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다음주에 프리즈 서울이 열립니다. 9월 3일 저는 정신없이 코엑스를 뛰어다니고 있을 예정입니다.
1년 동안 랜선여행으로 유럽 미술관을 여행하신 분들도, 이번 기회에는 직접 아트페어를 방문해보시길 권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른 차원의 경험입니다. 제가 유럽에서 배운 교훈입니다.
오늘은 1년 동안 뉴스레터를 읽어온 구독자들을 위한 프리즈 서울 프리뷰를 준비했습니다. 그전에 잠시 셀프 홍보부터 잠시 하겠습니다.
53회 (2025. 8.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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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탐나는 현대미술>이 나오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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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도 아닌, 핫핑크도 아닌, 마젠타색에 가까운 레드. 시선을 강탈하는 붉은색 표지에는 미술품 경매장의 패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목과 표지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탐나는 현대미술>은 미술시장에서 탄생한 슈퍼스타 예술가들에 관한 이야기이거든요.
제가 계획적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에 관한 아이디어는 2022년 처음 얻었습니다. 그때 저는 '노예 12년'을 거쳐 미술 담당을 맡게 됐습니다. 10여년전부터 미술대학원에서 학위도 땄고, 미술 공부를 꾸준히 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쉽게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1년 간의 노조 전임 근무를 마치고 문화부로 복귀를 하며 미술을 담당하게 됐죠. 문화부 입성 12년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의욕이 너무 넘쳤습니다. 게다가 세계 미술시장에 10년에 한번쯤 찾아오는 대상승기의 초입이었죠. 상승기에는 언제나 스타가 탄생하고 드라마가 쓰입니다. 밤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이브닝 세일을 온라인으로 보면서 스타 탄생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신이 나서 기사를 쓰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기자의 일은 날마다 내일은 뭐쓸까, 모레는 뭐쓸까, 하루살이처럼 고민하는 게 일상입니다. 그런데 이 때는 너무 많은 스타가 탄생해서 하루하루 이를 소개하기도 부족할만큼 뉴스가 넘쳤습니다. 30대 젊은 작가들의 폭발적 인기로 '초현대미술(Ultra-Contemporary Art)'이란 시장이 새롭게 등장할만큼, 1년 남짓 불꽃처럼 시장은 활활 타올랐죠. 이 시대가 낳은 스타들을 신문에 지상중계하면서, 이 이야기를 꼭 책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런던에서의 1년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주어진 시간 같았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책'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현대 미술을 다룬 책은 팔리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서점에 쏟아지는 죽은 미술이 아닌, 살아 있는 미술을 다룬 책을 써보고 싶었숩나다. 제가 잘 아는 미술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슈퍼스타를 다룬 현대미술의 올스타전을 열어보고 싶었달까요.
사실 책에 포함된 작가의 리스트는 역대급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머리속에는 이 작가를 포함해 더 많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처럼 정말 해체, 죽음, 부활을 몇번이나 거쳐 출간 1주 전에야 겨우 확정이 됐을 정도입니다.
이게 다 도판을 정식으로 실어보겠다는 엄청난 무리수에서 비롯된 건데, 결과적으로는 22명의 작가의 도판을 모두 정식 계약과 구매를 통해 넣었고, 이 과정에서 책의 절반을 번역하고 200통이 넘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작가의 수정을 반영하고 심지어 출고된 이후에는 뉴욕과 런던, LA로 책을 배송까지 해야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살아 있는 작가의 책'은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을 정도입니다.
결국 아드리안 게니, 조너스 우드, 매튜 웡, 플로라 유크노비치, 아모아코 보아포, 엠마 웹스터, 니콜라스 파티, 헤르난 바스, 캐럴라인 워커, 루시 불 등 30-40대 초현대미술 작가, 그리고 게르하르트 리히터, 데이비드 호크니, 조안 미첼, 루이즈 부르주아, 요시토모 나라, 론 뮤익, 우고 론디노네, 필립 거스턴, 스콧 칸 등 20세기 거장들의 예술론을 담은 책이 완성됐습니다.
리스트에 익숙한 이름이 많을 겁니다. 볼드체는 1년 동안 제가 유럽에서 전시를 보고 소개했던 작가들의 이름입니다. 덕분에 구독자들께 이 책은 한 권의 풋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반 고흐나 다빈치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에도 극적이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들 중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극적인 데뷔와 스타탄생의 드라마를 쓴 이들도 있고,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고통스러운 길을 걸었던 작가도 있었습니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고고한 미술사에 반격을 하며 여성미술의 전성시대를 연 작가도 있고, 시대적인 핍박 속에서도 당당하게 일가를 이룬 작가도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작품을 본다면 현대미술이 어렵지만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이들의 인생을 전기처럼 연대기로 풀어내지도 않았습니다. 미술시장의 지배자가 되기까지 이들의 예술이 어떤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는지, 왜 대중이 사랑하는지를 저만의 관점과 키워드로 풀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길지 않은 글로 그들의 예술을 갈무리하면서 저에게는 너무 재미있고, 정말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는 얼마나 쉽게 읽힐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어렵거나 낯설까봐 걱정도 많았습니다. 17년 동안 글을 써서 먹고 살았지만, 이번만큼 그 반응이 예측이 되지 않고 독자의 반응이 궁금한 글은 처음입니다.
