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불행하게도 환율과 물가는 날마다 치솟고, 지갑 사정도 팍팍해졌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 참, 파산하기 딱 좋은 날이구만” 푸념을 하면서도 나는 여행을 이어나갔다. 지치지 않았던 비결은 일기나 편지를 쓰고 싶을 만큼 반갑고 감동적인 ‘만남’이 여행 내내 찾아왔기 때문이다."
24년 8월부터 1년간 매주 연재를 했던 '슬기로운 미술여행'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라는 마음에 드는 제목을 달고 나왔는데요. 검색을 하면 비슷한 제목의 책이 있으니 유의하셔야 합니다. 😎
50번의 편지는 원고지로 대략 2000매에 가까운 분량이었습니다. 런던에서 시작해 파리, 베니스, 로마를 거쳤고 남유럽과 동유럽, 다시 파리와 이탈리아 남부로 이어진 숨가빴던 여행 이야기는 각색이 필요했습니다. 현대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 아트페어 리뷰를 덜어내고, 날렵하게 다듬어 새롭게 스토리라인을 짰지요.
원고지 1000매 분량의 정보량이 무척 많은 책이지만 저는 기행 문학처럼 읽히고 싶었습니다. 개인적 이야기를 팔고 싶지 않아서, 기자가 됐던 저로서는 지금까지 쓴 가장 이질적인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뉴스 레터를 편집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왠지 다른 이야기 같을 겁니다. 계획도 대책도 없는 제가 18세기 영국 도련님들이 떠났던 그랜드 투어처럼 런던에서 시작해 로마에서 끝나는 여행을 무사히 끝마친 걸 마치 그대로 따라가는 듯 느껴질거예요.
스티비를 통한 뉴스레터 연재는 고충이 있었습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마다 런던대 SOAS 연구실에 나가 길게는 하루에 12시간씩 마감을 했고, 그 와중에 번번이 인터넷 연결은 늘 끊어졌습니다. 작성 줄이던 글은 날아가길 반복했고, 수정이 안되는 이메일에서는 오타와 틀린 숫자가 그대로 남은 원고가 발송되곤 했습니다. 편지는 우리 인생처럼, 한 번 쓴 걸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
책을 다듬는 과정이 있었기에 틀린 글을 고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8월에 마감을 했던 원고를 1번 전면 대개조를 했습니다. 마음산책에서는 요즘 트렌드와는 달리 경어체를 평어체로 고쳐달라고 했고, 2~3교 과정에서는 모든 도판과 작품의 숫자를 다시 확인하면서 팩트 체크를 할 수 있었지요.
아무튼 이 책은 유럽 여행을 떠나는 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겁니다.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들의 이야기이면서도, 가이드투어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현재의 업데이트된 이야기글을 싣고 있어서입니다.
50여개의 미술관을 다룬 덕분에 각 미술관마다 짤막한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지만, 놓쳐서는 안될 걸작에 숨은 '저만 아는' 이야기를 소개하려 노력했습니다. 유명한 미술관만이 아닌, 숨어 있는 미술관의 매력도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제 글을 다시 읽는게 부끄럽고 힘든 사람입니다. 정말 성실한 파트너였던 이동근 편집자가 책 소개에 인용을 해준 부분은 1년의 시간을 압축해 설명할 수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하염없이 긴 시간을 미술관 내부에서 보내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다시 찾은 미술관에서 새로운 그림을 발견했던 순간이 저의 지난 1년에서 가장 의미있는 순간이었으니까요.
"반복해서 미술관을 찾으면 작은 변화들이 눈에 띈다. 그림이 교체되거나, 전시 방식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번 찾을수록 더 좋은 곳이 미술관이다. 지난 방문에서는 미처 만나지 못했거나 특별하지 않았던 그림들이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길을 잃을수록 더 즐거웠다."
봄부터는 트레바리 북클럽을 시작하고, 아마도 유럽 미술 여행 이야기를 마친 이후 새로운 연재물도 시작할 생각입니다. 어려운 '현대미술'과 달리 이 책의 쉬운 미술 여행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편지를 꾸준히 읽어준 000명의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 작은 선물도 만나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