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네덜란드에서 두번째로 찾은 도시는 헤이그입니다. 행정 수도 역할을 하는 도시라, 관광지가 많았던 암스테르담과는 무척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운하는 흐르고 있었지만, 바둑판처럼 쭉쭉 뻗은 도로와 고층 건물이 많아서 고풍스러운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와는 제법 달라보였습니다.
어딜 가나 깨끗하고,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아서 네덜란드는 정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제가 헤이그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진주 귀고리 소녀'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41회 (2025. 6.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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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설탕 궁전으로 불렸던 미술관, 마우리츠하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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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헤이그의 보석상자인 마우리츠 하위. 도시 곳곳에 이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 표기되어 있을 정도니, 한 소녀가 도시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Mauritshu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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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는 전세계 팬들이 보낸 진주 귀고리 소녀의 다양한 패러디 작품들이 디지털 액자에서 전시된다. ©김슬기 |
아트숍에서는 진주 귀고리 소녀 버전 미피도 판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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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같은 미술관'이라는 말은 너무 식상한 클리셰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미술관은 건물부터가 보석함처럼 보이거든요. 크림색으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은 정방형 구조의 작고 아름다운 미술관입니다.
유럽의 초대형 미술관과 비교하면 크기가 무척 작습니다. 하지만 17세기의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회화를 중심으로 한 250여점의 소장품 수준은 세계 어느 미술관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거장들의 대표작들을 빠짐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입장하면 로비에는 진주 귀고리 소녀와 셀카를 찍을 수 있는 대형 이미지가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디지털 액자에서 전세계의 진주 귀고리 소녀 팬들이 만든 2700개가 넘는 '나의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프로젝트에 응모된 패러디 작품 중 엄선된 60여점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아트숍이 정말 인기가 많은데요. 이 베르메르의 걸작을 소재로 한 필기구, 노트, 책, 컵, 우산 등은 물론이고 미피 인형까지도 팔고 있습니다. 아마도 모나리자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미술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에서는 일본인 관람객에 유난히 많은 점도 신기했습니다.
이 화려한 미술관의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모두 있습니다. 이 건물은 원래 헤이그의 플레인(Plein)에 있는 도시 궁전이었습니다. 요한 마우리츠 백작의 개인 저택으로 지어진 이 궁전은 식민지 시대의 부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1644년 헤이그로 귀환해 요한 마우리츠는 새로 완공된 궁전에 입주했고 독일로 떠난 후에는,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사용하는 별장 역할을 했습니다. 1822년부터 이 건물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17세기에 이 건물은 '설탕 궁전'이라는 멸칭으로 불렸습니다. 요한 마우리츠의 막대한 부는 네덜란드령 브라질에서 이뤄진 아프리카인 노예들의 사탕수수 노역과 인신 매매를 통해 축적되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24,000여명의 아프리카인이 네덜란드 식민지로 강제 이송되었을 정도니까요.
21세기에도 여전히 궁전의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은 내부의 실크 벽지와 금으로 장식된 섬세한 조명, 문양으로 장식된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통해 오랜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2014년에 걸쳐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마쳤고, 2022년에는 성대한 200주년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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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마침내 만난 진주 귀고리 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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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화와 가구, 조명, 바닥 마루의 문양까지도 뭐 하나 예쁘지 않은 디테일이 없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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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Sunflowers>, 1889 ©Mauritshuis |
Jan Brueghel the Elder & Peter Paul Rubens <The Garden of Eden with the Fall of Man>, 1615 ©Mauritshu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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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Steen <'As the Old Sing, So Pipe the Young'>, 1668-1670 ©Mauritshuis |
Jan Brueghel the Elder & Peter Paul Rubens <The Garden of Eden with the Fall of Man>, 1615 ©Mauritshu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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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van Rijn <The 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 1632 ©Mauritshuis |
Rembrandt van Rijn <Self-Portrait>, 1669 ©Mauritshu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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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츠하위스는 네덜란드 회화의 영광의 시대를 기리는 궁전입니다. 초상화와 정물화를 미술의 주류로 만든 화가들의 면면을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2/1583~1666)의 <웃는 소년>(1625)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웃음을 놀랄만큼 작은 원형 캔버스에 그려넣었습니다.
