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서울에서 뉴스 레터를 쓰는게 예상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화요일 밤마다 야근을 하는 심정으로 책상에 앉고 있습니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다가 독일과 북유럽에서는 현대 미술관을 주로 찾았기 때문에 글로 옮기는 것도, 사진을 고르는 것도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
이번에는 지난주에 이어 뮌헨의 다른 미술관을 만나봅니다. 뮌헨 중심부에는 여러 미술관이 마을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알테 피나코텍의 맞은편에는 현대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공장인가 싶을 정도로 듯한 거대한 크기가 놀라운 곳이었습니다.
56회 (2025. 9.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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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에서는 아침부터 크로스핏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보였다.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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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한 지붕 아래 네 개의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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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 피나코텍과 정원의 조각들. ©Alte Pinakoth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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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현대미술관의 상설 전시관. 정말로 한적한 공간이었다.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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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은 독일답게 엄격하게 세 개의 시대로 구분된 미술관 체계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알테 피나코텍-노이에 피나코텍-피나코텍 데어 모던이 각 시대를 담당하고 있었죠. 안타깝게도 근대 미술관 역할을 맡은 노이에 피나코텍(Neue Pinakothek)은 리모델링 공사중이라 4년간 폐쇄된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19세기 예술 셀렉션은 알테 피나코텍의 동쪽 날개 1층과 콜렉션(Schack Collection)으로 대피 중이었고요.
한 시대를 건너뛰고 곧장 현대미술관을 만나게 된 이유입니다. 뮌헨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은 정말 건물 크기가 거대했습니다. 직사각형의 구조뿐만 아니라 높은 층고와 넓은 실내에 놀라 입을 벌리고 들어섰는데요. 큰 규모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 지붕 아래 있는 네 개의 박물관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디자이너 및 예술가의 전시회를 동시에 선보이는 공간이었습니다.
무더위에도 이른 시간부터 크로스핏을 하며 땀흘리는 젊은 친구들이 보여, 뮌헨 시민들은 운동에 정말 진심이구나 싶었는데요. 반대로 미술관은 관람객이 많지 않아서 한산했습니다. 무더위엔 시원한 미술관이 국룰아니던가요.
네 개의 박물관은 각각 인쇄물&드로잉(Prints & Drawings), 건축, 디자인, 미술 박물관입니다. 독일의 디자인과 건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넓은 상설 전시를 열고 있었고, 1층 미술 전시장에서는 특별전, 2층에서는 상설 전시를 열고 있었습니다.
바이에른 주립 회화 컬렉션의 현대 미술 컬렉션(Sammlung Moderne Kunst)은 노이에 피나코텍 컬렉션과 정확하게 1900년을 경계로 삼아, 그 이후에 나온 예술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총 20,000점 이상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회화, 조각, 사진 및 뉴미디어 분야에서 명성이 높습니다.
컬렉션은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운동부터 현재까지를 포함하며 이들 예술이 기술적 낙관주의, 진보에 대한 숭배, 위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며 발전해온 과정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독일답게 전쟁과 독재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전달하는 데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표현주의, 입체파와 미래파 등 모더니즘 컬렉션이 훌륭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독일 화가 막스 베크만을 만나고, 동시대 거장들까지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죠. 특히 게르하르트 리히터, 게오르그 바첼리츠 등 익숙한 거장들의 낯선 초기작을 잔뜩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 설치된 존 체임벌린의 종이처럼 구겨진 철을 사용해 만든 조각도 산업 도시 뮌헨에 잘 어울렸습니다.
제가 찾은 6월에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요. <1점의 그림과 81점의 드로잉이>라는 제목 그대로 1점의 회화와 81점의 드로잉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스트립 페인팅>과 나란히 걸린 작은 종이를 통해 낯선 노화가의 다양한 드로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그의 예술을 쫓아다녔던 저에게도 처음 보는 낯선 작품들이었습니다. 작가의 드로잉에는 불안과 변덕이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재미있는 건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에디션 작품 <Schädel(두개골)>가 걸려 있는 점이었습니다. 이 기성품은 어울리지 않는 불길한 존재였죠. 농담 같기도 하고, 도발 같기도 했습니다. 예술의 촉매이자, 그 자체로 완성된 예술이기도 한 드로잉의 의미를 거장의 작업실을 공개하며 다시금 질문하는 전시였습니다. 뮌헨에서도 리히터의 존재감은 강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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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바첼리츠<Orangenesser IV> ©Pinakothek der Moderne |
피터 도이그의 2004년작 <메트로폴리탄>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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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피난처에서 만난 독일의 국민 화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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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recht Dürer <Self-Portrait with Fur-Trimmed Robe>, 1500 ©Alte Pinakoth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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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의 둘째날은 계획과 달리 촉박한 시간만 주어진 날이었습니다. 아트 바젤 관람부터 시작된 스위스와 독일을 여행하는 약 열흘의 여정은 뮌헨에서 끝이날 계획이었습니다. 런던행 비행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남프랑스로 가는 일정을 추가하면서 뮌헨에서의 1박2일은 무척 빠듯하게 시간을 쪼개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제가 고민 했던 다른 선택지는 시립미술관인 렌바흐하우스였습니다.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를 비롯한 청기사파 화가들의 보금자리로 유명한 곳이죠. 규모가 꽤 컸고 이른 오후까지 짦은 시간 동안 현대미술관과 함께 이 곳을 관람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곳을 포기하고 뮤지엄 지구에 위치해 있지는 않았지만, 규모가 작은 셱 컬렉션을 가기로 마음을 먹은 건 현실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현대미술관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잠룽 셰크(Sammlung Schack)은 은행 건물인가 싶어 미술관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규모가 작은 미술관이었습니다. 약 150년 전 아돌프 프리드리히 폰 셰크(Adolf Friedrich von Schack) 백작이 세운 미술관에 근대 걸작들이 피난을 와서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미술관은 홀로 방과 방을 이동할때마다 나무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신경이 쓰일만큼 조용하고, 관람객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독일의 근대 국민 화가들을 다채롭게 소장하고 있었고 건물도 아름다웠지만, 뮤지엄 지구에서도 느낀 것처럼 뮌헨에서는 미술관 여행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구나 싶더군요.