시기적으로는 론 뮤익의 전시에 50만명, 프리즈 서울에 8만명이 찾는 어쩌다보니 미술 강국(?)이 되어 가고 있는 한국에 꼭 필요한 책을 늦지 않게 냈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유럽에서도 이런 젊은 미술을 다룬 책은 본 적이 없고, 한국에도 앞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큰 기대를 할 순 없지만, 오래 살아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면 (안물안궁이겠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미술 작가, 지난 5년간 가장 그림값이 많이 오른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떠오르는 작가, 검은 클림트라 불리는 작가, 페이스북 시대의 반 고흐라 불리는 작가, 여성의 뒷모습을 꾸준히 그리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9월에는 한국에서도 호암미술관(루이즈 부르주아), 우양미술관(아모아코 보아포), 국제갤러리(루이즈 부르주아), 글래드스톤(우고 론디노네)에서 이 책의 작가들이 여는 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미술의 가을에 뛰어드실 분들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술기자들이 과로로 쓰러지기 딱 좋은 9월 첫주만 지나가면 책을 열심히 알려볼 생각입니다. 이런저런 유튜브 출연이나 북토크도 마련될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편지의 구독자들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직접 뵙게 될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세계 미술시장 전망 🚩유럽 미술관 여행 이야기 🚩세계의 아트페어 이야기 🚩프리즈 서울 리뷰 등의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가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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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4’ ©Friez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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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4회 프리즈 서울은 28개국에서 120여개 갤러리가 참여합니다. 매년 120개의 숫자를 꽉꽉 채우고 있는데요. 사실 불경기로 해외 화랑의 참여가 줄면서 아쉽게도 미술관급 작가의 참여는 확연히 줄어든 게 눈에 띕니다.
프리즈 서울은 9월 3일 개막을 1주일 앞둔 시점이지만 아직 출품작을 공개하지 않은 갤러리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뉴스레터를 꾸준히 읽어왔고, 책도 읽었거나 읽으실(?) 분들을 위해서 부족한 정보를 쥐어짜 동선을 만들어봤습니다.
1. 하우저&워스 (A25)
하우저&워스는 캐시 조세포위츠를 중심으로 제프리 깁슨, 에이버리 싱어, 마크 브래드포드 등을 선보입니다. 한국의 이불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고요. 책에 소개된 작가 중 루이즈 부르주아와 조지 콘도도 걸립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평면과 조각 작품이 출품됩니다. 콘도의 신작들은 색채 사용이 점점 더 대담해지는 것 같습니다.
두 작가 모두 이번 페어 최고가 거래가 기대되는 작품들 입니다. <탐나는 현대미술>의 작가 둘을 만나는 유일한 부스니 놓치지 마시길.
"기쁨과 공포, 미와 추, 분열과 화합이 모두 살아서 넘실대는 그의 캔버스에 많은 이가 매혹되는 건 아마도 우리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조지 콘도는 다양한 감정의 불협화음을 화폭에 담는 화가입니다."
"예술가의 삶은 그 자체로 예술적 증언이 되기도 합니다. 거미로 상징되는 사랑의 조각은 루이즈 부르주아의 예술을 상징하는 키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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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페로탕 (A1)
"엠마 웹스터는 우리 눈에 보이고 사진으로 포착되는 풍경이 아닌,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통해 창조된 풍경 이미지를 화폭에 옮겨 그리는 작가입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몽환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그 특징이죠. 인공 지능 시대의 풍경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로탕에서는 반가운 엠마 웹스터의 풍경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웹스터의 작년 파리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연상시키는 2025년 신작이 한국에 옵니다. 노을로 물든 숲의 풍경은 어딘가 으스스합니다. <Jurassic>과 <Manzanita Ridge> 두 점이 묘사하고 있는 계절은 저의 눈에는 가을과 겨울처럼 보입니다.
페로탕과 함께 가고시안 갤러리도 무라카미 다카시의 나란히 솔로 코너를 만들어 전시를 하는데요. 두 부스가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아트페어 기간 중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페로탕 서울에서는 이즈미 가토의 귀여운 그림과 돌탑처럼 쌓은 조각도 만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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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만 머핀 (C11)
"유미주의(唯美主義)를 외친 나르시시스트였던 오스카 와일드가 그림을 그린다면, 아마도 헤르난 바스의 작품과 닮아 있을 것 같습니다. 호수에 비친 자신의 미모에 도취된 나르키소스처럼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나른한 표정의 미소년들은 관람객을 매혹시킵니다."
