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는 바다의 나라입니다. 마치 식물의 잎맥이나, 나무의 뿌리처럼 뻗어나온 구불구불한 해안선은 작은 국토 크기에도 길이가 무려 8,000km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죠. 덴마크의 사연이 많은 해안선에서는 예술이 탄생했습니다.
이 미술관에서는 덴마크 미술을 소개하는 <해변에서의 하루 : 1830~1910>(2025년 6월 20일~2026년 1월 11일)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20세기 바다를 바라보는 덴마크 예술가들의 시각을 조명하는 파노라마 전시였습니다. 이 그림들은 해변 생활의 주요 변화를 반영합니다. 해안에 떠밀려온 시신부터, 해변 소년들까지도요.
스카겐 화가들의 리더는 미카엘 앙케르(Michael Ancher)이었습니다. 너그러운 성격으로 유명했던 앙케르와 함께 작업을 하기 위해 화가들은 이 마을로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아내인 아나 앙케르도 어촌 마을의 이모저모를 다루기 어려운 도구였던 파스텔을 활용해 그림으로 남겼죠.
스카겐의 영웅적인 어부들과 그들의 바다에서의 극적인 경험을 사실주의 화풍을 그렸던 앙케르는 안나와 결혼 후 자연주의 양식을 결합하는 화풍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앙케르는 당시 덴마크 최고의 화가로 꼽히던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를 이곳으로 초청했죠. 크뢰위에르는 미술관 설립자인 폴린과 하인리히 히르슈스프룽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가 이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 이유입니다.
크뢰위에르는 14세에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만큼 신동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묘사력을 자랑했고, 당대 덴마크 사교계의 유명인사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내면은 불안정했죠. 명성이 정점에 이른 1893년 정신적 붕괴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가 앓았던 조울증은 작품 세계에도 투영됩니다. 밝고 화사한 낮의 풍경보다는, 멜랑콜리하고 신비로운 '푸른 시간(Blue Hour)'에 천착하게 된 이유입니다. 푸른 시간은 해가 진 직후나 해가 뜨기 직전, 하늘이 짙은 청색으로 물드는 짧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북위 57도에 위치한 스카겐의 여름밤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죠.
1892년 크뢰위에르의 집을 찾은 손님들은 해변으로 내려가 산책을 하며 여름 밤을 즐겼습니다. 이날 만난 푸른 시간의 바다를 그는 1909년 사망할 때까지 끈질기게 반복해 그립니다. 이런 이유에서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1893)은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북유럽 인상주의의 정점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림 속 두 여인은 공동체의 중심인물이었던 안나 앙케르와 그의 아내 마리 크뢰위에르(왼쪽)입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를 연상시키는 두 여인의 뒷모습은 관람객을 그들의 산책에 동참시키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대화나 내면에는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적 거리를 형성한다. 동시에 파도르 휩쓸려 지워질 발자국은 인생의 덧없음(Vanitas)을 상징하고 있죠.
그의 아내 마리는 '코펜하겐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불린 16세 연하의 여성 화가였죠. 남편의 재능과 명성에 짓눌려 그녀는 스스로 붓을 놓았습니다. 그녀는 "나는 우리의 대의를 믿고 싶지만, 때로는 너무나 극복하기 힘들다"며 자괴감을 토로했을 정도였죠. 작품 속에서 그녀는 화가가 아닌, 남편의 캔버스 위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피사체'로만 존재합니다.
그림 속 그녀의 시선은 먼 바다를 향하고 있는데요. 결혼 생활의 균열을 암시하듯 보입니다. 1902년, 그녀는 결국 스웨덴 작곡가 휴고 알벤(Hugo Alfvén)과 사랑에 빠져 크로이어를 떠나게 됩니다. 덴마크의 가장 성공한 화가의 삶은 이처럼 불행으로 가득했습니다.
반면 그녀와 팔짱을 낀 안나 앙케르는 여성 화가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남편과 예술적으로 동등한 관계를 유지한데다, 가사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빛과 색채의 세계를 구축했죠. 따라서 이 그림은 두 여성 예술가의 엇갈린 운명을 한 화면에 담아낸 이중 초상화이기도 합니다.
1899년 그린 동일한 구도의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 - 화가와 그의 아내>는 안타깝게도 관계의 파국을 어렴풋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고, 크로이어는 그녀가 떠나가지 못하도록 팔을 붙잡고 있는 듯한 불안정한 모습으로 묘사됐죠. 1893년의 푸른 시간에는 낭만이 남아있었으나, 1899년의 푸른 시간은 고립과 단절의 시간으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의 외부에도 놀라운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은 1895년, 뮌헨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독일의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 릴리 레만(Lilli Lehmann)에게 5,000 크로네에 판매됐습니다. 80년 가까이 대중을 만날 수 없어 꽁꽁 숨겨졌던 이 그림은 시끌벅적하게 돌아옵니다. 1978년, 레만의 후손들이 이 작품을 코펜하겐의 브룬 라스무센(Bruun Rasmussen) 경매에 내놓으면서 작품은 다시 세상에 나왔죠.
스카겐 뮤지엄은 이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기 위해 기금을 모았으나, 경매가는 예상가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결국 독일의 언론 재벌 악셀 슈프링거가 천문학적인 금액인 52만 크로네에 작품을 낙찰받았고 덴마크는 다시 국보급 작품을 독일에 넘겨주게 됩니다.
반전은 악셀 슈프링거 사후에 일어납니다. 1986년, 슈프링거의 미망인 프리데 슈프링거는 이 작품을 스카겐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기증의 이유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었죠. 1943년 10월, 덴마크 국민들이 보여준 유대인 구출 작전에 대한 보답이 명분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덴마크 내 유대인을 검거하려 하자, 덴마크 저항군과 시민들은 어선들을 동원해 7,200명 이상의 유대인을 중립국인 스웨덴으로 탈출시켰던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인류애적 사건에 대한 보답으로, 덴마크의 국보급 그림을 되돌려준 것이었죠. 이 그림이 덴마크와 독일의 역사적 화해를 상징하는 작품이 된 사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