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런던은 미술인들에게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축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모던이라는 두 런던 대표 미술관이 하루 차이로 연이어 생일 파티를 열고 있어서입니다. 지난 2주일 동안 벌어진 런던의 이벤트를 소개해봅니다.
두 곳에 앞서 J.M.W.터너의 250주년 전시를 4월 23일부터 시작한 테이트 브리튼도 다녀왔지만 잠시 미뤄두겠습니다. 짧은 파리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런던의 미술관들을 한 번에 둘러보는 감흥은 남달랐습니다.
38회 (2025. 5. 14) |
|
|
환상적인 5월 날씨 속에 생일을 맞은 테이트 모던. ⓒ김슬기 |
|
|
Prologue : 테이트 모던에 지어진 서도호의 '종이의 집' |
|
|
직접 집 속으로 들어가 체험할 수 있는 패브릭 하우스 작품 <Nest/s>, 2024 ©Do Ho Suh |
|
|
<Rubbing/Loving Project: Seoul Home>, 2013-2022 ©Do Ho Suh |
<Perfect Home: London, Horsham, New York, Berlin, Providence, Seoul>, 2024 ©Do Ho Suh |
|
|
<Perfect Home>을 위한 드로잉과 의상이 전시되고 있다. ©Do Ho Suh |
로비에서 걸어다니는 키네틱 아트 <공인들> ©Do Ho Suh |
|
|
4월 29일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테이트 모던으로 향했습니다. 서도호의 서베이 전시 <Walk the House>(10월 19일까지)의 프레스 뷰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날 작가가 참석하지 않는 프레스 뷰의 진행 방식이 낯설기도 했고, 취재진이 100명이 넘는 전시도 런던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작가를 직접 만나고 싶어 저녁 6시30분에 열린 오프닝 행사에 다시 참석했습니다.
테이트 모던 블라바트닉 빌딩 2층은 리움의 블랙박스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나, 테이트 모던에서는 충분히 큰 메인 공간입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세계 미술계가 일제히 찬사를 보낸 마이크 켈리의 회고전이 열렸던 그 공간이었죠. 생존 작가의 개인전이 꾸준히 열고 있어, 이들이 써내려가는 21세기 미술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곳처럼 보입니다.
이미래의 터빈홀 전시는 3월 말 막을 내렸습니다. 1달여만에 바톤 터치를 했고 한국 작가가 다시 한 번 이 곳의 주인공이 된 셈입니다. 5월 1일 개막후 첫 주말부터 티켓은 매진되고 있습니다. 에딘버러에서도 느꼈지만 서도호를 향한 영국인의 사랑은 진심입니다. 아마도 영국의 빅토리아 미로가 키운 '런던의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집이라는 공간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영국 문화도 영향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영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신문 기사도 썼습니다. 📌기사 바로가기
이번 전시는 작년 5월 평면 위주 전시였던 에딘버러 국립미술관, 드로잉과 개념미술, 건축 모형 등을 중점적으로 보여준 8월 아트선재센터 전시가 동시에 열리며 보여준 신선함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디어의 발현 과정을 엿보게하고(에딘버러), 패브릭 하우스(Fabric House)를 포기하며(서울) 각자의 방식으로 파격적이었던 두 전시에 비해 파격적인 시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두 전시가 보여준 작품을 고루 가져와 보여주는 전시에 가까웠죠. 세 전시를 모두 본 입장에서는 작가의 '정반합'적인 기획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이번 전시의 시작은 종이의 집입니다. 작가의 지난 10여년을 대표하는 작업은 <Rubbing/Loving Project>일 겁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는 2012년 서울의 고향집에 종이를 붙이고 파스텔로 문질러 탁본을 했습니다. 종이는 연약하고 손상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이 탁본을 9개월이나 집과 함께 하도록 했습니다. 풍화를 거쳐 자연의 흔적이 남은 작품이 탄생한겁니다.
