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기로운 미술여행입니다.
3주만에 런던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프리즈 위크'가 시작됐습니다. 10월 9일 프리즈 런던 개막일에는 수십여개의 대형전시가 일제히 개막합니다. 눈치껏 먼저 선보인 전시도 있습니다. 이 전시 하나만을 위해서 런던에 와도 좋을법한 전시 몇 개를 미리 만나봤습니다.
금주에는 10월 열리는 런던의 주요 전시 일정부터 정리해 알려드립니다. 런던에 오는 미술인 들에게 '입소문'과 '공유'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6회 (2024.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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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팔가 광장의 네번째 좌대 커미션 작품으로 테레사 마골레스의 'Mil Veces un Instante(A Thousand Times in an Instant)'가 설치됐습니다. ⓒJames O Jenki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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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금 축제 준비로 바쁩니다. 프리즈 런던은 10월 9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3일까지 이어집니다. 40여개국에서 270개 갤러리가 모이고, 프리즈 본 전시와 마스터스를 잇는 공원에는 조각 전시가 열립니다.
프리즈 개막일인 9일 밤에는 전시 오프닝이 몰려있어 온 도시가 파티를 하느라 밤을 지샐 겁니다. 세계적인 화랑과 미술관의 주요 전시만 정리해봤는데도 30여개 정도가 눈에 띕니다. 미술관 전시로는 반 고흐와 프란시스 베이컨이 가장 기대됩니다.
런던에 오면 꼭 가야할 영국 화랑으로 저는 빅토리아 미로, 화이트큐브를 꼽습니다. 미술관 규모의 초대형 전시를 열거든요. 두 곳은 일찌감치 전시를 개막했습니다. 올해 빅토리아 미로는 쿠사마 야요이 전시를 일찌감치 열었는데요. 현재는 모든 티켓이 '솔드 아웃'입니다. 매주 월요일 정오에 취소 티켓이 매주 풀리는데, 그걸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런던에 사는 저조차도 언제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죠.
올해 런던 프리즈 위크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미술'입니다. 아트페어에도 많은 한국 작가와 화랑들이 참여를 하는데, 장외전이 더 뜨겁습니다. 테이트 모던 터빈홀에 입성하는 이미래와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서베이전시를 여는 양혜규는 현지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조민석의 파빌리온 전시는 진행중이고, 정금형은 런던의 가장 힙한 미술관에서 막 전시를 개막했습니다. 이은실, 서용선의 개인전도 차례로 열립니다. 런던의 가장 화려한 화랑 중 하나인 타데우스 로팍에서는 징희민이 개인전을 엽니다. 다음주까지 모두 둘러볼 예정입니다.
메가화랑의 전시 중에는 가고시안이 힘을 준 것 같습니다. 스타 작가인 조나스 우드와 안나 위얀트의 전시가 나란히 열립니다.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도 10월 3일부터 메이저 경매의 프리뷰 전시를 엽니다.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가장 화려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는 메이저 경매사들의 전시입니다.
9월 29일부터 3회째를 맞는 런던 조각 위크도 시작했습니다. 리버풀 스트리트 역 주변 빌딩 숲에 다양한 조각이 공공미술로 설치됐습니다. 쿠사마 야요이의 초대형 공공미술 작품이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 역 앞에 영구 설치됐습니다. 길이만 100m에 달한다고 하네요. 17명의 작가 중에 올해는 줄리안 오피도 <Charles. Jiwon. Nethaneel. Elena.>로 참여했는데요. 아이코닉한 그의 인물 조각이 어딘가 낯이 익습니다. 국제갤러리의 찰스 대표를 비롯해 한국인들의 얼굴이 새겨졌네요. 이 화려한 축제를 빠짐없이 즐기려면 1달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이번주 찾아간 곳은 내셔널 갤러리입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네번째 좌대' 커미션 작품이 공개됐습니다. 멕시코 예술가 테레사 마골레스의 <Mil Veces un Instante(A Thousand Times in an Instant)>에는 트랜스젠더, 비이성애자 등 726명의 얼굴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며, 증오 범죄로 희생되는 이들을 기리는 의미를 담아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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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의 초대형 공공미술 작품이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 역 앞에 영구 설치됐다. ⓒYAYOI KUSA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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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오피 <Charles. Jiwon. Nethaneel. Elena.> ⓒSculpture in the City |
마야 로즈 에드워즈 <Kissing Gate> ⓒSculpture in th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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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focus : 세기의 전시에 런더너들은 오픈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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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는 200주년을 맞아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여는 중.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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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전시는 이미 모두 매진입니다. ⓒ내셔널 갤러리 |
입장 기대줄만 100미터입니다. 장난이 아니죠.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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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국의 가장 뜨거운 전시는 내셔널 갤러리의 <반 고흐:시인과 연인(Van Gogh: Poets and Lovers)>입니다. '세기의 전시'가 개막하자마자 런던 시민들은 오픈런을 하고 있습니다.
