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사업가 빌헬름 한센(Wilhelm Hansen) 부의 개인 저택과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된 오드럽가드 미술관은 현재 덴마크 국영 미술관입니다. 시골 마을의 두 미술관은 모두 '코펜하겐 카드'를 통해 입장을 할 수 있더군요.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 만큼이나 이 두 미술관이 많은 관람객을 맞는 이유인 것 같았습니다.
덴마크의 '보험왕' 빌헬름 한센은 처음에는 덴마크 황금기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으나, 점차 프랑스 미술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 파리의 미술 시장이 침체되어 명작들이 헐값에 나왔을 때, 컨소시엄을 구성해 집중적으로 인상파 작품을 사들였죠. 이 덕분에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갱 등 거장들의 작품을 북유럽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1922년 덴마크를 강타한 금융 위기로 인해 한센은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됩니다. 빚을 갚기 위해 아끼던 컬렉션의 절반을 매각해야 했고, 이때 팔려나간 많은 작품이 현재 코펜하겐의 글립토테크 미술관으로 눈물의 이사를 가게 됩니다. 두 미술관이 인상주의 컬렉션으로 이름난 공교로운 사연이죠. 한센은 훗날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자 그는 다시 열정적으로 작품을 수집하여 지금의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빌헬름 한센이 1936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아내 헤니 한센이 저택과 컬렉션을 지켰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뜻을 이어 1951년 사망하면서 저택과 예술품 일체를 덴마크 국가에 기증했고, 1953년 오드룹가드는 국립 미술관으로 대중에게 문을 열게 되었죠. 결국 오드룹가드는 단순한 미술관을 넘어, 예술을 사랑했던 한 부부의 열정과 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의 신고전주의풍 저택에는 덴마크 미술이 전시 중이었고, 지하에 지어진 스노헤타(Snøhetta) 지하 전시관에서는 프랑스 미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년 다양한 특별 전시도 개최합니다. 2024년 겨울부터는 플로라 유크노비치가 이 곳에서 <숲 속으로>라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덴마크를 갈까 고민을 했지만, 겨울의 북유럽을 여행 갈 마음을 먹긴 쉽지 않았습니다.
스노헤타에서 만난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 인상주의 및 후기 인상주의 컬렉션은 가히 덴마크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변화하는 현대 세계를 매혹적이고 스냅샷처럼 반짝이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컬렉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대표작 중 하나는 베르트 모리조의 <녹색 옷을 입은 소녀>입니다. 이 그림은 모리조의 최애 모델 이자벨 랑베르의 모습을 싱그러운 녹윽과 대조되는 붉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렸죠. 빠르고 거친 붓터치로 묘사된 풀과 나무가 소녀를 감싸고 있어, 인물과 자연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덴마크의 사위, 폴 고갱의 작품도 꽤 많았습니다. 고갱의 작품 10여점을 소장한 인상주의 이후 그가 구했던 새로운 예술적 표현들을 보여줍니다. 덴마크의 문화와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폴 고갱의 넷째 아들 장 르네 고갱(1881~1961)의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도 만날 수 있습니다. 폴 고갱은 덴마크어를 쓰는 아들과 소통을 거의 하지 못했고 열 살 때 타히티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 만남을 가진 뒤엔 영영 해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의 기억조차 별로 남지 않았을테죠.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1904년, 폴 고갱이 사망한 직후 그는 아버지의 그림 세 점을 상속받았는데, 이를 즉시 팔았는데요. 그 돈으로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미술품을 감상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여행은 그의 길고도 험난한 예술가의 삶의 시작을 열어주었죠. 가족을 버리고 떠난 폴 고갱은 자녀에게 예술적 재능만 물려준 건 아닌가봅니다. 한센 부부는 장 르네 고갱의 재능을 알아보고 1927년 분수 조각 <인어와 인어 남자>를 의뢰했고, 유명한 장미 정원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1900년경 덴마크 미술을 다채롭게 소장한 저택에서는 프리츠 시베르크, 요하네스 라르센, 페터 한센, 베르타 베그만, 테오도르 필립센, 요아킴 스코브가르드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들은 모두 거친 붓놀림, 스케치 같은 기법, 밝은 색채 사용 등 서유럽에서 유입된 새로운 예술적 흐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역시나 이 미술관 덴마크 컬렉션의 주인공도 빌헬름 함메르쇼이였습니다. 함메르쇼이 특유의 텅 빈 거실, 등을 돌린 여인들, 기묘한 풍경, 독특한 건축적 모티프,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과 무채색의 실내를 보면서 이제는 한 눈에도 이 작가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는 뿌듯함도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