페라하우스부터 미술관까지 유럽 최고의 예술도시로 꼽기 여전히 손색없는 이 도시는 수준 높은 기획전시에서도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벨베데레 궁전 스위스 정원의 꽃을 볼 수 없었던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달까요. 빈에서 찾은 9개의 미술관을 어떻게 다 다룰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33회 (2025. 4.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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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불고 스산했던 겨울의 스위스 정원. 벨베데레 상궁의 창문으로는 이 크림색의 도시가 한 눈에 보인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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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클림트의 천장화 복원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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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베데레 상궁. 분수가 가동되는 여름이 아니라 아쉬웠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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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 Pigment & Pixel> 전시 전경 . ©김슬기 |
디지털로 복원된 클림트의 빈 대학 천장화. ©Belved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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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Judith>, 1901 ©김슬기 |
흑백 사진만 남은 천장화 4부작 중 <의학>을 복원한 모습. ©Belved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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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관광1번지인 링슈트라세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벨베데레 궁전이 있습니다.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에는 두 개의 궁전과 스위스 정원, 그리고 현대미술관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전쟁 영웅 사보이의 왕자 오이겐(Prinz Eugen)이 1697년에 매입한 여름용 저택 부지였던 곳입니다.
정원이 먼저 조성된 뒤 1714년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어 1716년 하궁(Unteres Belvedere)이, 1725년 상궁(Oberes Belvedere)은 차례로 완성되었죠. 오이겐 공의 사후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매입해 벨베데레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실 회화 전시장으로 쓰이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박물관으로 전환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입은 피해는 2008년에야 완전히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궁전의 운명은 꽤나 파란만장했습니다.
부지 북쪽의 상궁, 중앙의 하궁, 남쪽의 벨베데레21는 모두 현재 미술관으로 쓰입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빈의 대표색인 크림색의 깨끗한 외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하궁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키스>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죠.
1897년, 클림트는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를 창립하며 학문적 회화 전통을 거부하고 장식적 접근 방식을 추구하는 예술가 그룹을 이끌었죠. 이 시기 그는 빈 대학 그레이트홀의 천장화을 1894년부터 의뢰받아 1907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렸습니다. 완성된 연작(<철학>, <의학>, <법학>)은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그를 논란에 휘말리게 했습니다. 이 사건이 그의 명성을 위태롭게 하면서 초대 회장을 맡았던 빈 분리파에서 탈퇴하게 만들죠.
빈 대학의 천장화들은 1945년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작품의 흑백 사진뿐입니다. 사라진 이 벽화를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습니다. 하궁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Gustav Klimt ‒ Pigment & Pixel>에서는 이 천장화가 원래 크기와 배치대로 디지털로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비록 원화는 아니지만 많은 관람객들이 넋을 놓고 이 천재 화가의 재능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신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 천장화에는 에로티시즘과 퇴폐미가 거침없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 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상상력은 왜 늘 시대와 불화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 전시는 클림트의 초상화와 풍경화 등 대표작 8점을 엑스레이와 같은 기술로 분석해 그가 어떻게 물감과 금박을 사용했고, 밑그림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연구를 위해 하궁의 유명한 작품인 <유디트>도 잠시 이 곳으로 이사를 와 있었습니다.