디아스포라 인생의 출발점이었던 부친 서세옥 화백이 지은 19세기 전통 한옥은 그의 유년기를 지배했던 공간이자, 평생 달팽이처럼 지고 다니는 집입니다. 30여년 자신의 예술의 시작점을 명확히 보여준 뒤 그는 광주 극장, 뉴욕집 등을 기억하기 위한 탁본 작업을 펼쳐보인 겁니다.
다만 서베이 전시의 장점과 단점은 모두 명확해 보였습니다. 서도호를 처음 보는 관람객들에게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친절하고, 즐거우며, 아름다운 전시로 기억될 겁니다. 하지만 새롭고 도전적인 미술을 선호하는 런던의 현대미술관을 찾는 이들의 까다로운 안목을 만족시키기에는 쉽지 않겠죠. 서베이 전시의 숙명입니다.
최근 양혜규와 서도호가 모두 서베이 전시를 열었고, 가디언의 신랄한 비판을 받은 것은 아마도 그런 영향이 클 겁니다. 최근 한국의 큐레이터와 서베이 전시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장기불황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가 아닐까"라는 자조적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자본의 '가성비' 측면에서 스타 작가의 서베이 전시는 안전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새로운 도전을 기대하긴 어려울테니까요.
이번 전시에서도 <Nest/s>(2024)가 기존의 패브릭 하우스의 확장버전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완전한 신작은 런던 자택을 반투명 패브릭 하우스로 만들고 스위치, 콘센트, 조명 등을 다닥다닥 새겨 놓은 <Perfect Home: London, Horsham, New York, Berlin, Providence, Seoul> (2024)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공간에 들어가 보는 '체험'이 이번 전시만의 특징이었죠. 거대한 전시 공간 속에 몰입형 전시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2025년에 잘 어울리는 무척 트렌디한 선택입니다. 오늘날의 미술 전시는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슈퍼스타가 된 2012년 리움미술관 전시 이후로 많은 이들은 서도호의 전시에서 더 예쁜 패브릭 하우스를 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로빈후드 가든이라는 공공주택을 통째로 잘라서 베니스에 설치했고, 이번 전시에서도 로빈후드 가든과 대구 동인아파트의 철거전 모습을 영상으로 상영했습니다. 작가는 인형의 집처럼 예쁜 설치 작업을 지속하기보다는 이주민의 삶, 공동체의 삶을 기록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울-런던-뉴욕의 가운데인 북극에 완벽한 집을 건축하는 프로젝트는 과학자들과 현지 주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종이 신문까지 만들어 배포되며 진행 중이었습니다. 건축가 같던 작가가 과학자, 다큐멘터리 작가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조만간 쇄빙선을 타고 여행이라도 떠나신다면 탐험가라는 직업이 하나 더 추가될지도 모르겠네요.
|
|
|
루이스 부르주아 <Maman>이 설치된 터빈홀 ©김슬기 |
|
|
테이트 모던을 대표하는 25점의 하이라이트 ©Tate |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 2022 ©김슬기 |
|
|
5월 11일로 테이트 모던은 25주년을 맞았습니다. 테이트 모던은 탄생부터 특별한 미술관이었습니다. 원래 국립 미술관이라는 이름 아래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는 한 몸이었습니다. 1889년, 설탕 정제업자로 부를 쌓은 사업가 헨리 테이트(Henry Tate)가 19세기 영국 미술 컬렉션을 영국에 기증하고 최초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를 위한 자금을 제공하면서, 테이트라는 새로운 미술관이 탄생할 수 있었죠.
템스강변 밀뱅크에 건립된 테이트 브리튼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길버트 스콧 경이 건축해 20여년간 운행된 뒤 폐쇄된 뱅크사이드 발전소가 미술관으로 변신할 기회를 얻습니다. 1994년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계획이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마침내 2000년 5월 11일 현대 미술을 품는 거대한 미술관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엽니다. 첫 터빈홀 전시의 주인공이 된 루이스 부르주아를 비롯해 아니쉬 카푸어, 올라퍼 엘리아슨 등의 센세이셔널한 전시는 21세기 최고의 전시로 매번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25년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으며 런던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된 이 곳의 생일 파티도 남달랐습니다. 생일 주간을 맞아 미술관의 거대한 터빈홀은 클럽이 됐습니다. 9~11일 10시30분까지 야간 개장을 하며 전시를 이어가고, 터빈홀에서는 음식과 술을 팔고 음악을 틀었습니다.
