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갤러리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첫번째 방에서 반가운 재회가 있었습니다. 지난여름 로마에서 만났던 카라바조의 작품 <그리스도의 체포>가 붉은 색으로 칠해진 실내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죠. 더블리너들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카라바조 앞에서 멍하게 서 있더군요.
이 그림은 기록에는 남아있지만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취를 감춘 미스터리한 작품이었습니다. 1802년 소유자가 그림을 팔아버린 후 카라바조의 네덜란드 추종자였던 게리트 반 혼토르스트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자들은 원본을 찾기 위한 노력을 재개했는데, 이는 오데사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이 1626년 마테이 가문의 다른 구성원을 위해 제작된 모사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993년 더블린의 한 예수회 신학교에서 우연히 발견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분실되거나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 작품의 놀라운 귀환이었습니다. 큰 관심 속에 아일랜드의 국보급 작품이 된 이 그림은 예수회로부터 영구 대여되어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카라바조는 1602년 로마의 후작 시리아코 마테이를 위해 이 특별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유다는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를 붙잡으려고 다가오자 입맞춤으로 예수를 알려줍니다. 왼쪽에 어리둥절하게 도망치는 제자는 사도 요한이죠. 달빛만이 군상을 고요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맨 오른쪽 등불을 든 남자의 얼굴을 통해 카라바조는 31세의 자신을 사건의 관찰자로 묘사했죠.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요.
유작인 <우르술라의 유작>에서도 무언가를 말하려는 카라바조의 모습이 동일한 위치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책에서도 길게 썼던 기억이 있는데요. 다시봐도 그림의 구도와 드라마적인 연출에 있어서, 그의 최고작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걸어봅니다. 38번방의 주인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입니다. 1670년작 <편지를 쓰는 여인과 그녀의 하녀>가 보입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두 국립 미술관은 나란히 베르메르의 닮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게 재미있습니다.
이 그림은 베르메르 말년 작품 중에서도 독창적인 구성을 자랑합니다. 하녀가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주인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림 앞쪽 바닥에는 붉은색 인장, 밀랍, 그리고 당시 개인 서신에 흔히 사용되었던 편지 쓰기 안내서로 추정되는 물건이 놓여 있습니다. 1987년, 알프레드 베이트 경과 베이트 부인이 기증한 '베이트 컬렉션'으로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하녀>의 주인공은 무어인 소녀입니다. 1617~1618년작인 초기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초기작의 왼쪽 배경에는 엠마오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그리스도가 작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전경에는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가 보이는데요.
예수를 조연으로 만든 기법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마르타와 마리아>와 동일한 기법입니다. 종교적인 주제와 세속적인 주제의 위계를 흔드는 기법은 피터 아에르첸을 비롯한 플랑드르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미술관은 설명합니다.
16세기 활동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여성화가인 소포니스바 앙귀솔라의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왕자의 초상화>도 만날 수 있습니다. 앙귀솔라 가문의 여섯 딸은 모두 화가가 되었지만, 맏딸 소포니스바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죠. 1559년 그녀는 마드리드 궁정의 초청을 받아 발루아의 엘리자베스 왕비의 궁정 화가가 되었는데요.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화려한 의상의 세부 묘사에 탁월한 실력을 뽐냈습니다.
이 작품은 파르마 공작의 아들인 알레산드로 파르네세를 15세 때 모습으로 그렸는데요. 이 초상화는 의도치 않게 미술관이 소장한 최초의 여성 화가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1864년 구입 당시에 미술관은 앙귀솔라와 동시대 인물인 알론소 산체스 코엘로의 작품으로 여겼는데요. 이후에 연구를 통해 작가가 정체가 밝혀진 겁니다.
렘브란트의 <이집트로 향하는 여행 중 휴식과 함께한 풍경>, 프란시스코 고야의 <도냐 안토니아 자라테>, 베르트 모리소의 <르 코르사주 누아르>, 클로드 모네의 <아르장퇴유 분지에 있는 돛단배 한 척> 등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단한 거장들의 작품을 딱 한두점씩만 소장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더군요. 유명세를 얻은 작품 대부분은 베이트 컬렉션으로 기증된 작품들이었습니다.
20세기 작품을 전시하는 1층으로 내려오면 아일랜드 근대 미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는 작가는 국민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동생 잭 버틀러 예이츠입니다. 아일랜드의 풍속화가처럼 당대의 많은 일상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1923년작 <리피강의 수영>은 1920년부터 더블린의 연례 스포츠 행사로 자리 잡은 수영 경기의 분위기와 흥분을 포착했죠. 이 그림은 예이츠가 표현주의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고, 유려한 붓놀림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미술관은 기증된 그림을 비롯해 예이츠 가족의 아카이브도 방대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인상파 화가 윌리엄 존 리치의 <브르타뉴의 수도원 정원>은 20세기 컬렉션의 간판입니다. 그림 속 리치의 첫 번째 아내인 엘리자베스는 생에스프리 수녀회 수련 수녀 복장을 하고 기도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뒤에서 수녀회 수녀들은 의식을 치르고 있죠. 이 그림은 리치가 브르타뉴를 방문하는 많은 예술가들과 공유했던 브르타뉴 공동체의 종교적 헌신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햇살에 대한 애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초상화를 비롯해, 21세기 작가들의 작품도 엄선해 보유하고 있더군요. 피터 도이그의 보기 드문 작품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그린 풍경화도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사연을 가진 그림은 앨리스 닐의 <뉴욕 풍경>입니다. 초상화가로 유명한 닐은 1930년대부터 뉴욕의 스패니시 할렘, 그리니치 빌리지 등에 거주하며 뉴욕의 풍경을 쓸쓸하게 담곤했는데요.
1932년 앨리스 닐은 아편 중독에 시달리던 상선 선원 케네스 둘리틀과 함께 그리니치 빌리지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1934년 12월, 둘리틀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녀의 회화 60점과 200점이 넘는 드로잉 및 수채화를 불태워버렸는데요. 이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방화 사건 이후 웨스트 42번가의 한 호텔에서 지내며 그녀는 이 눈 덮인 도시 풍경을 그렸죠.
"저는 그곳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창문에서 보이는 눈 내리는 풍경을 그렸는데, 전경에는 교회가 있습니다. 42번가를 올려다보면 사람들이 다 눈에 들어옵니다." 닐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겨울 풍경과 이름 모를 사람들을 묘사한 이 그림은 닐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시련은 위대한 예술가를 담금질합니다.
이 미술관은 보면 볼수록 '미니어처 내셔널 갤러리' 같으면서도, 아일랜드만의 개성도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더블리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도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