두 궁전을 만나고 공원의 남쪽으로 내려오면 마지막 미술관이 기다립니다. 벨베데레 21은 동시대 미술 기획전을 여는 소박한 크기의 미술관입니다. 가즈코 미야모토(1942~)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는데요.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활동하는 일본 작가입니다. 미리멀리즘 작가 솔 르윗의 조수로 활동하기 시작해 미니멀 아트의 성격이 짙게 묻어납니다. 수천 개의 못과 실로 만든 입체적인 작품은 실을 재료로 쓰는 일본 여성 작가인 시오타 치하루를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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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클림트의 <키스>에 숨어 있는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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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베데레 하궁은 문을 여는 아침 9시에 맞춰서 찾는게 좋다. 조금만 늦으면 헬게이크가 열린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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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Belvedere |
인파 속의 <키스>. 이 그림 앞에서는 유난히 셀카를 찍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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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Fritza Riedler>, 1906 ©Belved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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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은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서만 두 화가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 극도의 개성을 뽐내며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 이 두명의 천재 화가는 지금까지도 이 도시의 예술 지형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매년 수백만명이 빈의 미술관을 보기위해 이 도시를 찾을 겁니다. 벨베데레 하궁은 클림트 순례자를 위한 최고의 미술관입니다. 일부러 비수기에 이 곳을 찾았지만, 그럼에도 미술관의 관람객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벨베데레 하궁의 미술은 시대적으로 넓은 범위를 품고 있습니다. 중세부터 1970년대까지 800년의 미술사가 펼쳐집니다.
오전 9시에 문을 열자마자 벨베데레 하궁에 입장한 덕분에 <키스>는 제법 여유있게 볼 수 있었지만, 금세 방이 가득차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마도 미술사에서 가장 화려한 작품일 <키스>는 유명세만큼이나, 셀카를 찍으려는 관람객들의 열정이 엄청납니다.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정확하게 180cm로 똑같은 정사각형 캔버스는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클림트는 꽃이 만발한 초원의 가장자리에 있는 한 쌍의 연인을 그렸죠. 한 몸이 된 것처럼 뒤엉킨 연인의 몸은 놀랍도록 정교한 이국적인 패턴과 황금빛 장식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 기법은 1903년 클림트가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에서 비잔틴 모자이크를 접한 데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모자이크의 평면성과 원근감 부족은 황금빛 광채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클림트는 그림에 진짜 금박(gold leaf), 은, 백금을 사용합니다.
그림 속 여인은 낭떠러지에 발끝을 걸친 채 아슬아슬하게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런데 앙다문 입술과 무표정한 얼굴은 낭만적인 연인의 모습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연인이 절벽 가장자리 가까이에 서 있는 모습은 사랑의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라 추측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클림트 자신과 동반자인 에밀리 플뢰게(Emilie Flöge)를 그렸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모델로 등장한 알마 말러(Alma Mahler) 혹은 레드 힐다(Red Hilda)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확증할 증거는 없습니다. 신화적 해석도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그림이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에서 아폴로(Apollo)가 다프네(Daphne)와 키스를 하려는 순간을 묘사한다고 주장합니다.
클림트는 외설 논란에 휩싸이며 분리파를 탈퇴했던 어려운 시기인 1908년, 의뢰자 없이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키스>를 처음 대중에게 공개한 빈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열린 <Kunstschau Wien 1908> 전시회를 직접 조직했죠. 그해 6월 개막한 전시에서 이 그림은 <연인(Lovers)>이란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벨베데레 미술관은 높은 금액에 이 그림을 구입했고 다음해 미술관 카탈로그에서 <키스(The Kiss)>로 처음 언급이 됩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목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클림트의 많은 그림들이 <키스>처럼 정사각형 캔버스에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클림트의 정사각형 풍경화들도 다채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카머성을 그린 연작도 있습니다. 평면성이 극대화되어 지평선도, 사람도 생략된 풍경화의 특징이 눈에 띕니다.
제가 방문한 2월은 '검은 클림트'라는 별명을 얻은 가나의 스타 화가, 아모아포 보아포의 개인전이 1월까지 열린 뒤 막을 내린 직후였습니다. 그의 모든 초상화들이 정사각형 캔버스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위대한 스승을 향한 오마주였을 겁니다.
