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빈의 마지막 미술관으로 레오폴드 미술관과 알베르티나+알베르티나 모던을 만나보겠습니다. 에곤 쉴레를 위한 미술관과 다채로운 동시대 미술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미술이 하나로 만나는 점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이번 여행을 떠났던 여행의 이유부터 풀어볼까합니다.
35회 (2025. 4.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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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도시의 명당에 자리잡은 빈 오페라 하우스. 알베르티나 입구는 극장이 가장 잘 보이는 포토 스팟이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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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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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족의 저택이었던 알베르티나 미술관.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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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recht Dürer <Hare>, 1502 ©김슬기 |
Albrecht Dürer <Head of the Child Jesus>, 1506 ©The Albertina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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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스산한 바람이 부는 한겨울의 동유럽으로 떠났던 이유가 있습니다. 2월이 끝나기 전에 빈을 찾았던 이유는 폐막을 앞둔 두 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현대미술(Ultra-Contemporary Art)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탄생하면서 각광받기 시작한 1970~80년대생 젊은 작가의 이야기를 쓸 때마다 궁금했고, 만나고 싶었던 작가가 있었습니다.
아드리안 게니와 매튜 웡입니다. 한국에서도 아트페어 기간에 열린 특별 전시로 개별 작품을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기획된 이들의 전시를 꼭 보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은 가을에 출판될 제 책의 중요한 작가들이기도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2022년 미술계에 등장한 초현대미술을 다룬 기사를 처음 쓰게 된 계기가 된 작가가 아드리안 게니였습니다. '40대 유일의 1000만 달러 작가'라는 설명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매년 한국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에서도 단 한번도 원화조차 전시되지 않은 세계 최고의 인기 작가입니다. 마침 3월 초까지 이 작가의 개인전이 빈의 알베르티나와 드레스덴 SKD에서 나란히 열리는 중이었기에, 동유럽을 종단하는 티켓을 급하게 끊었던 겁니다.
1776년 설립된 알베르티나 미술관(The Albertina Museum)은 250년전 알베르트 폰 작센테셴 공작과 그의 부인 마리 크리스틴이 살았던 공간입니다. 마리 크리스틴은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가 가장 아끼던 딸로서 궁중의 호사를 이 저택에서 누렸죠. 순백의 대리석 장식으로 가득한 실내에는 상들리에와 우아한 가구, 붉은 카페트가 깔려 있어 제국의 영광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가구가 가득한 20개의 접견실은 미술관의 방이 되어 컬렉션을 집안에 걸어 놓은 것처럼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 덕분에 커피와 우유의 조화로 유명한 비엔나 커피인 멜랑쥐(Melange)처럼 이 공간은 현대적인 전시와 고풍스러운 옛 황궁의 조합이 남다른 분위기를 만드는 곳입니다. 현재는 건축 거장들의 기증으로 방대한 건축 아카이브를 보유한 미술관이기도 합니다. 대형 기획전시를 연간 10여개 이상 여는 곳이지만, 이 미술관의 컬렉션도 재미있고 희귀한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회화가 아닌 '드로잉'입니다. 에피타이저가 본식보다 더 유명한 레스토랑과 같다고나 할까요.
알베르티나 미술관의 그래픽 아트 컬렉션은 고딕 시대부터 현재까지 100만 점 이상의 드로잉과 판화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뒤러부터 렘브란트와 루벤스, 클림트와 쉴레, 피카소, 리히터까지 아우르는 이 컬렉션은 600년의 미술사에 대한 풍부한 개요를 풀어낼 수 있어 교육적인 쓸모가 큰 미술관입니다.
드로잉은 빛에 민감해 박물관의 간판 작품들조차 영구적으로 전시 할 수 없습니다. 매년 기획되는 특별 전시의 일환으로 엄선이 되기에, 알베르티나의 걸작들을 만나려면 '행운'이 필요합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아쉽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드로잉 2인전이 망치소리를 내며 준비를 하는 중이어서 놓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알베르티나의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토끼(Hare)>(1502)입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 그림일겁니다. 실제로 보니 크기(25.1 x 22.6cm)가 정말 작았습니다. 화가의 이젤처럼 벽을 향해 기울어진 붉은 전시대 위의 작은 토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묘사가 정교했는데요. 토끼의 귀와 몸에 비치는 따스한 빛과 털의 질감 묘사는 자연 관찰의 극치로 평가받습니다.
