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아트바젤 홍콩의 프리뷰 입장은 12시부터 시작됐습니다. 프리즈 서울과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로비는 북적이기 시작했고, 인파가 두려운 저는 한가한 3층부터 올라갔죠. 국내 신진 작가와 소형갤러리들이 많이 참여해 3층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전날 떠들썩하게 오프닝 파티도 열며 홍콩 데뷔를 자축했던 '제로10'에는 10개 부스가 디지털 아트를 선보였는데요. 사이버펑크의 도시 홍콩과는 잘 어울리는 소재이긴 하지만, 전통의 아트 바젤도 이제 시대의 흐름을 쫓는구나라는 싶기도 했습니다. 한국 작가인 디케이(DeeKay, 권대기)가 참여했는데요. 디케이는 센트럴 도심 건물 외벽에 신작 애니메이션 <DeePle the People>을 프로젝션해 화제의 인물이 됐죠.
신진 작가들을 소개하는 '디스커버리'와 주제별 전시를 선보인 '인사이트' 섹션은 언제나 아트 바젤에 생기를 불어 넣는 부스입니다. 호치민의 빈 갤러리는 단순한 천막과 조명을 활용하여 일본 조각가 고토 아코의 도자기 해골 그림자 연극을 선보여 눈에 띄었습니다. 홍콩 갤러리인 루시 창 파인 아트는 전통적인 수묵화에 파격적인 선정적 소재를 담은 중국 화가 주신젠의 작품을 재조명했습니다.
이번에는 인카운터스에서도 새로운 얼굴들이 제법 많이 보였습니다. 인카운터스의 가장 눈길을 끄는 부스였던 콩키의 <Price/Value>였습니다. 작가가 네온사인의 필라멘트를 끊어버리는 퍼포먼스를 펼쳐보였죠.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모닥불을 상영하는 미디어 아트도 있었는데요. 칸영화제를 휩쓴 거장이 백화점 같은 아트페어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을 뽐내진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페이스 갤러리의 모딜리아니 전시아 초반에 큰 주목을 받았지만, 저희 생각에는 이번 아트페어는 아시아 현대 미술의 거장들과 차세대 스타 작가들의 것이었고, 그들은 마땅히 주목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이번 페어에 관한 아트뉴스의 평가에 저도 동의합니다. 페어 최고가인 1330만달러의 가격과 극적인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모딜리아니가 주목을 받을만했지만, 1000만달러 작품이 즐비한 스위스나 파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대단한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홍콩의 체급이 현저히 작아진 것이 슬프기도 했죠. 스위스 바젤은 피카소만 수십여점이었던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이번 페어 첫날 최고가 판매작은 데이비드 즈워너의 리우 예가 세운 380만달러였습니다. 100억원대 작품 판매가 이뤄지지 않은 건 올해 페어에 큰 손들은 '관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전쟁으로 비행기 티켓은 점점 비싸지는데 저는 아시아에서도 올드 마스터나 초고가 작품을 꾸준히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이 홍콩이든 서울이든 말이죠. 대신 아시아 작가들을 간판으로 내세운 화랑은 글로벌 메가 화랑 중에도 많았습니다. 데이비드즈워너의 리우예, 가고시안의 백남준가 대표적이었고, M+ 미술관에서 판화 전시를 연 자오우키도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이 값비싼 아트페어에서 놀랍게도 네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이자 소설가, 미술사학자 중 한 명인 레인 싱 방델을 위한 솔로 부스를 꾸민 타이페이 화랑 탄스바오의 대범함도 돋보였습니다. 네팔의 민중을 그린 수채화는 우울하고 빈곤한 그들의 모습도 푸른색조로 그려져 에드바르 뭉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미술관 전시의 영향력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파리 루이비통 회고전의 게르하르트 리히터(데이비드 즈워너), 100주년 전시를 필라델피아, 뉴욕에서 열고 있는 알렉산더 칼더(하우저&워스),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를 하고 있는 헬렌 프랑켄탈러(가고시안), 테이트모던의 트레이시 에민(화이트 큐브) 등을 간판으로 세운 갤러리가 많이 보였거든요.
어텐션 이코노미(Attention Economy)가 미술 시장도 장악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느꼈는데요. 가장 놀랐던 부스는 늘 인기만점인 페로탕이었습니다. 부스의 일부를 할애해 만든 로렌 차이의 솔로 부스는 팀 버튼의 영화 소품처럼 작가의 페르소나인 고딕풍 소녀의 조각과 드로잉으로 채워졌는데요. 1998년생 이 젊은 예술가를 처음 본 건 넷플릭스 리얼리티쇼 <테라스 하우스>였습니다. 소위 '연프'의 주인공이 글로벌한 스타 배우가 되더니, 아트바젤 홍콩에 입성을 한거죠. 정말 놀라서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그리고 이번 페어의 주인공 중 하나는 분명히 이불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속화랑 하우저&워스, 리만머핀, STPI 등에서 일제히 평면 작품을 선보였고, 30만달러 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프리즈 서울에서 이 기세를 이어가면 이불이 한국시장을 하드캐리하는 시대가 열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군요.
아시아 미술이 강화되면서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페어였습니다. 다만 신선하거나 파격적인 부스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 아쉽긴 했죠. 보수적인 시장 분위기 때문일텐데요. 17개나 되는 한국 갤러리가 참여했고 인카운터스의 입구 자리를 강서경 작가의 화문석 돗자리 작품들이 지키고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만나게 되네요. 해외 화랑서도 이미래(스프루스마거스), 김상우(헤럴드ST), 이목하( 등 한국 작가를 여럿 선보여 반가운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페어는 전쟁 발발로 인해 막대한 운송료를 지불한 것에 비해 세일즈가 그리 원활하진 않았던 걸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경제 기자로만 해석을 하자면 아트바젤 홍콩의 가장 큰 타격은 전쟁의 불안보다도 크립토크래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대체 자산에 관심이 많은 홍콩과 중국 본토의 슈퍼리치들에게는 반토막난 비트코인의 타격(+금값 폭락)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