세기말 특유의 음울한 색채의 정점은 <가족>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소냐 닙스는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려졌고, 부유한 기계공학자의 아내였던 프리차 리들러의 초상화는 화려한 묘사와 장식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가구조차도 물결 모양의 리본과 고대 이집트의 눈 모티브로 장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기하학적 패턴과 평면적인 표현은 그의 황금기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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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 <Napoleon am Großen St. Bernhards>, 1801 ©Belvedere |
리하르트 게르스틀 <자화상, 웃음>, 1907/8 ©Belved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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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 <죽음과 소녀>, 1915 ©Belvedere |
에곤 쉴레 <가족>, 1918 ©Belved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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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에 둘러싸인 <키스>에 실망하더라도, 이 미술관에는 종종 걸음으로 만나볼 걸작들이 많습니다. 한스 마카트의 <오감> 연작은 이 미술관의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르누아르, 모네, 반 고흐 같은 인상파 그림도 여러점 걸려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은 교과서에서 숱하게 본 유명한 그림이죠. 나폴레옹은 빨간 망토를 두르고 바람을 등에 업고 생 베르나르산을 넘고 있습니다. 발밑에는 마찬가지로 알프스를 넘었던 한니발과 샤를마뉴의 이름이 새겨졌구요. 나폴레옹이 실제로는 춥고 험준한 알프스를 당나귀를 타고 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림 속에서는 마치 반인반신처럼 당당하게 백마를 탄 '잘생긴' 영웅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당대 최고 어용 화가의 실력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입니다.
20대에 요절한 작가 리하르트 게르스틀(1883~1908)가 자살하기 직전 그린 <자화상, 웃음>(1907/8)도 만날 수 있습니다. 빈 아카데미 출신의 아웃사이더였던 이 화가는 공개 전시를 거부하고 동료들과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25세의 나이로 사망할 당시 약 80점의 작품만을 남겼고 수십 년 후에야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대표작은 웃고 있음에도 어딘가 섬뜩해보이는 이 자화상입니다.
3층에서는 에곤 쉴레의 그림을 여러점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음과 소녀>는 슈베르트의 가곡으로도 유명하고, 과거 많은 화가들이 소녀를 찾아온 사신을 그렸던 전통적인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쉴레의 그림은 소녀 오히려 두 팔로 사신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그렸죠. 불안정한 자세가 암시하듯 둘의 인연은 언제라도 깨질 것처럼 보입니다. 남자의 모델은 쉴레이고, 여자는 그의 헤어진 연인 발리 노이칠입니다.
클림트의 <가족>만큼이나 음울하게 보이는 쉴레의 <가족>도 놓치면 안됩니다. <웅크리고 있는 부부>로 처음 불려진 작품입니다. 쉴레의 아내 에디트는 임신 6개월만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습니다. 아이가 있는 세 사람의 그림은 존재하지 않았던 쉴레의 가족 초상입니다. 쉴레도 아내의 죽음 3일 뒤 세상을 떠난 탓에 미완성으로 남겨졌죠. 그림 속 세 사람은 모두 혼자입니다. 서로를 바라보지도 못하는 고립과 빈곤, 죽음이 가득한 그림. 에곤 쉴레의 유작으로 이보다 더 잘어울리는게 있을까요.
소장품을 모두 보고 1층으로 내려오면 작은 방을 찾아가야합니다.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칼론 홀(Carlone Hall)에서는 6개월 동안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돌탑을 쌓아올린 조각으로 유명한 이 스위스 출신 작가는 이 화려한 장식의 방에 흙으로 만든 커다란 아치형 문을 세워놓았습니다.