미술관의 작은 크기 때문에 엄선된 19세기 회화 및 조각의 주요 작품을 전시 중인 이 곳에서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미술품 수집가로서 셰크는 과소평가되고 젊고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후원하고 구매한 예술가 중에는 사실주의의 승리로 인해 무시 당했던 모리츠 폰 슈빈트와 현대 미술 시장이 무시했던 젊은 화가 아놀드 뵈클린, 안셀름 포이어바흐, 한스 폰 마레스가 있었습니다. 셰크는 당시의 프랑스 예술에 익숙하고 외젠느 들라크루아를 존경했지만 독일어를 사용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만 구매한 애국자였습니다.
1876년 셰크는 자신의 컬렉션을 독일 황제에게 물려주었고 훗날 이 미술관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게 됩니다. 덕분에 노이에 피나코테의 주인공인 칼 스피츠베크, 모리츠 폰 슈빈트, 칼 로트만, 아놀드 뵈클린, 안셀름 포이어바흐 등 19세기 독일 국민화가들은 이 미술관 컬렉션과 조화롭게 어울려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셰크의 시대에 그토록 인기 있었던 풍속화가 거의 없다는 점도 놀랍고요. 눈이 밝은 컬렉터가 얼마나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공간 같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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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von Lenbach <Shepherd Boy>, 1860 ©Sammlung Scha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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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elm Feuerbach <Paolo und Francesca>, 1864 ©Sammlung Schack |
Arnold Böcklin <Villa am Meer II>, 1865 ©Sammlung Scha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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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술관은 무척 문학적인 공간입니다. 뵈클린과 포이어바흐의 그림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과 신화뿐만 아니라 단테와 페트라르크, 괴테에 이르기까지 후기 문인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삼은 주제가 많습니다. 심지어 슈빈트의 그림은 18세기 후반에 재발견되어 고전 고대의 대안으로 불러일으킨 중세 독일의 무용담과 전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셰크는 특히 동시대 사람들의 작품과 함께 16세기와 17세기의 주요 그림, 특히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와 같은 베네치아 예술가들의 사본을 수집했습니다. 복제화가 중에는 나중에 독일 최고의 초상화 화가가 된 젊은 프란츠 폰 렌바흐(Franz von Lenbach)가 있었습니다.
렌바흐의 작은 그림 <양치는 소년(Shepherd Boy)>(1860) 당대 최고의 인기 작품입니다. 자연을 그리는 사실주의로 경력을 시작한 렌바흐는 알테 피나코텍에서 무리요의 어린이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는 세비야의 거리 아이들을 그린 무리요의 그림 속 더러운 발과 같은 자연주의적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죠.
자연 풍경은 남부 독일의 농촌을 그렸죠. 복잡한 배경 대신 단순한 구성과 빛의 묘사만 남긴 묘사는 내면의 평온함을 강조합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 일상을 멈추고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 그림은 독일 19세기 목가적 예술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풀밭에 누운 소년의 평온한 그림을 셰크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태양의 눈부신 빛과 뜨거운 열기를 보고 느끼는 것 같다. 신성한 게으름 속에서 몸을 쭉 뻗은 소년처럼, 우리는 한낮의 햇살에 의해 기꺼이 몸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무리요(Murillo)조차도 자신의 방식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거의 완성하지 못했다.'
미술관에서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안젤름 포이어바흐(Anselm Feuerbach)의 사실주의 회화 <파울로와 프란체스카>(1864)는 영국 빅토리아 미술을 연상케하더군요. 사실적이면서도 장식적인 화풍, 그리고 문학적 소재를 묘사하는 섬세한 표현력까지 닮아 보였습니다. 대륙과 섬나라의 권력자와 시민들은 비록 물리적 거리는 멀었지만,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공통된 취향을 공유했던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공통된 관심은 셰크와 포이어바흐가 끈끈한 관계를 맺게 만들었죠. 이 그림의 주제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간음으로 지옥에 떨어진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을 포이어바흐는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베를린과 스위스에서 실컷 만났던 아르놀트 뵈클린의 작품도 여러점 만날 수 있는 미술관입니다. <죽음의 섬>의 또 다른 버전을 만날 순 없지만, 이 작품을 연상시키는 <바다 옆 빌라(Villa am Meer II)>(1865)가 있었습니다. 시기적으로 <죽음의 섬>에 10여년 이나 앞서 그렸음을 알 수 있죠.
검은 옷을 입은 그림 속 여성이 누구인지, 그녀가 애도하는 이유도 모릅니다. 뵈클린은 그녀가 '오래된 가족의 마지막 후손'일 수도 있다고 적었습니다. 상징주의의 특징인 상실감, 우울함이 가득한 이 그림은 지나간 시절이나 남쪽을 향한 동경을 드러낸 그림으로 오랫동안 명성을 얻었습니다. 19세기를 상징하는 이 그림으로 인해 훗날 <죽음의 섬>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그림을 보는 모든 이들은 즉각적으로 알게 됩니다. 여러모로 세기의 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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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말로 낯선 나라와 낯선 미술관으로 가보겠습니다.
저도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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