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도시 리버풀은 영국을 대표하는 비엔날레를 여는 곳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살지 않았다면 올 가능성이 희박했을 법한 행사입니다. 하지만 저는 비엔날레를 핑계 삼아서, 이 특색있는 도시의 미술관과 비엔날레를 마음껏 즐기고 왔습니다. 갈매기와 바다, 수변이 잘 조성된 도시가 맞아주더군요. 힘든 건 종잡을 수 없는 날씨뿐이었습니다.
리버풀 비엔날레는 1998년에 시작된 영국 유일의 비엔날레입니다. 올해는 6월 7일부터 9월 14일까지 14주 동안 축제를 엽니다. 5일과 6일 이틀간 프리뷰 기간은 예술가와 미술인들이 초대되는 이벤트 열리는 기간이라 저는 5일에 리버풀로 떠났습니다. '베드록(BEDROCK)'을 주제로 열리는 13번째 행사입니다. 27년간 560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비엔날레의 특징은 2년에 한 번 열리는 이 행사를 통해 미술을 통한 도시 재생이라는 사회실험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 지역권은 영국의 두번째로 큰 대도시권역입니다. 우리들은 이 도시를 축구와 비틀스로만 기억하지만,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였고 중공업의 메카였죠. 공장이 사라지면서 쇠락한 이 지역은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는 곳이 됐습니다. 마치 미국의 러스트벨트처럼요.
20세기말 리버풀에서 탄생한 이 미술축제는 쇠락한 도시 곳곳에 공공미술을 영구히 설치했고, 조금씩 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테이트 리버풀에는 우고 론디노네의 아이코닉한 조각인 <리버풀 마운틴(Liverpool Mountain)>이 2018년 설치되어 명소가 됐습니다. 올해는 네이선 콜리의 조명 작품 <From Here>가 붉은 벽돌 건물인 펌프킨 하우스에 설치되기도 했죠. 수변을 따라 걸어가면 이미 도시의 풍경에 녹아있는 미술 작품들을 계속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안토니 곰리의 <Another Place>가 있습니다. 2005년 비엔날레에서 영구 설치된 아마도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 미술일겁니다. 곰리를 만나려고 차가운 비바람에도 저는 도심에서 약 1시간 거리의 수변으로 향했습니다.
기차를 갈아타고,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머지 강변의 크로스비 비치(Crosby Beach)에서는 '아이언 맨'들이 도열해 있었습니다. 17개의 서로 다른 주형으로 만든 100개의 사람의 실물 크기 주철 조각들은 모두 넓은 바다를 향해 서있었습니다. 250m 간격으로 배치된 조각들이 거의 3km의 바다를 메우고 있더군요. 사진에는 전혀 담기지 않는 엄청난 장관이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봅니다. 런던에서 기차로 3시간 남짓 달려서 도착한 리버풀 라임스테이션에 내리자마자 도서관과 워커 아트 미술관이 보였습니다. 이 곳을 시작으로 12곳에 설치된 전시 공간을 찾아 열심히 걸었습니다. 도심이 크질 않아 당일치기가 넉넉하게 가능했는데, 올해 테이트 리버풀이 리모델링 중이라, 전시 공간에서 빠진 탓에 규모가 줄어서 든 탓도 있었죠. 전시 장소로 미술관뿐아니라 도서관, 극장, 성당, 차이나타운, 심지어 신발 가게와 약국까지 활용하는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리버풀의 기반암을 뜻하는 'BEDROCK'이라는 주제는 예술가들이 이 도시의 지질학적 토대와 역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식민주의 제국 시절 많은 이민자들의 첫 기착지인 도시였고, 지금도 다양한 인종들의 유산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작가들은 기록보관소와 도서관, 시민 사회 등으로 들어가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 덕분에 도시 곳곳에는 장소의 의미를 잘 살린 '장소 특정적 작품(site-specific art)'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리버풀 중앙 도서관에서는 미국 작가 다윗 L 패트로스가 19세기 영국의 나일강 원정에 관한 이 도시의 문헌을 연구해 현재 남아있는 과거 유산을 재해석하는 시도를 하는 식이었죠. 워커 미술관에는 누르 비쇼티(Nour Bishouty)는 리버풀 태생의 18세기 예술가 조지 스텁스의 거대한 황소 그림 아래 가젤의 나무 조각을 배치하는 식으로 기존의 공간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전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리버풀 성당에 설치된 키프로스 작가 마리아 로이지두(Maria Loizidou)의 뜨개질 태피스트리 <나는 어디에 있나요?>였습니다. 강철을 그물처럼 엮어 만든 반투명한 거대한 태피스트리에는 성당 주변에 둥지를 튼 다양한 새들을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새들은 사람들을 물고서 훨훨 날아갑니다. 키프로스와 리버풀은 모두 이주민의 도시입니다. 자유와 이주, 기후 변화, 공존이라는 메세지를 그는 던지고 있었습니다.
갈매기의 존재감도 남달랐습니다. 영화관인 FACT 리버풀에서는 상가포르 작가 카라 친(Kara Chin)의 시끄러운 설치 작품이 시선을 강탈합니다. <황무지 지도그리기>는 19세기 중국에서 건너온 버들리아 화초라는 식물의 침습적 특징과 먹이가 준 바다를 떠나 도시에서 적응한 갈매기의 특징을 표현한 설치와 미디어 작품입니다. 갈매기의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고, 작품 아래에 서있으면 배설물같은 하얀색 덩어리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비엔날레 규모가 작아지긴했지만 개인적으로는 80~90년대생의 젊은 작가들의 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대부분의 작품이 신선하고 개성이 넘쳤습니다. 가는 곳마다 비엔날레는 도시의 역사와 시민들의 흔적을 미술을 통해서 도시에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비엔날레가 변화시키고 있는 이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공공미술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