문을 통해 우리는 칼론이 그린 프레스코화를 마치 풍경처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론디노네는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명상적인 작품을 만들어왔죠. 어찌보면 시공간의 문을 여는 '포털'과 같은 작품을 만든 겁니다. 전통있는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러한 시도는 언제나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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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o Rondinone <아치형 풍경>, 2016 ©Belved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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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 클림트 여행의 종착지, 베토벤 프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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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합창을 들으며 베토벤 프리즈를 보고 있는 관람객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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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체시온 미술관. 황금색 돔이 유명하다. ©김슬기 |
베토벤 프리즈의 마지막 장면은 보고만 있어도 귀에 장엄한 마지막 합창이 들리는 것 같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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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전 빈 분리파 전시장으로 사용되었던 제체시온(Secession)은 여유있게 빈 여행을 계획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공간입니다. 하지만 베토벤 프리즈 하나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곳은 방문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34m에 달하는 천장화를 보며 합창 교향곡을 들었던 경험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클림트는 1902년 4월 개최 된 빈 분리파 시각 예술가 협회(Association of Visual Artists Vienna Secession)의 14회 전시회를 위해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천장화로 풀어낸 프리즈를 그렸습니다. 21명의 예술가가 함께 한 전시회가 열린 이 미술관의 메인 홀에는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동상이 설치 됐죠. 알프레드 롤러, 아돌프 뵘, 페르디난트 안드리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벽화와 장식이 전시되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건축, 회화, 조각 및 음악과 같은 분리 된 예술을 공통 주제 아래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동료 예술가들은 열광적 환호를 보냈지만 6만명이 관람하며 성공한 이 전시회에서 대중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질병, 광기, 죽음의 묘사 및 기괴한 인물 묘사와 외설적 표현은 '그림으로 그린 포르노'라는 비난까지 받았죠.
전시를 마친뒤 철거될 예정이었던 벽화는 이듬해 수집가인 칼 라이니하우스가 구입해 8조각으로 잘라 벽에서 떼어내 보관했죠. 덕분에 빈의 가구 창고에 보관되며 살아남은 벽화는 오스트리아가 구입하면서 복원에 들어갑니다. 우여곡절 끝에 부활한 그림은 1986년부터 원래의 공간으로 돌아와 공개 전시되고 있습니다. 2차원적 묘사와 표현주의적인 선, 화려한 금박 장식 등은 클림트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특징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클림트'의 시작이 바로 베토벤 프리즈였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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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vanni Segantini <사악한 엄마>, 1894 ©Belved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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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의 미술을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벨베데레 상궁에서 대규모로 열리고 있었던 기획전은 <슬로베니아 회화 1848-1918>였습니다. 1848년 혁명의 해부터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제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슬로베니아 회화의 하이라이트를 전시합니다. 안톤 아즈베, 페르도 베슬, 마테유 스터넨, 이바나 코빌카, 이반 그로하 등 하나같이 낯선 이름의 동유럽의 추운 겨울을 닮은 매혹적인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조반니 세간티니의 <사악한 엄마>(1894)는 정말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새하얗게 얼어붙은 대지 위에 황량한 나무 한그루가 서있습니다. 한 여인이 아이를 가슴에 안고서 나뭇가지에 갇혀 있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몸을 구부린 채 엄마는 온 힘을 다해 아기에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황량한 풍경 속에서 여인와 아이를 통해 세간티니는 육체적 욕망은 갈구하지만 모성은 거부하는 여성의 운명을 그렸습니다. 세간티니는 이 도덕적인 교훈이 담긴 그림을 '연옥의 채찍질'로 설명했습니다. 이 여성은 구원을 위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춤을 추는 것처럼 그려졌지만 이 여인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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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셔널 갤러리 <Siena: The Rise of Painting, 1300 ‒1350>
- ~6월 22일
상반기 런던 최고의 인기 전시를 마저 소개해야겠죠? 공사중인 내셔널 갤러리의 지하1층의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서 <시에나>가 열리고 있습니다. 나이 지긋한 런던 시민들이 가득한 전시장은 마치 교회처럼 엄숙한 분위기입니다. 두초, 시몬 마르티니, 로렌제티 형제 등 르네상스의 여명이 떠오르기 시에나 회화를 이끌었던 이 장인들의 솜씨는 정말 정교하고 성스러웠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혼을 담아 표현했던 이들이 흑사병 이후 르네상스 시대를 발현시킨 스승이 되었으리라는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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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네덜란드에 와있습니다. 튤립이 정말 예쁘네요.
밀린 숙제들을 얼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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