야간 개장을 보려고 저는 2주일만에 다시 테이트 모던을 찾았습니다. 25주년 기념 전시도 새롭게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전시 중인 작품에 작은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숨겨 놓았습니다. '25점의 미술관의 역사를 대표하는 하이라이트'를 선정해 보물찾기하듯 만나보며 스스로 지도를 그려보는 전시였죠.
2000년 미술관의 개관을 함께 했던 전설적인 작품 루이스 부르주아의 <Maman>이 터빈홀로 돌아왔습니다. 대표적인 포토 스팟이 되어 인기를 누리는 중입니다. <하이라이트 25>의 면면이 정말 화려합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이면화>, 마크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 조안 미첼의 <Iva> 등이 포함됐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도로시아 태닝의 <Eine Kleine Nachtmusik>입니다.
놀랍게도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가 선정됐습니다. 테이트 모던에서 처음 공개하는 신작이 쟁쟁한 거장들과 함께하게 된겁니다. 반갑고도 신기한 만남이었습니다. 불친절할 수 있는 동시대 미술들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25점이 그리는 지도는 21세기 미술사를 안내하는 친절한 가이드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
Deep focus :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내셔널 갤러리 |
|
|
내셔널 갤러리 본관의 서쪽에 반짝반짝한 신축 건물로 돌아온 세인즈버리윙. ©김슬기 |
|
|
세이인즈버리 윙 재개장일 개막 시간의 인파. ©김슬기 |
리처드 롱 <Mud Sun>, 2024 ©김슬기 |
|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가 보이는 전시장 입구. ©김슬기 |
|
|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1824년 의회에 의해 설립되었죠. 물론 규모나 화려함에서 이 곳을 능가하는 곳은 많습니다. 하지만 13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유럽의 회화 컬렉션을 가장 다채롭고 조화롭게 소장한 미술관으로는 이 곳을 능가할 곳이 없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벨리니, 세잔, 드가, 레오나르도, 모네, 라파엘로, 렘브란트, 르누아르, 루벤스, 티치아노, 터너, 반 다이크, 반 고흐, 벨라스케스의 작품 등 1000여점의 그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셔널갤러리가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작년부터 미술관의 기둥을 비롯해 곳곳에는 'NG200'이라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1년에 걸쳐 생일 파티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보면서 "뭘 이렇게까지 생일에 진심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대표작 12점을 영국 전역에서 순회전시하고, 반 고흐와 시에나 특별전을 열었죠. 1년에 걸친 이벤트의 방점은 201주년이 된 5월 10일 찍혔습니다.
201살 생일에 맞춰 내셔널 갤러리가 2년 간의 리모델링을 마친 세인즈버리 윙(Sainsbury Wing)이 재개장을 한 겁니다. 건축가 애너벨 셀도르프(Annabelle Selldorf)의 설계로 공간은 더욱 현대적인 면모를 갖추게 됐습니다. 공개 첫 날 입장이 시작된 10시에 맞춰 줄을 서서 함께 들어갔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많았고 TV 리포터가 관람객들의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간은 더 넓고 쾌적해졌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미셰린 셰프 조르지오 로카텔리의 근사한 에스프레소바와 다이닝 레스토랑도 생겼습니다. 전시장 입구로 오르는 계단의 끝에는 리처드 롱의 <Mud Sun>이 새롭게 걸렸습니다.
중앙홀을 통해 입장하던 동선이 다시 과거처럼 세인즈버리 윙을 통한 입장으로 정리되면서 입구 방의 중세 미술부터 19세기로 향하는 연대기적인 관람 동선이 다시 완성된 셈입니다. 세인즈버리윙부터 동쪽 끝에 걸린 조지 스텁스의 기념비적인 말 그림 <휘슬자켓>까지 1층 전체가 개방된 횡축을 갖게 됐죠. 특히나 저처럼 길눈이 어두운 사람은 정말 친절한 미술관입니다.