느슨한 붓놀림으로 표현된 소년의 무장해제시키는 미소를 담은 이 그림은 엄밀히는 초상화가 아닙니다. 여기서 할스는 현존하는 모델의 모습을 그리지 않고 즉흥적인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그렸습니다. 미소와 웃음은 묘사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래서 미소는 종종 억지처럼 보이기도 하죠.
예리한 관찰력과 흉내낼 수 없는 기법으로 그는 독보적인 웃는 소년을 만들어냈습니다. 할스는 웃는 소년과 소녀를 여러 점 그렸습니다. 사본이 많이 만들어질만큼 당대에 매우 인기가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만큼 활기찬 웃음은 할스의 다른 초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플랑드르의 두 거장 루벤스와 얀 브뤼헐(Jan Brueghel the Elder)이 같이 그린 작품입니다. 앤트워프에서 절친한 사이로 둘은 공동작업을 20여점이나 남겼습니다. 농부 화가 피터 브뤼헐의 두 아들은 모두 화가로 성공했습니다. '지옥의 화가'로 불린 형 피터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Younger)과 달리 동은 '꽃의 화가'로 불렸죠.
서명을 근거로 루벤스는 인물을, 브뤼헐은 구도를 담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벤스는 얇은 물감으로 아담과 이브, 나무, 말과 뱀을 그렸습니다. 브뤼헐은 식물과 동물을 맡아 백과사전처럼 정교하게 그림을 완성했죠. 두 화가의 장점을 결합한 이 작고 화려한 세밀화는 에덴 동산에 가득한 동물 묘사 덕분에 아이들의 교육용으로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얀 스틴(Jan Steen, 1626~1679)의 <노인들이 노래하면 젊은이가 피리를 분다>(1668-1670)는 도덕적·사회적 비판을 담은 장르화의 전형입니다. 속담을 묘사했는데, 이는 나쁜 본보기가 나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콩 심은데 콩 난다'라는 한국 속담을 연상시키는 말이죠.
오른쪽에서는 웃고 있는 아버지가 자녀 중 한 명에게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스틴 자신입니다. 유쾌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만큼이나 그는 대단히 숙련된 화가였습니다. 앵무새(붉은날개 금강앵무)가 횃대에 앉아 있는게 보이시나요. 이 유명한 모방자도 어린아이처럼 무엇이든 따라할 겁니다.
혼돈에 빠진 집, 가짜 의사, 아픈 소녀, 술에 취한 어른과 아이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여관에 대한 그의 재미있는 그림들은 너무 유명했고, 혼돈의 집을 뜻하는 '얀 스틴 가정'이라는 말은 지금도 네덜란드에서는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는 렘브란트의 작품 11점을 소장해 그의 생애를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은 역시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죠. 25세가 되던 1632년, 라이덴에서 대도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직후 그는 툴프 박사에게 그림을 의뢰받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는 구도와 극적 조명이 인상적인 군상 초상화를 완성해냅니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초상화가로서의 이름을 확고히 만듭니다.
그림 속에서 외과 의사들은 각기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조는 역동성을 더합니다. 의사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시체의 신원도 알려졌습니다. 아리스 킨트는 겨울 코트를 훔친 혐의로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컬렉션에는 렘브란트의 <두 아프리카인 남자>와 최후의 자화상을 포함해 그의 경력 전반에 걸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0여점이나 되는 자화상을 그린 이 거장의 마지막 자화상이 이 도시에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얼굴은 더 깊게 주름이 잡혔고, 뺨은 더 움푹 패였으며, 머리카락은 더 회색으로 세었습니다.사망한 해인 1669년 그린 자화상은 3점이고 이 그림이 마지막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년의 렘브란트는 여전히 영감이 넘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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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es Vermeer <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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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앞의 인파는 모나리자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김슬기 |
Johannes Vermeer <View of Delft>, 1660-61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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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츠하위스 컬렉션의 시작과 끝이자, 알파와 오메가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1665)입니다. 헤이그라는 작은 행정 도시가 이토록 많은 관광객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이유도 바로 이 한 점의 걸작 때문이죠.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라 '트로니(tronie)'입니다. 상상의 인물을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이국적인 드레스를 입고 동양풍 터번을 두르고 이 소녀의 정체는 영원한 미스터리입니다. 모델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이 소녀의 존재는 21세기에도 사람들을 홀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1999년 트레이시 슈뱔리에가 쓴 소설과 동명의 영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성지순례'의 인파가 부쩍 늘어나게 된 겁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도 이 소설은 특별했습니다. 소리소문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 속 섬세하고 아름다운 한 화가의 삶에 대한 묘사는 '이 그림을 언젠가는 보고 말겠노라'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당대에 하녀는 고용주와의 부적절한 성적관계를 강요받는 계급이었습니다. <밀크 메이드>에도 그러한 불안정한 신분에 관한 은유가 곳곳에 녹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하녀 흐릿을 미술에 재능이 있고, 거장의 예술혼을 고양시키는 존재로 묘사니다.
