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은 이제부터입니다. 미술관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조각 정원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방문객들은 페르낭 레제의 도자기, 폴 베리의 유쾌한 분수, 기념비적인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과 타키스의 악기 조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스 아르프, 에두아르 칠리다, 에릭 디트먼, 바바라 헵워스, 호안 미로의 계절마다 순환되며 선보여지는 곳이기도 하죠.
건물 곳곳에도 거장들의 흔적이 숨어 있습니다. 피에르 탈 코트(Pierre Tal-Coat)가 만든 외벽의 기념비적인 모자이크, 서점 벽에 설치된 마르크 샤갈의 모자이크 <연인>,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수영장 <물고기> 등도 건물에 새겨져있죠.
자코메티와 조르주 브라크는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두 예술가입니다.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작은 예배당을 놓치면 안됩니다. 가슴에 묻은 막내 아들에게 헌정된 생 베르나르 예배당(1964)에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의 12세기의 스페인 십자가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라울 우박(Raoul Ubac)의 부조 <십자가>와 조르주 브라크의 웅장한 스테인드글라스 <흰 새(Oiseau Blanc)>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는 브라크의 걸작들이 잔뜩 걸려 있지만 이 작은 예배당만큼 감동적인 곳은 없을 겁니다.
자코메티를 위한 안뜰(The Giacometti Courtyard)도 보입니다. 이곳에는 1959년에서 1960년 사이에 제작된 석고 조각 <걷는 남자 I과 II>, <서 있는 여자 I 과 II> 및 <큰 얼굴>이 서 있습니다. 이 작품은 뉴욕의 체이스 맨해튼 은행 광장을 위해 의뢰되었지만 해당 프로젝트가 좌초하면서 이 곳에 영구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자코메티는 꼼꼼하게 이 공간에 각 조각들의 위치를 직접 정했다고 합니다.
한국어로 읽으면 더 재미있는 이름인 <미로 미로(The Miró Labyrinth)>도 숨어 있습니다. 호안 미로가 도예가 친구 부자인 조셉 로렌스 아르티가스와 조안 가르디 아르티가스의 도움으로 완성한 곳이죠. 세라믹, 카라라 대리석, 철, 청동 및 콘크리트를 이용해 완성한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조각, 건축 및 자연을 하나로 결합해 말그대로 미궁을 만들어냈습니다. 벽에 그려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재현한 듯한 흰색 선을 따라 탐험하다보면 관람객들은 그리스 신화 속 동물과 대면하게 됩니다.
매그 재단은 피에르 보나르, 조르주 브라크, 알렉산더 칼더, 마크 샤갈, 자코메티, 바실리 칸딘스키, 바바라 헵워스, 페르낭 레제, 호안 미로, 피에르 탈 코트, 제르메인 리치에, 라울 우박 등 20세기 대표 작가들의 회화, 조각, 드로잉을 소장하고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큰 사립 미술 컬렉션 중 하나입니다. 이 컬렉션에는 크리스토, 엘스워스 켈리, 윌프레도 람, 조안 미첼, 타키스와 같은 전후 및 현대 예술가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봅니다. 통창으로 푸릇푸릇한 녹음이 보이는 지하 1층 상설 전시실에는 이 대표작가의 걸작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자코메티의 깡마른 꼬챙이 같은 조각 <고양이>와 <개>는 에매 매그가 특별히 좋아한 조각이라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보기 드문 도상이라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메인 전시실에는 죄다 벽화를 방불케 하는 대작들로 가득했습니다. 피에르 보나르의 <여름(L'été)>(1917)은 이 지중해 도시에 잘 어울리는 밝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었습니다. 대표작인 ‘테라스’ 연작 중 하나로 그림을 그리던 시기 보나르는 아내 마르트와 함께 프랑스 남부 빌라에서 머무르며 남프랑스의 찬란한 빛과 색채, 평온한 일상을 화폭에 담았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마르크 샤갈의 <인생>(1964)일겁니다. 프랑스 국보로도 지정된 이 작품은 대구 미술관 전시에 정부의 특별 허가를 받고 바다를 건너오기도 했었죠.
샤갈은 매그 부부의 예술에 대한 헌신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폭만 4m가 넘는 대작을 그렸습니다. 에펠탑이 보이는 푸른 도시 파리에서는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가 보이고, 샤갈이 평생 그려온 대표적인 도상이 이 그림에 모두 모여있습니다. 사랑과 기쁨, 고통과 환희 등 인생의 희로애락을 가감없이 표현된 대서사시 속에 상징들이 숨어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 모세의 십계라는 성경 모티브와 청어 장수 였던 아버지를 상징하는 청어와 유대교를 상징하는 랍비도 등장해 샤갈의 뿌리와 정체성을 드러내죠.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고난, 사랑, 연대, 꿈의 세계를 촘촘히 그려넣은 이 그림에는 정말로 인생이 녹아 있었습니다. 무중력의 세계를 비행하는 듯한 군상으로 가득한 그림은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도상으로 더할나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희노애락을 모두 이 미술관에 묻고 세상을 떠난 매그 부부의 삶과도 닮아보여서였습니다.
저는 체력적으로 꽤나 힘들었던 생폴드방스 여행을 마치고 니스로 돌아와 남유럽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니스에서 찾아갔던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은 기대했던 것 만큼 볼만한 미술관은 아니라 안타깝게도 실망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