24파운드(4만3000원)의 티켓 가격에도 9월 14일 개막을 하자마자 한달치가 죄다 팔려나갔습니다. 지금은 10월 티켓은 모두 매진이고, 11월도 주말은 거의 다 팔린 상황입니다. 짧은 여행을 온 이들이 전시를 만날 방법은 매일 한정수량 판매되는 당일 입장 티켓입니다. 미술관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 이전에 줄을 서는 일부 행운아들만 잡을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인파를 피해보려 비오는 평일에 전시를 보러갔습니다. 노력이 무색하게 입장 대기줄은 100m가 넘더군요. 1시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최근 <해바라기>에 테러를 한 기후운동가들 덕에 모든 입장객의 보안 검색을 하고 있어, 입장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200주년을 맞아 미술관 간판 작품을 영국 전역으로 보내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베르메르 이야기를 들려드린 바 있죠. 또 하나의 가장 야심찬 기획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전시입니다.
내셔널 갤러리가 여는 첫 반 고흐 전시인데다, 올해는 미술관이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반 고흐의 의자>를 구입한지 100년을 맞는 해입니다. 반 고흐는 1873년 런던의 구필갤러리에서 일하며 10분 거리에 있는 내셔널갤러리를 찾곤 했습니다. 2세기만에 그를 기리는 전시가 열리는 셈입니다.
이를 위해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품 <해바라기>는 1935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밖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내셔널갤러리는 100년전 동생 테오에게서 또 다른 <해바라기>를 구입했죠. 작가의 작업실에 나란히 있던 1889년 이후 처음으로 두 해바라기가 만난 겁니다. 약 1년간 반복적으로 그린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현재 런던, 필라델피아, 암스테르담, 도쿄 등지에 5점이 남은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생 레미에서 이 그림을 그린 지 몇 달 후,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바라기 두 점을 삼면화처럼 전시할 계획을 스케치해 보냈습니다. 요람을 흔드는 어거스탱 룰랭 부인을 그린 <La Berceuse(The Lullaby)>와 함께였죠. 반 고흐의 바람처럼 이번 전시에는 세 점이 나란히 전시됐습니다. 15송이(필라델피아)와 12송이(런던)의 해바라기는 룰랭 부인의 양 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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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바라기와 어거스탱 룰랭 부인이 나란히 걸린 모습.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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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송이가 그려진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해바라기>. ⓒThe National Gallery |
15송이가 그려진 필리델피아 미술관의 <해바라기>. ⓒPhiladelphia Museum of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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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론 강 위의 별이 빛나는 밤>(1888, 오르세 미술관)과 <노란 집>(1888, 반 고흐 미술관)도 함께 합니다. 아마도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들일겁니다. 이번 전시에는 61점의 작품이 엄선됐습니다. 네덜란드 오텔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중요한 그림을 포함해 전세계 박물관 및 개인 소장품 50여 점이 공수됐습니다.
이번 전시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전 생애를 아우르는 대신 반 고흐의 아를과 프로방스의 생레미(1888~1890) 시대만을 조명합니다. 그의 마지막 2년은 정신적으로 가장 불안했고, 자살에 이르기 직전 폭풍처럼 작품을 쏟아낸 시기입니다. 이 시기 그가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섬세하게 비추는 최초의 전시입니다.
"이제부터 나는 색채주의자가 될거야. 평범한 방의 지루한 벽을 칠하는 대신, 나는 무한을 그릴거야." - 1888년 8월 18일 테오에게 쓴 편지
1888년 2월, 반 고흐는 파리를 떠나 아를로 이주하면서 파리에서의 우울을 치유하려했습니다. 전시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시인(외젠 보흐의 초상화)>(프랑스 오르세 미술관)과 <연인(밀리에 중위의 초상화)>(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라 이름 붙인 초상화에서 따왔습니다. 두 그림 사이에는 연인이 산책하는 공원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반 고흐가 가장 좋아하는 공원인 '시인의 정원'을 그린거죠. 반 고흐는 시인, 연인의 제목을 단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등 자신의 예술 세계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프랑스 남부에서 불과 2년만에 반 고흐는 시적 색채와 질감의 교향곡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시인, 작가,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아를과 생레미의 시기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시적 상상력과 낭만적인 사랑의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생 래미에서 그는 주로 병원 주변을 산책하며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이번 전시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림 속 주제는 나무와 꽃입니다. 특히 올리브나무가 정말 많습니다. 반 고흐의 만년은 식물을 탐구하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란 집의 방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꾸미고자 했습니다. 해바라기와 정물을 그렸고, 붓꽃과 장미를 그려 방에 걸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탐미주의자였던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6개의 방으로 나뉜 공간 중 해바라기의 노란방에만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었습니다. 비도 비할겸, 한동안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해봤습니다. 마치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처럼요.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작년 제가 읽은 최고의 책입니다.)