소설에서 이 그림 속 소녀는 '모순의 집합체'로 묘사됩니다. 푸른색 터번을 두른 소녀는 "순진하면서도 경험 많은, 기쁘면서도 슬픈, 갈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상실감으로 가득 찬 소녀"였죠. 소녀가 이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숨겨진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모호하고 신비로운 표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스탕달 신드롬도, '심장을 덜컥하게 만드는 첫 만남' 따위도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예술의 감동은 눈이 아닌, 머리에서 나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이면을 깊이 읽을 때 감동이 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만나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이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도 많이 접했기 때문이겠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의 세기의 전시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었는데요. 마우리츠하위스에서 그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그림은 반드시 이 미술관에서 만나야합니다. 200년전의 고풍스러운 실내장식으로 꾸며진 작은 방은 조명도, 온도도, 습도도 완벽했습니다. 이 그림이 이 곳에 오게 된 사연까지 알게 될 때 완벽한 감동이 찾아옵니다.
사후에 완전히 잊혀진 화가가 된 베르메르의 이 그림은 1881년 헤이그에서 경매에 나오게 되면서 일반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습니다. 문화 관료인 빅토르 드 스투어스(Victor de Stuers)와 친구인 미술품 수집가인 A.A. 데 톰브(A.A. des Tombe)는 이 그림이 심하게 더러워졌음에도 청소 과정에서 서명을 발견하며 베르메르의 진품임을 알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입찰을 하지 않기로 했고, 단돈 2길더 30센트에 그림을 구입합니다. 데 톰브가 1902년 세상을 떠나면서 이 그림을 포함한 12점을 마우리츠하위스에 기증하는 비밀유언장을 쓰면서, 이 곳을 안식처로 삼게된 겁니다. 헤이그를 직접 찾는 이들에게만 이 소녀는 미소를 건넵니다. 심지어 관람객의 인파도 <모나리자>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라 조금만 기다려도 꽤 고요한 환경에서 집중해서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빛의 대가, 베르메르의 그림은 갈라진 유화 물감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큰 눈망울과 입술, 진주 귀고리가 반사하는 빛은 여전했습니다. 베르메르의 놀라운 회화적 표현력은 진주 귀걸이 묘사에서 정점을 보여줍니다. 두 개의 흰색 붓질만으로 구현된 진주는 너무 커서 진짜가 아닌 모조품일거라고 추측됩니다. 심지어 은제 고리도 그리지 않은 완벽한 표현법입니다.
소녀의 맞은편에는 <델프트 전망>이 보입니다. 그는 단 두점의 풍경화만을 남겼습니다. 이 헤이그의 그림을 보고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5권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병든 작가 베르고트가 이 그림 앞에서 감정에 북받쳐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모습을 묘사했을 정도니까요.
베르메르는 남쪽에서 델프트를 바라봅니다. 운하 위로 도시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평온함입니다. 물 속에 떠 있는 배들은 모두 정박해 있고, 돛은 내려져 있다. 바람은 거의 없습니다. 나무에는 잎이 가득해 늦봄이나 여름임을 알려주고, 동쪽의 태양은 아침임을 슬쩍 암시하죠.
사람의 흔적은 잘 보이질 않습니다. 그림의 전경에는 부두를 걷는 두 무리의 사람들만 너무 작아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물러서서 보면, 이 그림은 바다의 윤슬처럼 반짝입니다. <델프트 전경>은 빛과 도시의 분위기를 포착하는 화가의 탁월한 능력을 입증하는 걸작입니다.
