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오늘이 런던행 비행기를 탔던 날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는지 돌아봤더니 16개국, 34개 도시, 115개의 미술관을 방문했다는 통계가 나오더군요. 물론 단순한 여행지를 제외한 미술관이 있는 도시만 꼽아본 겁니다. 아직도 소개할 미술관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저도 까마득합니다. 😅
미술관을 중심으로 여행을 떠나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우선 그 나라의 예술가를 먼저 만나고, 거리와 관광지를 걷게 됩니다. 저는 유럽에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눈이 좋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4K TV를 보는 것처럼 같은 눈으로 같은 도시를 보아도 더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 느낌이었죠. 경험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경험을 한겁니다. 가이드 투어를 해도, 역사책을 읽고 가도 그 나라의 예술을 알고 여행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2. 가장 아름다운 작은 미술관 베스트3
이번 코너는 제가 지난 한달동안 수십번을 받은 질문의 답입니다. '유럽에서 어느 미술관이 제일 좋았어?" 식상한 질문에 식상하게 답할 순 없어서, 제가 가장 놀랐던 세 곳을 꼽아봤습니다.
그동안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오르세 미술관 등 너무 유명한 미술관에 관해서는 소장품의 이야기를 별도로 소개를 하진 않았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조차도 관람객들이 상대적으로 한가한 전시실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소개했던 이유도 어디까지나 '잘 모르는 미술'에 주목해보자는 애초의 취지에서 비롯된 겁니다.
저는 한 곳이라도 더 잘 모르는 미술관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유럽에서 만난 미술관에 순위를 매길 순 없지만, 예상 못한 감동을 받았거나 기대보다도 훨씬 좋았던 공간들은 있었습니다.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엑상프로방스의 샤토 라 코스트였습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는 수식어가 있는 곳입니다.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바다와 호수를 품은 미술관, 각기 다른 형식의 5개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건축, 설립자가 30여년에 걸쳐 가꾼 28종의 나무가 자라는 공원, 50여명의 거장들이 함께한 조각 공원까지. 자연을 주인공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미술관으로 이 곳만한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 상설전과 특별전의 수준도 세계 최고 현대미술관 수준입니다. 코펜하겐에서 1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시골 미술관이 덴마크에서 방문객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런 특별한 매력 때문일겁니다.
길고 긴 레터를 썼으니, 더이상 소개할 필요는 없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미술관이었죠. 덕분에 헤이그라는 도시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게 된 미술관이었습니다. 비록 미술관의 시작은 식민지를 착취한 더러운 자본이었지만 이 미술관은 이 도시와 시민들이 소장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온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술관을 관람하고 바다까지 보고 온 저녁에 미술관이 보이는 호수에서 호수에 반사된 미술관의 야경을 다시 보면서, 좋은 미술관이 꼭 크고 많은 작품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샤토 라 코스트는 하종현의 전시를 보기 위해, 스위스-독일에서 곧장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까지 날아가 만난 사립미술관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자연에 환장하는 취향이 있는데요. 와이너리 곳곳에 점점이 박힌 미술을 만날 수 있는 샤토 라 코스트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프랭크 게리와 장 누벨, 안도 타다오, 렌조 피아노 등의 파빌리온이 있는 건축의 성지이기도 하고, 좋은 현대 미술 전시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이었죠. 폴 마티스, 리처스 세라, 루이즈 부르주아 등의 아이코닉한 작품을 모두 만나려면 몇시간도 부족합니다. 물론 남프랑스니 음식과 와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저는 무더위 때문에 힘들었지만, 무더위를 피해 봄이나 가을에 하루를 보내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