그 정점은 눈동자에 있습니다. 실내의 창이 눈동자를 통해 반사되는 모습이 그려져 있거든요. 독일어 제목은 'Feldhase'로 야생 토끼라는 뜻입니다. 눈에 비친 실내 모습으로 인해 뒤러가 어린 토끼를 잡아와 실내에서 오랜 시간 관찰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이니셜에서 A와 D를 가져와 문의 형태로 암호처럼 그린 뒤러의 모노그램은 정말 유명합니다. 28세에 그린 자화상과 지난주에 만난 막시밀리안 황제의 초상에는 황금색으로 모노그램을 새겨넣었죠. 습작으로 많이 사용되던 과슈 수채화에 그는 서명을 넣어 독자적인 작품임을 선언합니다. 이 토끼는 너무 유명해져 당대에만 12명의 화가가 그림을 모방해 그렸다고 합니다. 뒤러는 이들과 법정소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후에 공개된 그의 가장 유명한 자화상은 뮌헨에 있습니다. 6월의 '뒤러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이 방의 바로 옆에는 푸른색 새의 날개를 그린 드로잉이 나란히 있었구요. 어린 예수의 초상을 그린 드로잉도 유명합니다. 이 북구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알베르티나는 3개의 공간을 운영하는 빈 최대 규모 현대미술관입니다. 본관에서 도보 5분 거리에는 동시대 미술 특별 전시를 여는 알베르티나 모던이 있습니다. 1865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이 건물(퀸스틀러하우스)은 리모델링을 거쳐 대규모 설치 작품을 만나는 곳이 되었죠.
2월에는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유머러스한 조각들이 전시 중이었습니다. 풍선처럼 부푼 자동차, 옷걸이에 걸린 사람 조각들이 감각적이고 유쾌했습니다. 봄을 맞은 이 곳은 현재 제니 사빌(Jenny Saville)의 개인전을, 하반기에는 카우스의 전시도 엽니다. 스타 작가들의 전시가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도시의 관문인 다뉴브강 옆에 있는 알베르티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수장고를 겸하고 있는 이 거대한 공간은 활발한 기부로 인해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히 커진, 1945년 이후의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특별전시를 여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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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반 고흐와 매튜 웡, 아드리안 게니와 에곤 쉴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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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관람객층의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매튜 웡은 반 고흐처럼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이 그림이 스스로 말을 걸며 즉각처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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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Field with Irises near Arles>, 1888 ©The Albertina Museum |
반 고흐의 영향이 크게 묻어난 작품. Matthew Wong <The Space Between Trees>, 2019 ©The Albertina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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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웡의 고향인 캐나다 에드먼튼은 자작나무가 많은 곳이었다. 이 자작나무 그림은 클림트의 영향을 받았는데, 클림트의 도시에서 시민들을 만나게 됐다. Matthew Wong <The Kingdom,> 2017 ©The Albertina Museum |
작가의 마지막 해에 완성됐다. Matthew Wong <End of the Day>, 2019 ©The Albertina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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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과거와 현재의 거장들이 함께 추는 파드되(이인무, pas de deux)를 만났습니다. 당대 가장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예술가들, 시대와 불화한 예술가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며, 빈 시민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매튜 웡(1984~2019)는 '페이스북 시대의 반 고흐'입니다. 21세기에 신화를 쓰고 있는 요절한 천재 화가입니다. 세상에 속할 수 없다는 감정을 느끼며 불화했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반 고흐와 무척 흡사합니다. 반 고흐처럼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이 그림이 스스로 말을 걸며 즉각처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라는 점도 닮았죠. 난해한 미술로 가득한 시대에 이렇게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미술이 대중적인 각광을 얻는 모습은, 폐쇄적인 미술계의 일원인 저에게도 반성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27세의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투렛 증후군을 앓으며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자신의 예술을 알렸던 그는 뉴욕에서의 개인전이 크게 성공하며 벼락 스타가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5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후에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1980년대생 작가 중에 가장 비싼 600만 달러의 벽을 돌파했습니다. 시장의 열광보다도 그가 반 고흐와 나란히 반 고흐 미술관에서 2인전을 열게 됐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 전시는 빈으로 다시 여행을 왔습니다. 전시 제목(Painting as a Last Resort, 6월 19일까지)처럼 매튜 웡에게 그림은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이 중국계 캐나다인 예술가는 동양과 서양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성으로 주목받았고,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가 반 고흐였습니다. 자신의 우상과 사후에 나란히 걸을 수 있게된 사실을 그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에 출품될 때마다 기록 행진을 이어가는 매튜 웡의 그림을 한 자리에서 7년의 시간을 따라가며 보는 감흥은 남달랐습니다. 초기에는 동양의 수묵화처럼 검은 물감으로 정물화를 그리기도 했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화법은 점점 대담해졌고, 옛 거장들의 개성을 흡수해 자신만의 예술로 나아갑니다.