삶의 많은 부분이 비밀에 가려진 이 화가가 남긴 37점의 유산을 쫓아떠난 모험은 이제 저에게도 막을 내렸습니다. 더블린과 독일 소도시에서 다른 작품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미 충분한 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 베르메르 순례자들에게 이 미술관은 마침표를 찍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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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l Fabritius <The Goldfinch>, 1995 ©Van Gogh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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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팬들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작품이 있습니다. 카렐 파브리티우스(Carel Fabritius, 1622~1654)의 <The Goldfinch>는 의심할 여지 없이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새 그림입니다. 학명은 '유럽 오색방물새'로 참새목의 작고 귀여운 새입니다.
한국에서는 황금방울새로 더 익숙할겁니다. 2014년 퓰리처상을 받은 도나 타트의 베스트셀러로 익숙해진 이름이거든요. 미술관 폭탄 테러에서 어머니를 잃은 소년이 이 그림을 손에 넣으며 겪는 일들을 다룬 무척 탐미주의적인 소설입니다.
저는 그냥 골드핀치로 부르겠습니다. 골드핀치 그림 속의 새는 정말 손바닥으로도 가려질만큼 작습니다. 검정, 노랑, 붉은색의 깃털을 모두 가진 예쁘고,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새를 파브리티우스는 구슬 같은 작은 눈과 풍부한 디테일로 그렸습니다. 다리가 쇠사슬에 묶인 작은 새가 모이통 위에 앉아 있죠. 당시 골드핀치는 몇가지 재주를 배울 수 있어서 인기 있는 애완동물이었습니다.
미술관은 X선과 적외선 촬영을 통해 트롱프뢰유(trompe-l'oeil, 실제 사물로 혼동하게 만드 그림 기법)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애초에 흰색 배경만 있던 그림에 횃대가 추가되었음을 밝혀냈습니다. 트롱프뢰유 효과는 파브리티우스 시대의 유행이었습니다. 완벽한 환상을 창조하는 것은 화가가 열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성취였죠.
파브리티우스는 렘브란트의 가장 실력이 뛰어난 제자였습니다. 1650년 델프트로 이사했을 때, 이 도시에는 베르메르와 피터 드 후치(Pieter de Hooch, 1629-1684)와 같은 예술가들은 원근법, 빛의 실험을 하고 있었죠. 연구자들은 파브리티우스 작품의 차분한 분위기가 베르메르에게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이 도시에서 작고 마법 같은 그림들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을 완성한 해에 32세의 화가는 델프트 화약 창고에서 폭발로 사망했습니다. 파브리티우스는 다양한 그림에 도전했지만 단 12점의 그림만을 남겼습니다. 사후에 그는 '완전히' 잊혀졌고 19세기 중반에야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 테오필 토레(Théophile Thoré)에 의해 '재발견'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의 그림은 주로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오해되어 사고 팔렸으며, 때로는 가짜 렘브란트 서명이 있기도 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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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 East Storehouse
- 5월 31일 개관
런던에 새로운 미술관이 탄생했습니다. 런던 센트럴에서 약 1시간 정도는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스트랫퍼드 인근의 퀸 엘리자베스 공원 근처에 생긴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이스트 스토어하우스입니다. 이 공원은 런던 외곽의 낙후된 지역을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계기로 재개발하면서 만들어진 신도시의 허파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의 미디어센터로 쓰인 초대형 건물은 막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V&A의 수장고로 변신했습니다. 이 공개형 수장고는 패션, 건축, 디자인 등 영국의 모든 것을 수집하는 미술관의 보물창고로 쓰이는 동시에, 아주 힙한 미술관으로도 새 역할을 맡았습니다. 50만 개의 작품을 소장한 이곳의 가장 신선한 점은 마치 도서관처럼 2주전 소장품의 열람 신청을 하면, 도서관처럼 이 소장품을 개인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한겁니다. 개관 첫날 저녁 찾은 이곳은 정말 힙스터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교통편은 조금 불편하지만, 새로운 런던의 명소가 될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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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갤러리 위크가 시작해서 새로운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리버풀 비엔날레를 만나러 떠납니다. 곧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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