한국에서의 전시가 깊은 인상을 주었나 봅니다. 헤르난 바스는 올해 초 서울의 수산시장 방문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을 소개합니다. 리만 머핀은 해외 갤러리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갤러리입니다. 올해는 김윤신, 안나 박, 서도호, 성능경을 선보입니다.
서도호는 런던 전시에서 만난 평면 작업과 닮은 〈Myselves〉(2014)를 비롯한 작가의 실 드로잉 연작을 전시합니다. 김윤신의 자연의 원시적인 생명력을 머금은 색감이 인상적인 회화와 조각도 볼 수 있죠. 두터운 질감과 유려한 형태가 어우러진 회화 〈내 영혼의 노래 2010-251〉(2010)은 기억과 성장, 변화를 통해 형성된 정서적 풍경을 담아냈습니다.
〈현장: 어려워〉(1985)는 언론 사진에 기호와 개인적 개입을 더해 미디어 서사의 구성적 성격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올해 3월 리만 머핀에 합류한 한국계 미국 작가 안나 박은 목탄과 잉크로 제작한 강렬한 드로잉 〈Brighter Days〉(2025)을 통해 동시대 시각문화와 이상화된 미의식을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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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고틀리의 <Expanding> ©페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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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페이스 (A10)
"아오모리현은 겨울엔 폭설로 설국이 되는 곳인데, 독일의 잿빛 하늘을 보며 그는 고향의 하늘이 떠올랐을 겁니다. 말도 잘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그는 맹목적으로 그림에 매달립니다. 우울과 싸우던 그에게 떠오른 건 유년 시절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라는 어린 아이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페이스 갤러리에서는 나라 요시토모의 판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진은 구하지 못했으니, 현장에서 만나보시길.
아돌프 고틀리브의 <Expanding>(1962)도 궁금한 작품입니다. 미국의 시대를 살고 있는 덕분인지, 미술시장에서는 추상표현주의의 주가가 정말 대단합니다. 한국에 오는 이 작품은 색채의 배합이 아주 아름답네요. 그의 Burst 연작은 1956년에 시작해 남은 생애 동안 계속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유영국의 <물>(1979)은 흔히 접하지 못했던 물방울을 직접 묘사한 도상입니다. 1977년 대수술을 받은 후, 유영국은 초기 작업의 대부분을 정의했던 딱딱한 추상화에서 벗어나 더 부드러운 윤곽과 땅, 바다, 하늘에 대한 더 읽기 쉬운 도상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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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콘도 <Thinking and Smiling> ©스프루스 마거스 |
갈라-포라스 김 <우리를 묶는 장소로부터의 최종 탈출> ©스프루스 마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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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프루스 마거스 (B24)
스프루스 마거스는 베를린과 런던의 갤러리를 방문했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 갤러리입니다. 조지 콘도의 또 다른 신작 <Thinking and Smiling>이 걸릴 예정이니 두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추천하는 작가는 LA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 갈라-포라스 김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를 묶는 장소로부터의 최종 탈출>(2025)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작가가 국립 광주 박물관에 소장된 2천년 된 유해의 사후 세계를 고찰한 작업입니다. 작품과 나란히 전시되는 박물관 관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유해에 관한 권한이 언제 끝나는지 질문하죠. 안료가 소용돌이치는 이 추상적 이미지는 수천년 만에 비로소 자유를 얻게된 망자의 대안적인 마지막 안식처를 암시합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아름다운 작품이 실은 박물관 뒤에 숨은 식민지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인 작업입니다. 송현숙 작가의 작품도 나란히 소개되니 놓치지 마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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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콘도 <Thinking and Smiling> ©에스더 쉬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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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에스더 쉬퍼 (B14)
에스더 쉬퍼는 언제나 아트페어의 '씬스틸러'입니다. 이 상업적인 행사에서 마치 비즈니스를 포기한 것처럼 호기롭게 퍼포먼스를 선보이거나, 실험적인 전시를 거침없이 선보이기로 정평이 난 갤러리거든요.
"론디노네의 작품 소재는 대부분 자연입니다. 무지개, 올리브나무, 태양, 물고 기, 새, 말, 번개 같은 것들이죠. 이를 표현하는데 있어 돌은 작가에게 매우 특별 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대표작에는 하나같이 애니미즘Animism적인 성 격이 짙게 묻어 있습니다."
우고 론디노네의 <번개>가 프리즈 서울에 출품됩니다. 이 형광색의 번개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의 벼락부터 현대 문명의 산업적 요소, 그리고 자연의 힘과 인공이 결합된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이밖에도 올해 6월 아트 바젤 언리미티드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전현선의 작업과 이수경, 아니카 이의 신작도 만날 수 있습니다. 에스더 쉬퍼도 한국 미술에 꽤 진심인 화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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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풍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호암 미술관에 루이즈 부르주아를 만나러 갑니다. 정말 기대가 큽니다. 곧 다시 만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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