마지막 몇 년 동안 매튜 웡은 강렬한 색상을 사용한 상상력이 풍부한 풍경을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했습니다. 반 고흐는 매튜 웡에게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의 영향은 강렬한 색상 사용, 두터운 붓자국과 개인적인 주제 측면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어두운 밤의 고요하게 뜬 달을 향해 길이 뻗어 있는 몽환적인 풍경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도 그는 자신의 가야할 길이 어렴풋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오직 그림에 몰두하며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불꽃처럼 태운 작가의 열정은 그림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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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인터넷 세상에 빠져 자아를 잃어버리는 현대인을 해체된 육체로 묘사하는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 ©Adrian Ghen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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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n Schiele <부활(Auferstehung)>, 1911 ©Versuch einer Vorrede |
Adrian Ghenie <Auferstehung 1>, 2024 ©Adrian Ghen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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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 <The Self-Seers>, 1911 ©Versuch einer Vorrede |
Adrian Ghenie <Studie nach Die Selbstseher I>, 2024 ©Adrian Ghen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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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레는 스타일 뿐 아니라 태도에서도 내 지적 아카이브의 일부였다. 나는 쉴레의 인간 형태의 변형과 늘어남, 이를 이용한 유쾌한 실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단 해부학의 제약을 뒤로하고 나면, 인체의 변형은 더 깊은 수준에서 정신의 초상화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이 연극은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이다."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 1977~)는 30대에 처음으로 1000만 달러의 경매 기록을 세운 '현존하는 가장 비싼 젊은 작가'입니다. 독재 치하의 루마니아에서 성장했고 정치와 사회, 예술, 미디어 같은 소재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비판적인 시각과 독창적인 개성을 그림 속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나약한 육체를 고깃덩어리처럼 해체시켜버리는 점은 프랜시스 베이컨과도 흡사합니다.
그는 에곤 실레의 도시에 너무 잘 어울리는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쉴레의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약 4분의 1이 실종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흑백 사진으로만 알려져 '그림자 그림'으로 불리는 쉴레의 잃어버린 걸작을 21세기의 작가가 부활시킨 겁니다. <Shadow Paintings>(3월 2일 폐막)은 흰색 대리석이 반짝이는 동굴 같은 방에서 쉴레의 머릿속에서 나온 듯한 기괴한 형태의 현대인의 초상을 선보입니다.
예를 들면 레오폴드 미술관에 사진만 걸려있는 <부활>이 재해석됩니다. 1세기 전 그림에선 관속에서 일어나는 이들은 얼굴을 감싸쥐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죠. 게니의 그림에서는 관 속의 인물들은 얼굴이 완전히 뭉게져 표정을 읽을 수 없습니다. 위쪽의 인물은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분신인 스마트폰일까요?
까치 출판사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표지로 익숙한 <Self Seer>도 인터넷에 중독된 현대인으로 재탄생했죠. 한 몸처럼 뒤엉킨 두 남자는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습니다. 게니가 선택한 쉴레의 두 그림은 모두 이중 자화상입니다. 정신 분열을 한 것처럼 두 개의 형태로 그려진 화가의 육체가 한 캔버스 속에 갇혀있죠.