저는 내셔널 갤러리를 오래전부터 좋아한 개인적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기전까지 미술관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골 소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서양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미술사에 흥미를 갖게 됐지만 직장인이 되기 전까지 해외 미술관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27살의 첫 해외 출장지 런던이었고 내셔널 갤러리는 첫 해외 미술관이었습니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인상파 걸작들이 가득한 이 곳은 말그대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불과 하루 전날 루브르 미술관을 무려 10시간 동안 관람하고 내셔널 갤러리에 돌아오니, 고향집에 온 것처럼 친근했습니다. 16년 동안 10번이 넘게 찾은 유일한 해외 미술관이자, 매번 올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곳이어서입니다. 위압적인 거대한 걸작들만 있는 게 아니라, 눈을 감아도 작품들의 위치를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이 공간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은 그림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입장하고, 숙제를 하듯 관람을 해야하는 다른 나라의 초대형 미술관과 달리, 내셔널 갤러리는 무료 입장으로 개방된 미술관임에도 오히려 여유 있는 감상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가한 시간대에 쾌적한 관람을 즐길 수 있는 방들도 곳곳에 숨어 있으니까요. 심지어 런던에서 1년을 살게되면서 사시사철 마음대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려고 들렀고 여름에는 햇살을 피하러 들렸습니다. 지나가다 그림 한 점이 궁금해 잠시 들를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개인적 인연 덕분에 미술관의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게 된 점이 즐거웠습니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아닐지 모르지만, 미술관은 다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200주년을 기념해 새로 구입하고 대여한 20여점의 신작이 공개됐습니다. 그리고 재개장한 세인즈버리윙은 미술관의 가장 오래된 그림의 집이 됐죠. 마치 르네상스 시대 성당처럼 내부가 장식된 내셔널 갤러리의 공식적인 첫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입니다. 이 작품 뒤에는 별도의 어두운 방을 만들어 다빈치의 <벌링턴 하우스 카툰>도 숨겨 놓았죠.
내셔널 갤러리는 다빈치의 원화를 가진 세계의 네 곳뿐인 미술관이자 이탈리아 밖에선 세계 최고의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 컬렉션도 보유한 곳입니다. 이들과 함께 라파엘로의 그림도 가깝게 모아 놓아서 '르네상스 걸작'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마치 루브르 박물관의 그랜드 갤러리처럼 간판 작품들을 입구에서부터 만나는 변화를 도모한 겁니다. 재개장전 <암굴의 성모>는 동굴처럼 구비구비 먼 길을 걸어야 만날 수 있었으니 큰 변화인 셈입니다.
중세 그림들의 방은 국가, 작가, 시대별 엄격한 분류를 하는 대신 주제 중심으로 작품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와 바네사 벨이 영감을 받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의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예배당 같은 방도 만들어졌습니다.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의 <산 로마노 전투(The Battle of San Romano)>(1438-40)도 3년간의 복원 과정을 거쳐 다시 돌아왔습니다. 삼부작 중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에서 훼손된 작품을 본다면, 얼마나 탁월한 복원을 거쳤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겁니다.
새로 구입한 에드가 드가의 <발레 댄서>(1888)의 옆에는 나란히 파스텔화가 걸립니다. 2023년 전시에서 찬사를 받았던 장 에티엔 리오타르의 <가족의 아침 식사>입니다. 지난주에 만난 <초콜릿 소녀>(1754)를 기억한다면 이 화가가 반가울 겁니다. 비스킷을 커피에 적셔 먹고 있는 귀여운 소녀의 그림입니다. 상설 전시에 포함된 새 소장품에는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관객 이후>(1879), 니콜라 푸생의 <최후의 만찬>(1637-40)도 포함됩니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신작도 있는데요. 무려 2000만달러에 구입한 작가를 알 수 없는 17세기 벨기에의 수도원 제단화로 발견된 <성도 루이와 마가렛과 함께 성모와 아이>(1510년경)입니다. 인물들의 독특한 표정은 물론이고, 용이 나오는 성모화라니요. 정말 신기합니다. 이 재능 있고 독창적인 작가의 정체가 미술관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다면 떠들썩한 뉴스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Titian)도 완전히 자신의 방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대형 <수련>과 지베르니 그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네의 방은 첫 날부터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전용 방이 있는 다른 예술가로는 루벤스와 안토니 반 다이크, 렘브란트와 토마스 게인스보로가 전부입니다.
