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는 특별한 전시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나 허쉬 파울리 - 자유로움의 예술>(2025년 6월 19일~2026년 1월 11일)은 스웨덴의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여성 화가를 재조명하는 놀라운 전시였습니다. 한나 허쉬 파울리(Hanna Hirsch-Pauli, 1864~1940)의 본명은 한나 허쉬였습니다. 1887년에 화가 게오르그 파울리(Georg Pauli)와 결혼한 후 한나 파울리가 되었죠.
한나는 오랜 기간동안 저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20세기 북유럽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화가'로 불립니다. 그녀는 생전에 유명세를 얻었고 죽은 후에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 중 상당 수가 충분히 알려지진 않았고, 그녀의 삶도 깊이 연구되진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회고전이 선보인 60년에 걸친 130점의 작품은 큰 의미가 있었죠.
그녀는 다채로운 형식과 주제의 그림을 통해 삶, 사랑, 우정,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는 문제에 대해 논의합니다. 유대인 정체성, 반유대주의, 나치즘, 정치 및 사회적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 예술가였습니다.
한나는 중상류층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고, 스톡홀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의 교육을 받은 뒤 파리에서의 자유로운 수년간의 유학시기를 거쳤습니다. 전시는 결혼, 자녀양육, 세기말 전환기 스톡홀름에서 초상화 화가로서의 활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자신의 위치를 탐구하는 후기 자화상에 이르는 여정을 펼쳐보입니다. 한나는 세 아이를 낳았지만 결혼 후에도 활발하게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전시에는 자신의 가족을 그린 초상화가 정말 많았습니다.
1887년 한나는 파리에서 동고동락했던 핀란드 동료 예술가 베니 솔단(Venny Soldan)의 초상화를 가지고 파리 살롱에 입성했는데, 이 그림이 출세작이 됐습니다. 두 작가가 공유했던 작업실에 앉아 있는 솔단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논쟁적이었습니다.
여성 예술가를 잘 차려입은 복장이 아닌 일하는 모습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북유럽 여성들의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반영한 접근이었지만, 당대에는 파격적인 시도였던 거죠. 이 아이코닉한 솔단의 초상화는 이번 전시의 포스터로 미술관 외벽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전국민이 알정도로 유명한 대표작은 <아침 식사 시간(Breakfast Time)>(1877)입니다. 19세기 초여름 스웨덴의 전원으로 초대되어 아침 식사를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그림입니다. 그림 속에선 하녀가 손에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빛은 테이블 위의 식기와 흰색 식탁보 위로 반사되고 있죠. 인상파의 색채와 빛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탁월한 표현력으로 북유럽의 아침을 포착했습니다.
후기의 민족적 낭만주의(National Romanticism) 작품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신화 속 인물을 그린 <프린세스(The Princess)>(1896)의 주인공은 왕관을 쓴 어린 소녀입니다. 들판에 앉아 손에 데이지꽃을 든 공주의 표정은 모호하게 읽히죠. 물레를 든 공주를 바라보는 두 인물이 멀리 보입니다.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연상시키는 이 그림 속 소녀의 사연을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이 그림은 특별한 신화나 동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진 않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 속 공주의 이야기를 재해석해낸거죠. 그럼에도 소녀의 벽에 기대어 아래를 응시하는 자세는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기다림을 암시함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북유럽 미술에서 나타난 낭만주의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북유럽 많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웨덴도 전쟁과 침략에 맞서 싸운 긴 역사가 있었으니 민족적 낭만주의 예술이 관심을 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