자화상을 즐겨 그리는 게니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아주 흥미로운 도전이었을 겁니다. 세기말의 불안과 쾌락이 담긴 그림 속 인물은, 100년 뒤에 여전히 동일한 실존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쉴레는 인간의 몸을 도구 삼아 더 깊은 곳에 있는 감정적, 심리적 상태를 표현해낸 화가입니다. 인간의 존재, 성, 죽음, 종교에 대한 질문을 던졌죠. 게니는 마치 외계인이나, 괴물처럼 묘사된 현대인을 통해 동일한 질문은 던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술사의 거장과 과학자, 독재자 등을 다시 그리며 전통적인 소재를 택했던 아드리안 게니는 새로운 페이즈를 열고 있는 중인 것 같았습니다. 그 단초는 2022년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선보인 드로잉에서 이미 만났었죠. 이번 전시는 그 표현적인 변화를 완성시켜 선보인 전시처럼 보였습니다.
게니는 두터운 붓자국의 임파스토가 가장 특징적인 작가였는데, 2년 정도 갤러리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휴식기를 거친 뒤 새로운 표현법을 선보인 겁니다. 완전히 평평해진 터치의 신작은 낯설고 신선했습니다. 스타 작가가 완전한 변신에 나서는 건 드문 일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슬럼프에 빠질지, 부활할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았습니다. 게니의 또 다른 전시도 드레스덴에서 곧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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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 '빈의 1900년'을 만나는 레오폴드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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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mok의 반대편에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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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간판 작품은 한국으로 출장 중이었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 ©Leopold Museum |
왼쪽 그림과 완벽한 한 쌍을 이루는 작품. <발리 노이칠의 초상>, 1912 ©Leopold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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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슈베르트를 그린 클림트의 소품. ©김슬기 |
클림트 컬렉션의 마지막 작품은 <죽음과 삶>, 1910-1916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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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미술관은 에곤 쉴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미술관입니다. 클림트와 쉴레 외에도 오스카 코코슈카, 리하르트 게르스틀 등 빈 분리파의 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 미술관은 제법 큰 공간에서 그들의 삶과 예술을 충실하게 재현해냅니다. 이렇게 된 비결이 있습니다.
8,000점 이상의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은 19세기 후반과 그 이후의 모더니즘에 초점을 맞춘 곳입니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195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독특한 컬렉션을 축적한 두 명의 안과 의사인 루돌프(Rudolf)와 엘리자베스 레오폴드(Elisabeth Leopold)의 기증품을 기반으로 합니다.
에곤 쉴레와 구스타프 클림트, 그 친구들의 예술은 1960년대까지도 퇴폐 미술로 낙인 찍혀 비교적 값싸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에곤 쉴레 작품 220여 점을 보유한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했죠.
1994년, 레오폴드 부부는 오스트리아 공화국과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이 1억 6천만 유로를 지불하는 대가로 새로 설립된 사립 레오폴드 미술관 재단에 5,200여 점의 작품과 약 5억 7천만 유로 가치의 컬렉션을 기증했습니다. 루돌프 레오폴드는 2010년 사망 할 때까지 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세기말, 빈은 귀족과 자유주의 지식인, 화려한 링슈트라세와 끝없는 빈민가, 반유대주의와 시온주의, 엄격한 보수주의와 신흥 모더니즘이 공존하는 대도시였습니다. 아놀드 쇤베르크가 '불협화음의 해방'이라고 말한 이 분위기는 1900년 빈에서 모더니즘을 탄생시켰죠.
레오폴드 미술관은 레오폴드 부부의 행운의 컬렉션 덕분에 1900년의 빈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회화와 그래픽 아트에서 문학, 음악, 연극, 무용, 건축, 의학, 심리학, 철학, 경제학 등이 교류하고 충돌하며 혁신을 만들어내던 '모더니즘의 봄'을 한 미술관에서 만나는 건 무척 즐거운 경험입니다. 약 1,300점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이 시대의 예술적, 지적 성취의 풍요로움을 증언합니다.