재개장 이전에는 내셔널 갤러리의 중앙홀을 통해 입장하면 처음 등장하는 방은 초상화가 걸린 로스차일드룸이었습니다. 벨라스케스 등의 초상화가 도열해 있는 곳입니다. 이 곳에 찰스왕과 파멜라 왕비의 초상화가 걸렸습니다. 덕분에 사전트의 초상화가 사라져 실망을 할 뻔했으나, 1달 동안의 전시 후에는 다시 버킹엄 궁전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천만다행입니다.
|
|
|
Piero della Francesca <The Baptism of Christ>, 1437–1445 ©The National Gallery |
Unknown Netherlandish or French artist <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Louis and Margaret>, about 1510 ©The National Gallery |
|
|
Edgar Degas <Ballet Dancers>, 1890-1900 ©The National Gallery |
Jean-Étienne Liotard <The Lavergne Family Breakfast>, 1754 ©The National Gallery |
|
|
Eva Gonzalès <The Full-length Mirror>, 1869-70 ©The National Gallery
|
|
|
세 개의 물건, 소파, 전신 거울, 벽에 걸린 그림만 있는 소박한 텅 빈 방에서 한 젊은 여성이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그녀는 줄무늬 드레스를 입고 허리를 나비 리본으로 묶고 있습니다. 손에 쥔 작은 빨간 꽃만이 유일하게 밝은 색을 띈 그림입니다.
에바 곤잘레스의 <전신 거울>(1869-70)도 이번에 새롭게 전시되는 신상 8점 중 하나입니다. 인상파의 방에서 구석에 걸린 이 그림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도 없이 찾은 이 방의 눈에 익지 않은 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시선을 끌어당겼고, 여성의 표정은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처럼 거울에 비친 젊은 여성의 모습은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소재였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와 베르트 모리소가 그렸죠. 조금 더 거슬러 오르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로케비 비너스>의 전통에 위치하는 여성 이미지이기도 하죠.
그림 속 여성은 곤잘레스의 여동생 잔느(Jeanne)로, 역시 예술가였고 곤잘레스의 친애하는 모델이었습니다. 곤잘레스가 1869년에서 1870년경, 마네의 유일한 정식 제자가 된 직후에 이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측합니다.
|
|
|
- 가고시안 런던 그로스베너 힐 <Amoako Boafo : I Do Not Come to You by Chance>
- 5월 24일까지
미술관처럼 거대한 가고시안 갤러리에 검은집이 만들어졌습니다. 서도호 작가도 아닌데, 왠 집인가 싶지만 이 아프리카의 소울을 대표하는 작가가 세운 집은 의미가 있습니다. 가나에 그가 만든 신인을 위한 레지던시 오그보조(Ogbojo)라는 공간을 런던에서 재현해보려한 겁니다. 공백기를 거쳐 돌아온 보아포는 메가 화랑 가고시안과의 협업에서 색다른 도전을 합니다. 그림은 정사각형 프레임을 벗어납니다. 거대해지고, 이면화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임파스토가 특징인 작가는 인쇄물을 콜라주한 꽃무늬 의상을 입은 아프리카 인물들을 그려넣습니다. 정원에 열광하는 영국인을 위한 특별 제작 작품인가 싶었습니다. 이 도시에서의 완판은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
|
|
놀랍게도 저는 내일 아침 아테네행 비행기를 타러 갑니다.
대영 박물관을 몇번이나 찾으며 예습도 충분히 했습니다. 곧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