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은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 5번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가장 비싼(?) 길에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 한적한 지역은 정말 걷기만 해도 부유함이 느껴집니다.
프릭 컬렉션은 미국 최고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소규모 사립 미술관입니다. 자본주의의 심장답게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은 사립 미술관이 많은데요.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업가들이 죽으면서 이름 말고도, 미술관을 남긴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미국 '코크왕(Coke King)' 헨리 클레이 프릭(1849–1919)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수학에 뛰어났으나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프릭은 어린 시절부터 "백만장자가 되겠다"고 공언했는데요. 1870년, 21세의 프릭은 코넬스빌 석탄지대에서 제철소의 핵심 공정인 코크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873년 대공황 당시 승부수를 던지며 그는 코크왕이 됩니다. 전설의 부자인 앤드류 카네기와 협력해, 그의 은퇴 이후 카네기 스틸의 회장을 맡게됐죠.
동업자 카네기와는 소송전 끝에 결별하게 되고, 1918년 그의 개인 재산은 약 2억 2500만 달러 규모에 이릅니다. 존 D. 록펠러에 이어 미국 2위의 자리에 오르게 됐죠. 백만장자를 꿈꾸던 시골뜨기는 억만장자가 된겁니다. 1880년대 컬렉팅 초기에는 피츠버그 풍경화로 시작해 그는 1900년 개관한 런던 월리스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유럽 회화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열렬한 수집가가 된 이후 남긴 말이 유명합니다. "나는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은 만들 수 없다."
프릭은 지독한 노동자 탄압과 파업의 무력 진압 등으로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남자'로 불렸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는 유럽 회화의 고귀한 기원과 고요한 풍경에 매료되어 수집을 한 인물이었죠. 뉴욕으로 이주한 뒤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5번가에 저택을 짓기 위해 건축가 토마스 헤이스팅스를 고용했습니다. 뉴욕 공립도서관의 설계자로 이름난 건축가였죠. 1919년 프릭은 세상을 떠날때까지 5년밖에 이 곳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강철의 군주는 벨라스케스와 베르메르의 앞을 늘 시가를 물고 거닐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을 겁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평생 모은 재산의 5/6을 기부했습니다. 아내 애들레이드는 이후에도 저택에서 살았고, 1931년 애들레이드 사망 후 건축가 존 러셀 포프가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했해 1935년 프릭 컬렉션이 공식 개관했죠. 보자르 양식 저택 안에서 14~19세기 유럽 회화·조각·장식미술을 '살았던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메트로폴리탄이나 MoMA와 무척 다릅니다.
개관을 이끌었던 딸 헬렌 클레이 프릭은 유명한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을 추가 구입하며 컬렉션의 깊이를 넓혔죠. 1845년작인 이 그림은 19세기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초상화로 손꼽히는 신고전주의의 정수입니다. 헬렌은 결혼하지 않고 96세까지 살며, 피츠버그의 클레이턴 저택 복원·프릭 미술관 건립·도서관 운영 등 가문의 문화적 유산을 평생 수호했습니다.
미술관 규정상 소장품 매각은 불가하며, 프릭 생전 소장품은 외부 대여도 금지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 곳의 걸작들은 뉴욕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엄격한 사진 촬영 금지 원칙과 10세 미만 출입을 금하는 '노키즈존'의 원칙을 지키고 있죠. 뉴욕에선 드물게도 고요한 공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제가 찍은 사진은 사진 촬영의 마지노선인 실내 분수대의 사진밖에 안남았네요.
프릭은 미국 도금시대(Gilded Age) 자본가-수집가의 전형입니다. 헨리 제임스는 이들을 "창 대신 거대한 수표를 든 정복 군단"이라 묘사했죠. 유럽 귀족 경제의 쇠락이 걸작을 시장에 쏟아냈고, 모건(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멜론(내셔널 갤러리), 가드너(보스턴 가드너 미술관), 해버마이어(메트로폴리탄 인상파), 위드너(내셔널 갤러리), 헌팅턴(헌팅턴 도서관) 등이 경쟁적으로 매입했습니다. 프릭의 수집은 양보다 질에 집중한 점, 그리고 사후 성장을 허용한 점에서 가드너(변경 불가)나 반스(교육적 배열 고정)와 구별됩니다.
뉴욕타임스는 이 공간을 "세상의 모든 추함에서 벗어난, 박물관 이상의 공간"이라고 평했습니다. 지금도 화려한 거실에서는 걸작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헬렌 클레이 프릭의 취향에서 시작해 현재는 컬렉션이 2배 이상으로 증가해 1800점에 달합니다. 프릭의 콘서트 시리즈는 1938년부터 이어져왔고, 희귀본을 대거 보유한 프릭 미술연구도서관도 유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