경탄과 경외와 매혹의 표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집니다. 반 고흐의 힘은 그림이나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는 이들조차도 빠져들게 만드는 점입니다. 그중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물론, 화려한 복장의 관광객도 많았습니다. 해바라기는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들이 마치 난생처음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감동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정말 아까울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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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바다를 건너 온 <론 강 위의 별이 빛나는 밤> ⓒThe National Gallery |
내셔널갤러리 최고 인기 작품 중 하나인 < A Wheatfield, with Cypresses> ⓒThe National Galle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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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에민의 선혈이 낭자한 이 그림에는 <사랑의 끝>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Whitecu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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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큐브 버몬지에서 열리고 있는 트레이시 에민의 전시(9월 19일~10월 10일)를 보고 왔습니다. 두 곳의 전시장을 운영하는 화이트 큐브는 이 공간에서는 미술관 규모의 대형 전시를 열며 런던의 대표 화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전시장 자체도 대단한 규모라서 볼만하지만 버몬지는 관광 명소인 타워 브리지와 가깝고 주변에 힙한 카페와 맛집들이 많습니다. 런던 서남쪽에 있지만, 관광을 오면 꼭 가볼만한 곳입니다. 전시 제목 <I followed you to the end>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당신을 끝까지 따라갔다, 는 선언은 사랑에 실패한 이의 회한처럼 들립니다.
1963년생 트레이시 에민은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입니다. 영 브리티시 아티스츠(YBAs)의 멤버였던 그가 벌써 60대라니 세월이 빠릅니다. 1999년 터너상을 수상한 이 작가의 대표작은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일겁니다. 제목 그대로 자신과 잠을 잔 모든 이들의 이름을 텐트에 붙여 전시한겁니다.
개념미술가, 설치미술가로 활발한 사회적 발언도 해온 이 '쎈 언니'가 이번 전시에는 사랑과 상실, 죽음, 부활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과 조각품을 선보였습니다. 스케치없이 충동적인 붓터치로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들의 향연입니다. 캔버스에는 벌거벗은 여성들이 피칠갑을 한 채 침대에 누워있거나, 두 연인이 엉켜있는 모습이 가득합니다. 작가의 가족인 고양이들이 곳곳에 등장해 금욕적인 보초병 역할을 합니다.
암투병에서 돌아온 작가는 개인 공간인 침대와 욕실을 마치 무덤처럼 그렸습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강렬하게 어우러지는 캔버스는 폭력성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는 베일처럼 얇고 투명합니다. 이 자전적인 그림들과 함께 한 켠에는 그녀를 학대한 연인들에게 손으로 쓴 글이 보입니다. "당신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몸이 죽은 것 같아서 섹스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체의 하반신을 거인처럼 세운 초대형 조각이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에는 나는 당신을 끝까지 따라갔다, 라는 제목이 붙어있죠. 각 전시장에는 초대형 회화들이 걸려있지만, 긴 복도에는 손바닥만한 소품들이 걸려 있는 것도 재미있는 연출입니다. 트레이시 에민은 네온 작품도 유명합니다. <I want my time with you>는 파리에서 런던으로 유로스타를 타고 올 때 내리게 되는 킹스크로스역에서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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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몬지의 명소가 된 화이트 큐브. ⓒWhitecube |
인체의 하반신을 거인 같은 크기로 조각해 세운 <I Followed You To The End>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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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크로스역에서 만날 수 있는 네온 설치 작품 <I Followed You To The End> ⓒflicke.com_Chris Beck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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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금형 <Under Construction>
- ICA 12월 15일까지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ICA)는 런던의 가장 힙한 미술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과 퍼포먼스, 설치, 미디어 등 실험적인 동시대 미술을 적극 소개하는 미술관이 함께 있는 공간입니다. 밤 11시까지 전시를 여는 날이 많고, 바에서는 자정까지도 칵테일을 팝니다. 퍼포먼스로 이름난 정금형의 개인전이 9월 말 개막했습니다. 전시장은 유골 발굴 현장 같았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분석하는 전시입니다. DIY 부품으로 만든 인체 모양의 의료용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완성인채로 전시됩니다. 모든 부품을 낱낱이 해부에 펼쳐놓았는데, 이유를 알려면 작가의 퍼포먼스와 영상을 통해 의미를 짐작해봐야합니다. 영상 속에서 작가는 로봇을 구동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1월까지 여러차례 퍼포먼스를 통해 작가는 이 로봇을 유지-보수하고, 로봇과 소통하는 모습을 작가 특유의 안무를 통해 보여줄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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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구동하는 정금형 작가의 영상.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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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다음주에는 프리즈 런던을 만납니다. 기대도 되고, 이 많은 전시를 다 소화시킬 수 있을지 걱정도 됩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구요.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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