소장품을 펼쳐보이는 전시 <1900년 비엔나>는 최근 한국에서도 전시를 열어 일부 작품을 만날 수 있었죠. 레오폴드의 에곤 쉴레는 십여점이 넘는 자화상을 비롯해 구불구불한 선으로 가득한 기하학적인 풍경화까지, 정말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미술관의 간판 작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한국으로 출장중이었습니다. 한 쌍을 이루는 <발리 노이칠의 초상>을 비롯한 그 외의 주요작품은 대부분 빈에 남아 있었구요. (저는 10년 전에 이미 만났습니다.) 절정기에 그린 이 한 쌍의 초상화는 기이한 구성과 뒤틀린 각도, 조화로운 색채까지 정말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사진기보다도 사실적으로 묘사를 했던 초기의 클림트가 남긴 작품 중에는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모습도 있습니다. 금박을 아낌없이 쓰는 장식적 특징이 예술에 죽고 사는 전형적인 탐미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죽음과 소녀> 이후 사신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대작 <죽음과 삶>은 1910년 처음 그려진 뒤 두 차례나 큰 수정이 있었습니다. 1916년 마지막으로 클림트는 밝은 금박으로 장식했던 배경을 칠흙처럼 어두운 검정색으로 다시 칠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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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n Schiele <Hermits>, 1912 ©Leopold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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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미술관은 에곤 쉴레의 크고 작은 자화상이 정말 많은 곳입니다. 특히 에곤 쉴레의 자화상에서는 재미있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중 초상화라고 부르는 두 인물의 초상화가 무척 많다는 것입니다. 아드리안 게니가 왜 에곤 쉴레의 이중 초상화에 꽂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은둔자>는 무척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거의 실물 크기의 두 인물은 검디 검은 수도복을 입고 있어 마치 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왼쪽은 에곤 쉴레 자신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오른쪽은 인물에 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그림을 멘토 클림트와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그렸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쉴레는 후원자인 칼 라이닝하우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그들을 칠한 희미한 색은 의도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적인 생각과 비전은 물론이고, 의도된 인물들의 모호함, 즉 삶에 지친 인간의 몸,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감정적인 인간의 몸은 상실되고 말 것입니다." 세번이나 서명을 남긴 이 그림 속 인물은 이런 이유로 클림트 외에도 쉴레의 아버지, 성 프란체스코, 그리스도의 상징이라는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냅니다.
배경은 비잔틴 성화나 중세 제단화를 연상시키는 금빛과 갈색으로 칠해진데다 균열까지 있어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씬 스틸러'는 그림 왼쪽 구석의 시든 장미 두 송이입니다. 흙에서 자라난 것 같은 지친 표정의 두 남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 속 암호처럼 보입니다. 장미꽃은 소멸과 삶의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죽음에의 충동은 이미 22살 쉴레의 삶을 지배하는 문제의식이었던가 봅니다. 스페인 독감이 그의 삶을 앗아가기 전부터도, 죽음이란 관념에 지배당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게합니다. <은둔자>는 고독, 예술적 정체성, 실존적 불안을 그림 속 상징을 통해 숨겨 놓았습니다. 그의 작품 중 희귀하게 종교적인 메세지가 숨겨진 작품이기도 하죠. 표현력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초기의 걸작입니다.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과 나란히 감상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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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리아 미로 <Celia Paul : Colony of Ghosts>
- ~4월 17일
셀리아 폴의 개인전을 전시 마지막주에 아슬아슬하게 다녀왔습니다. 초상화의 모델이 낯익지 않은가요? 전시회의 제목이 된 작품 <유령의 식민지>는 1963년 소호의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 런던 화가들을 그린 존 디킨(John Deakin)의 유명한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폴의 그림 속 인물들은 루시안 프로이트, 프랜시스 베이컨, 프랭크 아우어바흐, 마이클 앤드류스입니다. 폴은 남성들의 미술계에 받아들여지는 것에 관한 불안감을 초상화로 그린 겁니다. 하지만 이들의 시대는 저물고 이 여화가는 지금 화려한 전성기를 맞은 것 같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린 듯한 초상화는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있게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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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는 런던에서 빅 이벤트가 열리는 주간입니다.
테이트 모던의 전시를 앞두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서도호 작가는
"작품의 70%가 신작이기 때문에 서베이 전시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라고 했는데요.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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